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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도와 실미도, 눈물이 있었다"

딸을 팔아 연명했다는 비극의 섬

글이삭 기자 | 기사입력 2005/01/27 [18:12]

"무의도와 실미도, 눈물이 있었다"

딸을 팔아 연명했다는 비극의 섬

글이삭 기자 | 입력 : 2005/01/27 [18:12]

영화 <실미도>와 드라마 <천국의 계단> 촬영지로 잘 알려진 섬이 서해안 실미도와 무의도이다.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 선착장에서 무의도로 건너가는 배편이 있다. 이 배에는 대형버스를 비롯한 자동차 십여대를 실을 수 있어 수도권 오토 관광객이 즐겨 찾는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무의도 국사봉에서 건너다 본 실미도 전경.     ©참말로


영종도가 개발되기 전에는 교통이 불편해 육지 손님이 드물었으나 이제는 수도권에서 손쉽게 찾아가 바다와 낙조 감상, 조개류 채취, 개펄 체험 등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더구나 무의도에는 해발 230여 미터의 국사봉과 국사봉보다 10여미터 더 높은 호룡곡산이 솟아 있어 3~4시간 정도의 등산코스로도 훌륭하다. 또 모래사장이 아주 넓은 하나개해수욕장과 그보다 작은 실미해수욕장이 펼쳐져 있어 여름철에는 피서객들로 넘친다.


“맑은 날에는 북한의 해주 땅도 보인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사람과 차량이 붐비는 피서철을 피해서 일년에 한두 번씩 무의도를 찾아가곤 한다. 그러다보니, 단골 민박집이 생겼다. 그 집 주인인 할아버지 내외는 미리 전화를 하면, 무척 반기며 깨끗한 방으로 예약해준다. 해가 갈수록 새로운 호텔급 콘도와 고층 모텔이 들어서고 있지만, 나는 섬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아담한 민박집을 고집하는 편이다. 서울사람의 경우 서두르면 하루 코스로도 충분하지만, 등산과 실미도 관광까지 곁들이려면 1박하는 게 좋다. 등산, 밤바다의 파도소리, 썰물 개펄체험, 해돋이와 황혼, 생굴회에 곁들인 소주 한잔 등을 두루 즐기려면 하룻밤쯤 머무는 게 여유롭다.   


         무의도 국사봉에서 건너다 본 실미도 전경.


지난 토요일 정오, 할아버지네 민박집에 짐을 풀자마자 국사봉과 호룡곡산 등산길에 올랐다. 구불구불 산길은 높이에 따라 다른 바다를 보여줬다. 무의도 주변 바다, 무의도 새끼섬인 실미도 전경, 영종도 공항, 내륙해안선의 활처럼 굽은 모습, 그리고 멀리 점점이 보이는 서해안의 다른 섬들이 차례차례 시야에 들어왔다. 민박집 할아버지는 “맑은 가을날에는 멀리 북한의 해주 땅도 보인다”고 했다. 국사봉을 올라 잠시 쉬었다가 다시 호룡곡산으로 향했다. 이곳의 산길은 그리 험하지 않아서 초보 등산객들도 무리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민박집의 방은 무척 아늑했다. 밤이 되자 등산의 피로에다 따뜻한 잠자리 덕분에 깊은 잠에 떨어졌다. 다음 날, 일출을 기대하고 아침 일찍 큰무리마을 해변에 나가봤으나 동녘하늘에 구름이 끼어 해돋이를 볼 수 없었다. 아침 일찍 바지락을 캐러가는 섬 아줌마들만 어두운 개펄로 들어서고 있었다. 물때를 알아보니, 아침 9시부터 썰물이 깊어져 무의도에서 실미도로 걸어서 건너갈 수 있었다. 무의도에서 5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작은 섬 실미도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북파무장공작원들을 훈련시킨 곳으로 유명해졌다.


영화 <실미도> 이후 부쩍 더 화제가 되었지만, 영화를 찍던 세트장은 철거되고 없다. 영화가 촬영된 직후 이곳에 왔을 때는 낡은 막사와 극기 훈련 시설, 체벌장 등이 음습한 풍경으로 남아 있었는데 너무 을씨년스러워 치워버렸나 보다. 스텝들이 묵던 막사에는 낡은 군용담요, 흙 묻은 군화 등이 잔뜩 쌓여 있었던 게 기억난다.


바위투성이인 실미도 해안에 썰물이 들면 사진처럼 멋진 풍경도 있다.


나는 천천히 바위투성이인 실미도 해변을 한 바퀴 돌았다. 작은 섬이라 해변을 한 바퀴를 도는데 2시간이 채 안 걸렸다. 물 빠진 바닷가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 바위에는 굴딱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고, 따개비도 잔뜩 엉겨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생굴의 씨알들이 상당히 굵었다. 오랜 세월동안 특수군사지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탓에 실미도 해변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제 유명세를 탔으므로 몇 년이 흐르고 나면,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른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이지만, 실미도에도 생선회집과 모텔이 들어서 번쩍번쩍 네온불을 밝힐지 모르겠다. 유흥을 즐기고 바다레저를 즐기는 위락단지로 새 이름을 얻게 될지 모른다.                      


사실, 우리 사회와 생활상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어 10년만 지나면 산천이 달라지고 풍속이 달라진다. 서해의 외딴 섬이던 무의도의 변화도 그렇다. 지금 무의도로 들어가는 수많은 관광객들 가운데 무의도의 옛 생활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지난 세월동안 극심한 역경 속에서 무의도 섬사람들이 얼마나 끈질기게, 또 얼마나 한스럽게 살아왔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로 그려진 풍경 이외에는 아는 것이 없고 별로 관심도 없다.


모든 생명이 은빛 편린으로 머물다 갈 수 있었으면


무의도는 워낙 논밭이 적어서 무척 살기 고달픈 섬이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곡식과 바꾸지만, 흉어가 들면 굶주리기 십상이었다. 월북 극작가 함세덕이 1941년 쓴 희곡 <무의도 기행>을 보면, 서해의 낙도인 무의도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던 지를 느낄 수 있다. 1915년 인천에서 태어나 줄곧 인천에서 자란 함세덕 작가는 그가 성장한 인천 바다 연안과 인근 섬사람들의 삶을 리얼하게 그려낸 작품을 많이 썼다. <무의도 기행>에서는 바다에 두 아들을 잃고 딸마저 중국의 색상(色商)에게 팔아야 했던 가난한 어민 일가족의 무참한 삶을 보여준다.   


무의도만이 아니다. 서해 낙도에는 가난에 쪼들려 딸을 중국 뱃사람들에게 팔았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심청이가 팔려가듯이 섬의 앳된 처녀들이 인당수 건너 중국 땅에 팔려갔다는 것이다. 쌀 몇십 섬에 팔고 노름빚에 팔았는데, 그 팔려간 딸들이 중국유곽에서 돈을 벌어 나중에 큰 장사치가 되었다는 식의 민담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함세덕이 <무의도 기행>에서 소재로 삼은 어민 일가족도 사실에 근거했을 가능성이 높다.


얼마나 굶주렸으면 타국 뱃사람들에게 딸을 팔아서 남은 식구들이 끼니를 이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끔찍하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하다. 이 땅에 다시는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하고, 낙도이건 벽촌이건 간에 이 땅 어느 외진 구석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극한의 궁핍은 없어야 한다. “자식을 팔다니 인면수심(人面獸心)이다”라고 비난하기에 앞서서 백성이 그런 극한의 절망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위정이고 목민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섬 북변 해안에 높이 솟은 바위 위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해빛을 받아 작은 은빛꽃처럼 반짝이는 서해바다. 저렇게 잠깐이나마 반짝이는 존재이길...


바다는 하얗게 빛이 났다. 한낮의 겨울바다는 햇볕에 부서져 은빛으로 빛났다. 파도 하나하나가 은빛 편린이 되어 거대한 빛의 광목을 엮고 있었다. 바다의 은빛 물결은 참 행복해 보였다. 뭔가 자기들끼리 재잘재잘 재미있는 얘기를 나누는 것 같고, 까르르 웃음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저 은빛 일렁임처럼 섬사람들의 일생도 아름답게 표백되어 빛을 내는 한 조각 물결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바닷가 사람만이 아니라 이 땅에 왔다가 사라진 생명들,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생명들이 저마다 반짝반짝 빛을 내는 소중한 존재이기를 빌어본다.


- 이 기사는 참말로(www.chammalo.com)에 연재되고 있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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