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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광주가 이룬 것과 이룰 것들

광주민중항쟁은 여전히 현재형

이태경 | 기사입력 2005/05/17 [19:38]

80년 광주가 이룬 것과 이룰 것들

광주민중항쟁은 여전히 현재형

이태경 | 입력 : 2005/05/17 [19:38]






[시론] 어느덧 광주민중항쟁 25주년이 되었다. 사반세기라는 세월의 흐름은, 광주민중항쟁 원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고, 항쟁을 직,간접으로 경험했던 많은 사람들이 항쟁을 자신들의 뇌리 속에서 잊기에도 그리 모자람이 없는 시간이다.


그래서일까? 9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제법 떠들썩하게 기념되던 광주민중항쟁이 얼마 전부터 매우 조용하게 지나간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광주민중항쟁이 법률에 의해서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되고 유족들과 부상자들에게 보상이 이루어지는 등 제도화된 측면도 있지만 반드시 그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광주민중항쟁 이후 눈에 띄게 진전된 민주화가 항쟁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고 해석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듯 싶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통치하던 시절에 그토록 애틋했고 일쑤 격앙되기까지 했던 추모의 념(念)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시나브로 엷어지기 시작했고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에는 그 엷어짐의 정도가 확연해 진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가리지 않고 희미하게 만드는 세월의 공평함도 한 몫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불법적인 국가폭력에 맞서 죽음을 무릅쓰고 궐기했던 오월 광주가, 괄목할 만한 민주화의 성장에 반비례하여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가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야만과 광기의 시절이 과거의 일이 되면서 이를 종식시키는데 밑거름 역할을 했던 오월 광주도 자연스레 집단적인 기억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 요즈음 오월 광주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천천히 되짚어 보기로 하자!
 
무엇보다 광주민중항쟁은 권위주의 정권의 철권통치를 종식시키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데 결정적인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오월 광주가 시민혁명으로 평가되는 6월 항쟁의 밀알이 되었음을 부정할 사람은 지만원 등의 무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광주 민중항쟁은 한국전쟁이 종전 된 이후 최초로 군으로 상징되는 국가권력과 시민사회가 정면 격돌한 사건이었고, 한국사회 구성원들에게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한편 신군부가 항쟁을 진압할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미국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회의는 ‘반미의 무풍지대’라는 금기를 넘어설 만큼 깊은 것이어서 이후 한국사회에서 미국은 더 이상 ‘은인의 나라’로 대접받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오월 광주는 이후 학생운동과 민중운동의 이념적 지형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항쟁이 잔인하게 진압된 후 학살의 원흉은 화려하게 대관식을 치르고 권좌에 앉았고 민중운동 진영은 이를 저지할 아무런 힘이 없었다.
 
80년 오월 광주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을 경험한 세대에게 70년대 말까지 주류를 이루었던 지사적(志士的)운동은 더 이상 현실변혁의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야수적 폭력본능과 막강한 물리력을 갖춘 학살자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이론적 무기가 필요했다.
 
따라서 한국전쟁 이후 사실상 절멸되다시피 했던 맑시즘이 한국사회에 복권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파시스트들과 가장 비타협적으로 투쟁했던 것이 다름아닌 맑시스트들이었으니 말이다.
 
아울러 살아남은 자로서의 도덕적 부채의식을 짊어진 많은 청년들이 학업을 중단한 채 공장 등으로 이른바 ‘위장취업’을 하여 자신들의 잘못(?)을 속죄하려는 이례적인 현상도 두드러졌다.
 
비단 오월 광주의 의미는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기실 광주민중항쟁은 해방과 대동, 자유와 평등을 향한 집단적 상상력의 원천으로 기능하며 이미 세계사적 의의를 획득하였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오월 광주는 불의한 국가권력에 맞서 분연히 일어선 시민들이 만든 공동체가 얼마나 도덕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유감없이 보여준 세계사적 감동의 드라마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오월 광주가 한국사회 더 나아가서 세계에 미친 영향은 크고도 깊다. 그러나 심히 안타까운 것은, 오월 광주의 정신과 사회적 상상력이 현재 한국사회에 이렇다 할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데 있다.
 
그러나 오월 광주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던 과거의 사건으로 평가받으면서 역사책 속에만 머물러 있어도 좋은 것일까? 한국사회는 이제 더 이상 오월 광주로부터 배울 것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아니다! 세 번 아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오월 광주를 필요로 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오월 광주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인 것이다.
 
절차적 민주화가 완숙기에 접어든 지금 오월 광주의 정신과 사회적 상상력을 다시금 불러내야 할 이유는, 우리가 지금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군부정권을 축출하고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군부정권이 쫓겨난 자리를 차지한 것은 경제적 불평등과 신자유주의의 그림자 그리고 물신숭배의 정신들이다.
 
이제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을 바로잡고 신자유주의의 그림자를 쫓아내며 물신숭배의 문화를 극복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오월 광주’라는 마르지 않는 사회적 상상력의 수원에서 물을 길어 와야 한다.
 
따라서 오월 광주는 한국사회에 여전히 현재적 의미로 살아있다. 오월 광주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데에도 여전히 유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어느 눈 밝은 시인은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라고 갈파한 바 있다. 혹시 지금 우리는 오월 광주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 자문해 볼일이다. / 편집위원
 
* 필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본사와 대자보(www.jabo.co.kr)와의 뉴스협약에 의해 게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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