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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발굴... 통일신라 유적 발굴로 이어져야

백제와 신라 유적 숨쉬는 성지...철저한 발굴 이뤄져야

조유전 | 기사입력 2008/02/10 [13:11]

남한산성 발굴... 통일신라 유적 발굴로 이어져야

백제와 신라 유적 숨쉬는 성지...철저한 발굴 이뤄져야

조유전 | 입력 : 2008/02/10 [13:11]
▲ 조유전 토지박물관장.     ©성남일보
[오피니언]
과거 남한산성은 고려시대의 몽고군의 공격을 시작으로 어떤 침략에도 함락되지 않았던 성으로 말하자면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이러한 남한산성이 백제시대와 통일신라시대는 물론 고려시대에 이르는 동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남한산성의 역사가 멀리 삼국시대에 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남한선성에 대한 고대기록은 고려시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여기에는 한산주(광주)에 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처럼 역사기록을 비롯하여 남한산성내에서 통일신라 성벽 일부와 유물이 출토되고 있어 신라시대의 주장성은 오늘날의 남한산성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신라통일기인 서기 672년에 처음으로 쌓은 주장성은 매초성에서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낸 675년 이후부터는 방치되었고 고려와 조선전기까지는 폐허가 되었으나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겪고 난 조선조정은 유사시 보장처로서의 입지가 뛰어난 이곳에 행궁을 짓고 석축의 성곽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런데 남한산성을 축조하고 난 후 호란의 화를 입게 되었다. 인조가 남한산성내에 있는 행궁에서 45일간의 항쟁에서 나와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지만 한마디로 남한산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 때 마련되어 이 땅에 당의 세력을 몰아내고 명실공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는데 있어서 큰 공헌을 했던 역사적 장소이다.
 
이렇게 본다면 남한산성의 전신인 신라주장성은 조선시대 남한산성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앞으로 남한산성을 정비복원 함에 있어서 반드시 성벽의 기초를 확인하는 발굴조사를 반드시 실시하여 최초의 신라주장성의 규모를 밝혀야 함은 물론 나아가 산성 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의 유적과 신라의 유적을 찾는 노력을 배가해야 할 것이다. /토지박물관장 
 
... 이 글은 지난달 30일 경기개발연구원(원장 좌승희) 주최로 열린 ‘남한산성의 역사적 가치와 현대적 의미 재조명’ 세미나 내용을 전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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