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소신은 제 자리를 찾게 한다

이창경/신구대학 교수· 아시아민족조형학회 회장 | 기사입력 2008/03/10 [09:58]

소신은 제 자리를 찾게 한다

이창경/신구대학 교수· 아시아민족조형학회 회장 | 입력 : 2008/03/10 [09:58]
▲ 이창경 교수.     © 박물관뉴스
[오피니언]
한국인은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데 익숙해져 있지 않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았을 때나, 아니면 어떤 일을 결정함에 있어 분명하게 ‘아니오’라고 말하면 몰인정하다거나, 저만 안다,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기 쉽다.
 
이성보다는 정이 우선하는 기본 정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인정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러한 정서는 분명 우리의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니오’라고 해야할 때, 분명히 ‘아니오’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때로 사회를 병들게 하기도 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준법의식의 현주소와 시민의식 제고 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는데, 서울을 비롯한 6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20세 이상의 남녀 천2백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돈이 있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법을 위반해도 처벌받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질문에 응답자의 47%가 ‘확실히 그렇다’고 응답했고, 48.7%가 ‘그런 편이다’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또 ‘법보다 권력이나 돈의 위력이 더 큰 것 같다’는 질문에 92.5%가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설문 결과의 근저에는 사회에 대한 냉소적 인식도 생각도 깔려 있지만, 소위 인정이라는 우리의 전통적 미덕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데서도 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 출신 지역, 출신 학교 등 소위 연줄을 먼저 생각한다. 하다 못해 병원에 가서도 연줄을 대면 진료를 먼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이니 원칙에 충실하고 법을 지키는 사람이 바보가 된다. 권력과 돈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공공재적 관점으로 파악한다면 이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생각은 안 할 것이다.

일제의 야욕이 노골화되던 구한말, 그 험난한 세태를 꼿꼿한 선비정신으로 일관한 거유 면암 최익현 선생은 자신의 소신대로 세상을 살았다. 선생이 성균관 직강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경내를 순시하고 있는 도중 그럴 듯하게 단장된 묘를 발견하였다. 당시 성균관에는 누구도 묘를 쓰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선생은 뒤따르고 있던 아랫사람에게 호통을 쳤다. 당장 묘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오라고 했다.

눈치만 보고 있던 아랫사람은 하는 수없이 사실대로 말했다. 이 곳이 명당자리라는 말을 듣고, 권세를 가진 종실의 한 사람이 묘를 썼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불법일 줄 알면서도 권력 있는 종실이 행한 일이니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후손의 출세와 관계되는 묘자리임에야 더 말할 것이 못되었다.

그러나 면암의 생각은 달랐다. 종실이라면 백성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입장인데 불법을 저지르고 있으니 이를 묵인해 주는 것은 그에게 오히려 누가 된다고 생각하고 당장 묘소를 옮기게 했다. 권력 앞에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하였지만, 면암은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종실은 면암의 끈질긴 요구에 묘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권력보다 법이 우선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그의 기질은 훗날 도끼를 메고 왕실에 들어가 병자수호조약 체결을 반대하기까지 이른다.

용서해야 할 것과 용서를 해서는 안 될 것, 묵인해서 될 것과 묵인해서는 안 될 것, ‘아니다’ 라고 대답할 것과 ‘그렇다’ 라고 대답할 것 사이에는 분명 어떤 경계가 존재한다. 그 경계가 무너져버렸을 때, 권력은 횡포로 변하고, 돈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무기로 생각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라는 말이 위력을 잃지 않고 있다. 이 말의 이면에는 ‘분명히 잘못이 있는데 그것을 드러내 밝히지 말고 서로 눈감아두자’ 라는 묵인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정도를 벗어난 비정상적 생활에 모든 원인이 있다. 생각이 먼저 제자리로 돌아와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원본 기사 보기:박물관뉴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