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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몸의 미학’과 박물관

‘박물관 법인’이 시급하다

최병식/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 | 기사입력 2008/09/16 [08:40]

‘빈몸의 미학’과 박물관

‘박물관 법인’이 시급하다

최병식/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 | 입력 : 2008/09/16 [08:40]
▲ 최병식 경희대 교수     ©박물관뉴스
[오피니언]
며칠 전 감동적인 소식을 접했다. 짚풀생활사박물관이 드디어 비영리 재단법인 최종 결정이 났다는 전화였다. 사립박물관의 재단법인화는 사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우선 한 곳의 박물관을 설립하려면 최소한 수십년의 준비기간과 컬렉션과정, 재원확보 등의 단계를 거치게 되지만 문제는 설립 후가 더 문제이다.

박물관 자체가 비영리라는 대전제 때문에 끊임없는 운영난에 시달려야 하고, 파산직전에 이르른 경우가 한 두 곳이 아니다. 결국 평생을 문화사업에 헌신하게 되지만 이와같이 개인의 힘으로 문화재단을 설립하겠다는 의지를 실현한 사례는 매우 드믈다.
 
규모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 본격적인 기점은 1992년이다. 이해에는 경남 거제문화재단의 설립과 함께 동시에 오픈된 거제박물관, 환기재단에 의하여 설립된 환기미술관이 나란히 문을 열고 새로운 장을 개척하였다.
 
이어서 의재문화재단의 의재미술관,  충현문화재단의 충현박물관, 한빛문화재단에서 설립한 화정박물관, 재단법인 한국등잔박물관, 청운문화재단에서 설립한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하여 등이 잇달아 비영리 성격의 재단법인을 설립하게 되었다. 기업에서도 삼성문화재단의 호암미술관, 성곡미술문화재단의 성곡미술관, 재단법인 대유문화재단에 의하여 설립된 영은미술관 등 상당수에 이른다.

또한 국가나 지자체에서 설립하거나 기업에서 설립한 재단도 상당수에 이르지만 이처럼 기업이나 유산 및 유증 등의 자산과는 달리 순수하게 개인이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는 극히 드믈다. 
 
1993년 짚풀생활사 박물관을 처음으로 설립한 이후 인병선관장이 70평생을 일구어온 전재산과 박물관유물을 사회 환원하게 된 데에는 이미 사단법인으로 활동해온 짚풀문화연구회를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수 천건의 유물을 완전히 사회 환원하고자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전국에 6백여개의 뮤지엄에 소장된 유물이나 작품 모두가 다 그렇지만 특히사립박물관의 경우는 다소 의미가 다르다. 그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수집해온 유형과 무형의 소장품들은 모두가 설립자들로부터 재발견되고, 보존되어온 문화유산들로서 사실상 재창조된 것이나 다름없다.

말없이 “아이들이 두말없이 사회환원에 동의하여 너무 고마웠어요”라고 마무리하는 인병선관장은 정작 결정을 하고 나니 너무나 가볍다는 말을 던지는 것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빈몸의 미학’을 새삼 실감하게된다.
 
▲ 1993년에 설립된 명륜동 소재 짚풀생활사박물관.   
‘열정과 눈물이 있다’

 
우리는 가끔 삯바느질을 하거나 김밥장사를 하여 평생 모은 돈을 대학에 기증한 분들의 뉴스를 접할 때 마다 가슴저미는 감동이 밀려온다.

전국에 200여개가 넘는 사립뮤지엄들 역시 이와같은 사회환원을 실천하는 아름다움과 가슴 적시는 열정과 눈물이 있다. 사립뮤지엄들의 운영은 문을 연 순간부터 용기와 인내가 없다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들은 스스로를 ‘문화의 독립투사’라고 부른다.

얼마전 통계치로 보면 전국 100여개 사립뮤지엄의 역사, 문화, 학술, 예술, 과학 등의 소장품만 해도 90만건이 넘었고, 국보, 보물, 지방문화재 등이 130점에 달했다. 교육프로그램은 64개관에서 년간 15만명에게 혜택을 주었으며, 74개관의 투입 총예산이 3900억원 정도에 달했다.
 
그러나 이들의 운영예산은 입장료가 16%정도 도움이 되고, 아트상품은 4.5%에 머무는 등 ‘비영리기구’로서 뮤지엄을 운영해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지경이었다.

결국 모든 재정부담은 관장이나 설립자 개인이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은 극히 미미한 현실이다.

뮤지엄들의 기여도는 갈수록 다원화되고 있다. 사실상 공교육에서 다하지 못하는 현장 체험학습이나 역사, 문화, 예술, 과학, 자연 등의 전반적인 분야에서 대국민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최근 뮤지엄이 소장, 전시, 연구ㆍ보존 기능에서 교육기능을 4대 주요 사업으로 전환하고 지역민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는데서도 실감할 수 있다.

사립뮤지엄들은 종류도 다양하다. 김포에 위치한 영집궁시박물관에서부터 남양주에 위치한 커피박물관, 거미박물관, 고흥의 나로도 가까이에서 폐교를 활용한 남포미술관, 제주도의 표선 부근에 위치한 김영갑갤러리모두악 사진미술관, 강릉의 참소리축음기박물관, 서울의 가회박물관, 세계장신구박물관, 부천의 부천로보파크, 성남의 만해기념관, 밀양의 미리벌민속박물관 등 그 대부분이 공립이나 국립과는 판이하게 성격이 다르다. 
 
사립관의 대부분은 특수뮤지엄 성격을 띠고 있고, 한 두가지의 테마를 설정하고 설립자나 관장이 평생 동안을 컬렉션해온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 뮤지엄의 컬렉션은 관장의 삶이고 자화상이며, 생명과도 같은 이미를 갖는다. 수집과정의 에피소드나 무용담을 듣노라면 대부분의 뮤지엄들이 그 유물들을 수집하고 지켜오기 위하여 피눈물나는 역경을 거쳐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고이 닦은 천년 얼이 큰 빛으로 다시 살았네”
 
1971년 한국등잔박물관의 전시를 기념하여 남긴 글귀이지만 사립박물관들은 국가가 담당해야할 중차대한 임무를 한 개인들의 사명감과 섬세한 손길로 대신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역할과 반향은 결국 턱없이 부족한 문화기반시설의 역할을 수행해 가는데 절대적인 기틀이 되고 있다.
 
‘박물관법인’이 시급하다

미국은 현재 1만 7천개의 뮤지엄을 보유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등도 수 천개의 뮤지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웃나라 중국도 2천개 설립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600개 정도에서 300여개가 사립관으로 구성되어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불과 4-5년전까지만 해도 이들의 문화활동에 대하여 어떠한 지원도 없었으며, 최근에는 극히 미미한 지원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사립박물관들은 사유재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최근 수십년간 사립박물관을 등록하고 자신의 재산가치를 위해서 자진 폐관한 관은 단 한곳도 없었다. 모두가 국제박물관협의회의 헌장 중 가장 중요한 ‘항구적’ ‘비영리’의 원칙을 생명처럼 알고 있는 것이다.
 
 ‘이미 등록된 관들은 공공기구이다.’ 그러나 여기에 재단법인을 설립한 것은 운영만 전문가들이 할 뿐 사실상 국유화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장을 다니며 놀라운 것은 이렇게 모든 삶을 바쳐 재단화를 희망하는 관장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그 저변에는 박물관의 사회환원이라는 명분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후세들에 이르러 분산되지 않고 박물관의 형태와 내용물들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담겨져있다.


▲ 92년 거제문화재단에서 설립한 경남 거제박물관.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은 법인화가 불가능하다. 가장 어려운 것은 재단법인의 규정을 충족할 만한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관계당국에서는 하루속히 ‘학교법인’ ‘사회법인’ 식으로 ‘박물관법인’의 형태를 만들어서 보다 쉽게 재단등록이 가능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물이나 작품을 모두 재산으로 인정해주고, 과정을 간소화하며, 이를 운영하는 재원에 대해서는 일정한 지원금을 부여한다면 자동적으로 사회환원의 문호가 넓어져 지금보다는 훨씬 많은 법인들이 등록될 것이며, 결국 문화경쟁시대의 커다란 인프라를 형성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지자체전환 이후 급격히 증가해온 공립관들의 설립은 물론 환영할만 하다. 그러나 한 관을 설립하는데 투자되는 수 백억원의 예산이면 이같은 규모있는 재단급 박물관은 물론, 전국 수 백개의 사립뮤지엄을 활성화해 가는데 젖줄같은 역할을 하는 예산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문화유산 계승에 국공립, 사립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원본 기사 보기:박물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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