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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학자는 향토문화 지킴이죠”

향토박물관 건립 ‘시급’...한성백제 역사 재현해야

대담 모동희/송명용 영상기자 | 기사입력 2010/08/02 [09:11]

“향토사학자는 향토문화 지킴이죠”

향토박물관 건립 ‘시급’...한성백제 역사 재현해야

대담 모동희/송명용 영상기자 | 입력 : 2010/08/02 [09:11]
[100人 인터뷰 3 - 한동억 경기향토문화연구소 소장 ] 성남일보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각계각층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봉사자들의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100인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지역의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사람들의 삶을 통해 지역발전의 희망을 보려 하는 것입니다. 이 번 인터뷰는 지역을 발로 뛰며 지역문화 정체성 찾기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한동억 소장이다. [편집자 주]
 
- 향토 사학자로 불려 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한 마디 해주시죠.
 
향토사학자 그러면 보편적으로 지방에 있는 전례, 설화 또는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지역 정서 또는 지명 이런 것들을 연구하고 또 후대에 전하기 위해서 그것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향토사학자다. 이렇게 정의를 할 수 있겠죠.
 
근데 향토사학이라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것이 어떠한 기준이 하나도 없어요. 여태까지 그래서 국가의 지원도 없고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나름대로 개개인이 노력을 하는 것이 지금 현재 향토사학계의 현황입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도 이제 서울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나가서 살다가 92년도에 (분당)아파트 입주를 하면서 와보니까 동명조차도  초림동이니 백궁동이니 무슨 뭐 불정동이니 내장동이니 서당동이니 옛날에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이름들이 있어서 이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때 당시 의회에 행정자치부 위원장하고 의장하고 제가 담판을 했어요. 이름 바꾸어야 된다. 서울의 신림동이 십여동이 있어도 봉천동도 그렇고 아무 탈 없이 쓰는데 여기에 이런 해괴망측한 이름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래 가지고 시작을 했는데 향토사란 것이 바로 그런 겁니다. 문화를 보존하고 발굴하고 개발해서 후대에 전하는 그런 것이 향토 사학자들이 하는 일이지요.
 
- 향토사에 매료되게 된 동기는.
 
결정적인 동기는 좀 전에 말씀드렸던 것과 같이 지명이 잘못 돼서 그것을 가지고 쫓아 다녔고 또 와서 보니까 율동 뒤에 영장산이 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그려진 모든 지도에 영장산으로 되어 있고 또 동국여지승람에도 영장산 해서 남한산성에서 제준함 20리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것을 자꾸 매지봉 또는 맹산 이렇게 해놓고 광주노인회에서 맹산이라고 표석을 갖다 세워 놓았어요.
 
그래서 이것은 아니다라고 해서 자료를 내가 36~7개 정도의 자료를 취합해 국립지리원에 민간이 사상 최초로 산 이름을 바꿔 달라 그렇게 하다가 보니까.국립지리원에 지도과장이 21세기에 고산자가 같은 분이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이것이 안되니까 열심히 하도록 도와 줘라. 그래서 그분하고 손발을 맞춰서 영장산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이제부터 내가 뭐 사회적으로 보면 들을만큼 들었고 또 우리가 여태까지 수백년 동안 율동에서만 530년을 살았는데 수백년 살아 오면서 지켜진 이러한 지명들을 찾아야겠다. 그리고 또 역사적인 모든 큰 행사들, 소위 3.1운동이라든지 또는 의병이라든지 이런 것은 네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 이셨기 때문에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으니까. 이것을 분명하게 후대에 전해야겠다.
 
이제 적극적으로 뛰어 들었죠. 또 문화원에서도 남선우 원장께서 저를 너무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그래서 문화원에 연구소 연구원으로 처음에는 시작을 해서 연구위원 뭐 이렇게 하다보니까 적극적으로 매진을 하게 된 겁니다.
 
- 지역 향토사의 현황은...
 
지금 현재는 향토사학자들이 자원봉사 스타일로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성남지역이 경기도에서 조차 천년경기라고 해요. 근데 경기도는 2200년경 됩니다. b.c 195년에 위만이 고조선의 마지막 임금 준왕에게 빌붙었다가 194년에 준왕을 내몰고 지가 위만 조선의 왕이 됐는데 그 때에 이제 준왕께서 내려와서 서울을 잡으신 곳이 지금 광주시 경안읍 지금은 그것이 회안국이라는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때서부터 지금에 현재 수도권이죠. 그리고 한성백제에 495년간 수도권 또 그러고 나서 통일신라 때는 물론 잠깐 아니었습니다만 고려개국 했을 때 개성도 경기도니까 수도권 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요. 여태까지 그런데 이 한성백제에 문화는 군사 문화인데 한성백제의 문화의 발상지가 바로 성남시에요.
 
왜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느냐면 창곡동에 가면은 세자궁 터가 있습니다. 지금도 땅을 파면은 곡탄이 나오는 그러한 곳이 있는데 백제문화는 세자가 모든 군권을 다 장악했기 때문에 바로 군사 문화다. 그리고 온조의 개국 정신이 강병부국이었지 부국강병이라는 말은 요즘에 와서 쓰는 거에요.
 
그래서 그런 지역의 향토사를 개발 하는데 있어서 바로 한성백제를 우리가 되찾기 운동을 해야 되는데 그게 엄청 어렵습니다. 남한산성만 해도 한성백제 옛 토성이나 목성 또는 근초고왕 26년에 371년에 서울을 아예 남한산성으로 옮겼어요.
 
고구려에서 처 올라가서 고국원왕을 죽이고 평양성을 거의 못 쓰게 만들어 놓고 회군해서 왔는데 고구려의 보복이 두려우니까 하남 위례성에서 남한산성으로 수도를 옮긴 것이 삼국사기에 나와요.
 
그런데도 지금 현재 우리는 그 공부가 부족하니까. 어떤 학자들도 그것을 인정 안해서 남한산성 홍보관에 보면 신라 문무왕 623년에 축성을 했다. 그 이전에 서울인데 축성을 안하고 살았겠냐는 거에요. 토성이 됐던 목성이 됐던 아니면 석성이 됐던 분명히 거기는 성이 쌓여져 있었고 백제의 축성 기술은 상당히 양호하다는 것이 온조 때에 9개의 성을 쌓았어요.
▲ 향토뿌리 찾기에 매진하고 있는 한동억 소장.     ©성남일보

그리고 북한산성은 132년에 쌓았는데 그런 것을 보면 분명히 남한산성에 축성 시기가 월등히 앞당겨짐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있다. 이것은 뭐냐 향토사가 사료성에 가치는 분명 인증하는데 학자들이 인증을 안하는 근데 학자들에게 제가 대놓고 이야기해요.
 
371년에 분명히 서울을 옮겼다라고 했는데 남한산성으로 그러면 남한산성의 서울은 마당에다가 서울이라고 했겠냐 성 쌓았죠. 그러면 그래서 그런 것들 때문에 바로 성남시에서 향토사가들에게 좀 지원을 하고 문화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됐다면 한성백제에 대한 것들을 우리가 다시 찾아서 그 문화를 후대에 물려 주어야 된다.
 
그래서 사실은 성남문화원에서 제가 발의를 했지만 송파 신도시 그럴 때 위례 신도시도 한성백제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우리가 시작을 해서 6개 관청에 넣어 가지고 통과가 된 것이죠. 그런 관심을 언론에서도 가져주시고 언제나 저희들이 언론에 무슨 개제할 요청물을 달라고 하시면 드릴 수 있으니까
 
- 향토사학자로서 활동해 오시면서 가장 보람을 꼽는다면...
 
가장 보람이 있었던 것은 영장산 이름을 찾은 것, 그것이 가장 보람이 있었다고 봅니다.  두 번째로는 율동의 3.1운동 기념탑,그것을 세우기 위해서 주머니 돈을 털어서 행사를 시작 해가지고 8년여만에 결실을 봤어요. 그런 것이 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짐으로 해서 이러한 큰 일도 할 수 있구나. 율동 공원에 3.1운동 기념탑을 세운 것이 아주 참 보람차다. 그런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  활동중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제가 먼저 성남시의회에 사회복지위원회에서 저하고 대화를 나누던 의원들이 먼저 그랬어요. 성남에 대한 모든 문화 유적 멸실 되어 있지만 그런 것을 한 번 챙겨서 책을 하나 써주시오. 그래서 제가 성남문화유적이라는 책을 하나 썼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46개 멸실문화 유적을 썼고 나머지가 또 그만큼 정도 있어요. 그런데 예산을 못 주니까 그것을 못 쓴 게 아쉬웠고 또 하나는 한성백제에 그 당시에 지었다는 낙생 행궁, 광주 동정 그리고 또 여기 세자궁 또 한성 백제의 최초의 절이라는 율동의 영장산 금광사 이런 것을 좀 발굴 조사라도 해보자.  그런데 그것이 안 되어 있는 것이 아주 안타깝습니다.
 
또 백만시민이 움직이는 성남시에 박물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아주 가슴 아프죠. 이 분당 신도시를 만들면서 나온 유물 또는 판교신도시 또 도촌동, 여수동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만 해도 박물관 하나에 설치할 만한 그러한 유물들이 됩니다. 그리고 원래 박물관이 인구 9만명당 하나씩 정도는 지을 수 있어야 되는데 백만시민에게 박물관이 없다는 것은 너무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죠. 그런 것이 정말 참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멸실 문화유적이지만 이것을 재현 하면 관광 성남은 저절로 되요. 제가 중국에 가서 느낀 것이 아방궁, 화천궁을 콘크리트로 짓고 단청만 옛 단청하고 유사하게 해놓았어요. 그것을 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왔는데 아직까지 우리 나라는 재현이라는 말 보단는 복원 소리에 너무 치우쳐 있어서 그게 좀 아쉽죠.
 
- 역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저는 지금도 성남에 많은 지역의 유지들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한성백제의 그 찬란했던 문화를 우리가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백제의 문화 유적을 철저히 발굴 조사해야 되겠다.
 
그리고 이 지역이 조선 시대에 임금님들이 제일 많이 나온 지역입니다. 왜 그러냐면 송파벌에서부터 궁내동 톨게이트 까지를 정금원들이라고 해서 대열이라는 팔도에 군사들을 다 모아서 훈련을 하던 곳이기 때문에 그 발자취가 남아 있는 문화 유적들을 하나 둘씩 우리가 복원해 가면서 이것을 해야 되지 않느냐.
 
그래서 시장님들에게 항상 건의를 제가 드렸습니다. 이번에 새로 당선되신 이재명 시장 같은 경우 이런 쪽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줄은 모르지만 앞으로는 모든 단체장들이 문화 마인드가 없이는 좀 어렵지 않으냐라는 말씀을 감히 드리고 있거든요.
 
여러분들 한테 그래서 한성백제 문화에 대한 우리가 재발굴 그리고 조선시대에 여기에 횡행했던 군사문화에 대한 유적지 또는 통신, 교통 시설이 조선시대에는 제일 발달된 곳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낙생 행궁 같은 경우는 일본에서 사신이 오면 무조건 낙생 행궁에서 머무르고 계시면 서울에서 접반사가 쫓아 내려와서 모시고 올라가는 그런 명소였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없으니 안타깝죠.
- 꼭 이루고 싶은 희망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이야 너무 많죠. 근데 가장 해야 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멸실 문화 유적에 대한 복원을 시민들과 함께 해서 이 복원이 되면 제가 먼저 시장님한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한 10여개 정도만 복원을 해도 성남은 분위기 바뀝니다.
 
그리고 여기는 종교 이념 사상이 다 다르더라도 한성백제에 그 찬란했던 문화 이것을 복원해야 되고 그 이후에 고려 시대에는 목장이라는 이름으로 광주 목장이 전국에서 제일 컸습니다.
 
다른 곳에 2, 3배 정도 될 정도로 컸고 여기에서 기르는 말들은 아주 명마로서 군마로서 그것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이러한 과거에 흘러간 문화에 역사를 우리가 되찾아서 후대에 물려줌으로 해서 성남이 과연 역사 문화에 찬란했던 금성탕지다라는 그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희망입니다.
 
- 강조하고 싶은 말씀 한 마디...

제가 얼마 전에 향토문화에 대한 미래 비전에 대한 토론회가 용인시에서 있었어요. 거기 가서 제가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그날은 문화원연합회 회장님도 오시고 했는데 문화 관광부에 건의를 해서 문화관광부에서 지정하는 향토사학자 제도가 도입이 되어야겠다.
 
그렇지 아니하면 자비를 움직이기가 힘이 들어요. 사실은 왠만하면 먹고 살아야 되는데 자기 생계는 뭐 차지하고라도 여비조차도 네 주머니에서 털어서 다니고 또 쫓아가서 그것을 발굴을 하는 것 그 과정을 구경을 하다보면 너무 피곤하기 때문에 그러한 사학자 제도에 도입도 필요하고 또 지방자치단체에서 향토사에 대해서 좀 지원을 아끼지 말아 주셨으면 하는 생각이구요.
 
또 문화원에 지금 현재 향토문화연구소가 예속되어 있습니다만 이것은 향토문화 연구소라는 것을 진짜 시민들이 누구나 이것에 반영을 하여서 일을 할 수 있고 그러한 시민 전반에 단체로 이렇게 좀 키워 갔으면 하고 싶은 생각이 하고 싶은 일이고 또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성남이 멸실 문화 유적이 한 100여 곳 있는데 거기서 반 수만 해 놓아도 관광 성남은 묻지마라 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런 점이 아쉽죠. 모르는 분들이 많다보니까 이제 이해를 시켜야 되고 또 이해를 하신 분도 그 자리에 지켰다가 또 자리를 옮기면 뭐 책임을 떠났으니까.
 
이런 안타까움 때문에 사실은 성남 문화원은 원장님께서 부원장으로 계실 때부터 향토사에 대해서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계셔서 우리가 발굴 해 낸 분들만 해도 성남에서 상당히 여러 분 계시고 문화 유적으로 지명 받은 곳이 9개나 되고 또 학술 세미나를 매년 개최를 하면서 훌륭한 분들에 정취를 또 그분들의 자취를 후대에 물려주는 그런 큰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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