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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실명제 폐지 수순 ‘돌입’

정부,네이트 해킹 계기 폐지 검토중 ... 성남시 대응 ‘주목’

송명용 영상기자 | 기사입력 2011/08/04 [08:34]

인터넷실명제 폐지 수순 ‘돌입’

정부,네이트 해킹 계기 폐지 검토중 ... 성남시 대응 ‘주목’

송명용 영상기자 | 입력 : 2011/08/04 [08:34]
성남시가 지역 인터넷신문에 적용하려 하는 댓글 실명제에 대해 네티즌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시행 5년을 맞은 인터넷실명제 폐지를 검토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일 관련 기관 협의를 통해 인터넷실명제 완전 폐기 외에는 인터넷상 개인정보 해킹을 차단할 방법이 없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이처럼 인터넷실명제  폐지를 검토하게 된 것은 최근 네이트- 사이월드 해킹으로 개인정보 3천500만건이 유출되는 등 포털 등에 보관중인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 보호가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인터넷실명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홈페이지에 개인의 신상정보와 주민등록번호 등록이 필수적으로 이뤄줘야 가능하다.
▲ 지난 2006년 인터넷실명제 폐지를 주장하는 언론단체 집회 장면.     © 성남일보
그러나 성남시는 이재명 시장체제 출범후 인터넷신문의 악성 댓글을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행정광고비를 차등 지급하는 등의 방법으로 인터넷신문에 대해 실명제 도입을 강제하고 있어 댓글 실명제 여부가 지역사회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상태다.

이번 정부의 정책 전환에 대해 김상수씨(32.분당구 서현동)는 “정부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인터넷실명제를 시민의 세금으로 집행하는 행정 광고와 연동해 인터넷신문에 강제하려는 성남시의 행태는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성남시 관계자는 “성남시도 정부의 방침을 주시하면서 실명제 대신 제한적 회원 가입제 등의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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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 대표 2011/08/06 [13:56] 수정 | 삭제
  • 2011년 8월 2일 분당의 모처 식당에서 성남시청 비서실 관계자 2명과
    현 성남시장애인연합회장이 된 정일상과 전 성남시장애인연합회 사무국장인
    위국양이 점심을 같이 하며 단체에 대한 밀담이 있었다고 합니다.

    내용은 비서실관계자가 직접 성남시장애인연합회의 정관을 만들어서 내려주면
    거기에 따라 운영하라는 내용과 여직원 성추행사건으로 쫓겨난 전 사무국장인
    위국양을 현 시장의 선거에 큰 공이 있으니 다시 복귀 시키라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장애인단체의 정관이라는 것이 비서실에 계신분들과 점심식사하며 만들어지는
    것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그리고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떠들썩하게 장애인단체
    위상을 실추시켜 쫓겨난 전 장애인연합회 사무국장인 위국양을 현 시장선거에
    큰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다시 복직 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길 바랍니다.

    혹 만약 위국양이 복귀 한다면 선거에 큰 공을 세워서 다시 재취업을 시켜준
    것이 사실이었다고 생각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차후 선관위에 댓가성으로
    질의를 해도 되겠습니까?

    모든 장애우분들과 단체장들은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전 연합회사무국장인
    위국양이는 본인과 그 죄를 인정하여 강제추행, 약식명령 벌금 2,000,000(이백만)원을
    납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성추행, 성폭력등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 처벌이 강화된 시점에서
    성남시 비서실의 관계자가 선거에 공이 있기 때문에 다시 위국양이를 복직시
    키라는 것이 사실이 아니길 바랍니다.

    썩어빠진 단체장들은 각성하고 정말 진정으로 장애우들을 위하는 단체를 만드도록
    노력 할것이며, 성남시 비서실에서 선거의 목적으로 떡 주무르듯이 관리하는
    장애인단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35,000여명의 장애우들은
    늘 지켜볼것이며, 조속히 장애인단체의 정관에 관해 했던말과 성추행범인
    위국양을 복직시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며 차후 다시는 이런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래고랜드가 짜가적인 나임을 증명해준다 2011/08/04 [20:54] 수정 | 삭제
  • 데카르트가 발견한 '코기토' 이래 '나' 또는 '나라는 의식'을 지반으로 한 모든 의식주의에 대해 '최초로 '뻥 까는 소리'라며 그 의식의 바닥에 있는 '사유'라는 '비익명적'이고 '비인칭적'인 장을 발견해낸 사람이 사르트르입니다. 레고블럭은 그 사르트르를 끌어들여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터넷실명제를 찬동하는 자들의 견해의 뿌리인 그 인칭적 의식 또는 주체적 의식의 '허구'를 박멸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르트르의 이 의식 이전의 초월적인 장에 관한 이론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이론이랍니다. '대충 아는' 것은 '아는' 것과 아주 다르지요. 대충 아는 자는, 그러므로 인터넷실명제를 찬동하는 그 의식조차 흔들리는 '짜가적인 나'에 불과할 뿐이죠. 주둥이는 아무렇게나 놀리는 것이 아니랍니다.
  • 어울리는 닉은? 2011/08/04 [13:19] 수정 | 삭제
  • '우주랜드' 또는 '서울랜드'---은하철도999 같은 각종 놀이기구도 있구요, 동물원도 있구요, 덜 자란 꼬맹이들이 참 좋아하지요. 그쵸?
  • 이변 2011/08/04 [12:51] 수정 | 삭제
  • 실명제가 아니라,김부선 노이로제가 맞습니다, 맞고요.
  • 이재명 2011/08/04 [10:57] 수정 | 삭제
  • 잊지 않으마.......
  • 레고블럭 2011/08/04 [10:44] 수정 | 삭제

  • 아이들은 레고블럭을 좋아한다. 조립에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배, 집, 기계, 자동차, 기차, 탱크 등등 원하는 것은 거의 모두 조립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목표로 하는 무언가를 조립하기 위해선 해체해야 한다. 다른 것을 조립하기 위해서 또는 조립한 것이 별로여서 해체하는 것이다.

    이 조립-해체가 자유롭다는 데에 아이들이 레고블럭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제한에 가까운 조립-해체의 가능성, 그에 수반되는 자유로움이 얼마나 아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에 도움에 되는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독자로서 우리는 어떤 기사를 읽는다는 것을 이 레고블럭 놀이에 유비할 수 있다. 읽는다는 것은 그 어떤 기사에 쓰인 것을 재료 삼아 어떤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어떤 의미의 구축물을 조립하거나 해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레고블럭 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 독자인 우리는 배, 집, 기계, 자동차, 기차, 탱크 등등에 비유할 수 있는 어떤 의미의 구축물을 조립할 수 있고, 반대로 그것을 해체한 의미의 구축물을 발명할 수도 있다. 조립된 의미의 구축물이든 해체된 의미의 구축물이든 그것을 다른 독자들이나 기자에게 내보일 만해서 '의견쓰기'란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들이 의미하는 것은 '독자로서 읽고 쓴다는 것'이 조립의 방식이든 해체의 방식이든 그것이 기사라는 읽고 쓰는 대상을 분해해 다른 대상을 창조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창조행위는 조금 다른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분해를 통한 새로운 대상의 창조에서 그 행위자인 독자 역시 분해되고 분해되는 만큼이나 새롭게 창조된다는 사실이다. 즉 새로운 대상의 창조에 걸맞게 새로운 독자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 정당, 가문, 계급, 지위, 학연, 지연, 성별, 연령과 같은 현실 정체성의 척도들을 무기력으로 몰아넣는 전혀 이질적인 독자의 탄생임은 물론이다.

    요컨대 읽고 쓰는 독자는 '현실에서의 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현실에서 어떤 정체성으로 제약되는 나라는 것은 해체되고 그때그때마다 읽고 쓰는 독자로서 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독자는 어떤 단일한 정체성을 가진 주체가 아니다.

    오히려 조각나고 파편화된 부스러기 같은 주체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을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주체가 아닌 그저 그때그때마다 다르게 출현하는 사유가 아닐 수 없다. 주체 없는 사유 그 자체.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어떤 정체성에 갇히지 않는 '복수의 사유 그 자체'인 것이다. 어떤 기사를 읽고 쓰는 독자란 원리적으로는 이렇다.

    아이들이 레고블럭 놀이를 즐기는 것처럼 어떤 의미의 구축물을 분해하거나 창조해 내놓는 일은 재미가 있다. 또 그것이 의미의 구축행위인 한, 의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에 성실한 독자, 이 성실한 경험을 풍부하게 가진 독자는 분해와 창조의 재미와 느낌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재미와 느낌을 통해서 주체없는 사유가 그때그때마다 출현한다는 것, 바로 복수의 사유라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반면 어떤 독자들은 이 실감이 전무하다. 그들은 현실의 단일한 정체성에 갇힌 나라는 것을 통해서만 그때그때마다 출현하는 사유들을 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이들은 눈이 흐리다. 눈이 흐리니 무엇 하나 제대로 알아볼 리 만무하다.

    때문에 이들은 주체 없는 사유로 나타난 의견들을 현실의 단일한 정체성을 가진 주체로서만 포착하고 판단해 버린다. 이들이 그 의견의 제출자에 대해서 실명이라는 주체를 문제 삼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익명의 형태로 나타난 그것을 주체 없는 사유가 아닌 실명을 숨긴 주체로 오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들의 요구는 걸 맞는 응답을 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이 문제 삼는 주체는 그것이 실명으로든 익명으로든 주체로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 없는 사유로서 출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이들에게 거꾸로 읽고 쓰는 독자로서의 자격, 권리가 있는지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독자라고 다 같은 독자가 아닌 것이다.

    인류역사상의 전혀 새로운 인터넷문화가 안착되기 위해서는 이런 얼치기 독자들이 소멸되어야 한다. 이것이 주체없는 사유들에게 심각한 사유의 투쟁을 동반함은 물론이다. 분명한 것은 이 투쟁에서 현실에서 통용되는 주체를 내세우는 얼치기 독자들은 그것이 실명이든 익명이든 주체 없는 사유라는 전혀 이질적인 독자들의 출현 앞에서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주체 없는 사유가 요구하는 것은 역지사지 또는 그것을 넘어선 형태로 다가오는 또 다른 주체 없는 사유이지 주체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주체가 '사유없는 주체'(사유의 부재를 채우는 것은 흔히 그 주체 의도, 비방, 음해 따위다)일 때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읽고 쓰는 독자로서 주체없는 사유들은 읽고 쓰는 대상과 주체에 대해 고유한 원리를 가지고 있다--'읽고 쓴다는 것은 어떤 대상도 어떤 주체도 분해하고 폭파한다. 와르르! 꽝!'

  • mms 2011/08/04 [09:03] 수정 | 삭제
  • 여러가지가 문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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