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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자와 지역신문 기자

누가 기자다운 기자인가 ... 맹목적 충성 기자에게 미래는 없다

이건행 | 기사입력 2003/01/16 [08:35]

조선일보 기자와 지역신문 기자

누가 기자다운 기자인가 ... 맹목적 충성 기자에게 미래는 없다

이건행 | 입력 : 2003/01/16 [08:35]

[이건행 칼럼] 조선일보를 보고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즈음에는 달라진 매체환경을 어떻게 해서든지 되돌려 놓으려고 안간힘 쓰는 걸 보며 놀란다. 인터넷 매체가 시대적 대세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것이 아니라고 억지부리는 걸 보면 조선일보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행.     ©성남일보

그러나 이런 자가당착은 조선일보 특유의 것이니까 그리 새로울 게 없다. 실은 조선일보 기자들 그 누구도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매체의 반양심적이고도 반개혁적, 반민주적, 기만적 보도행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는 점이 놀랍다. 기자가 수백 명에 이를진대 양심선언은 고사하고 문제제기를 하는 기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건 놀라움을 떠나 섬뜩한 것이다.

 

그래서 조선일보가 무섭다. 노출된 숱한 문제점과 외부의 숱한 비판들 앞에서 마치 ‘그래, 네들은 짖어라, 우리는 수구의 길을 가련다’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만 같아서 무서운 것이다. 파쇼세력도 자신들의 모순과 외부의 비판에 모로쇠로 일관하지는 않는다. 철권통치를 자랑했던 박정희나 전두환도 때로는 외부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가.

 

흔들림 없는 조선일보 기자들의 모습은 그래서 박정희나 전두환 보다 더 살 떨리게 한다. 조선일보에 들어가기만 하면 왜 저토록 획일화되는 걸까, 왜 저토록 문제의식이 사라지는 걸까, 그 원동력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하고 많은 걸 생각해 보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국내 언론사 중 최고의 대우, 서울대 출신이라는 엘리티즘, 상상을 초월하는 조선일보의 노무관리 등이 기자들의 충성심을 이끌고 있다는 것쯤은 안다.

 

그러나 이 것만으로는 그들의 끔찍한 충성심을 설명하지 못한다. 주류의 대물림이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마찬가지다. 주류들 중에서도 주류를 비판하는 낭만주의자들이 이따금씩 나타나기 때문이다.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사람들이 모여 어쩌면 저렇게 회사의 방침에 따라 그야말로 찍소리도 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분명 끔찍한, 그러나 흥미로운 연구대상이다.

 

연구대상이기에 이는 사회학자의 몫일 터이다. 단지 여기서 그들을 더 이상 주목할 이유는 없다는 점만 분명히 하고 싶다.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몸짓은 그것이 견고하든 우아하든 추한 까닭이다.

 

그들의 이런 모습은 한편으로는 기자들 사회에서 비주류 중의 비주류인 지역언론 기자들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점을 생각케 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정 반대편에 누추하게 자리잡고 있는 지역언론 기자. 한번 곰곰이 따져보자. 누가 더 누추한 존재인가.

 

최소한 이 말만은 가능할 것 같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은 꿈이 없는 반면 지역언론 기자들은 꿈이 있다.’ 영웅들은 일그러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만 하면 되지만 누추한 존재들은 태생적으로 기득권을 비판해야하기 때문이다. 지역언론 기자에 대한 기대는 그래서 순리이자 아름다운 게 아닌가 한다. 이건행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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