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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여관에 버금가는 곳이 충남문학관

이재인 / 한국문인인장작물관장 | 기사입력 2020/02/22 [18:46]

수덕여관에 버금가는 곳이 충남문학관

이재인 / 한국문인인장작물관장 | 입력 : 2020/02/22 [18:46]

[한국문인 인장의 숨은 이야기①] 우리 고장에는 고암 이응노 선생이 한 때 머물렀던 수덕여관이 있다. 이 수덕여관이 지어진 연대는 미상이다. 옛 어른들은 아마도 한일합방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집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명인이기 때문에 명가로 일컬어진다. 

▲ 이재인 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

이 수덕여관에 화가 나혜석이 잠시 머물러 있었다. 그의 전기대로 그는 1939년 이 수덕여관에 거주했다. 그는 1896년 수원에서 태어나 서양화가로서, 우리나라의 신여성으로서 그 독한 유교의 가부장적 권위와 맞서 싸우는 허망한 삶을 살았다. 

 

그는 남편고 이혼하고 수덕사 조실 만공스님을 찾아왔다. 친구였던 일엽수님을 통해 출가 의향을 제기했다고 한다. 

 

만공이 당시 나혜석 한테 중노릇을 할 인물이 아니라고 하여 거절당한 뒤 수덕여관에서 장기간 머물렀다고 한다. 고암 이응노 화가도 나혜석을 만나보러 자주자주 수덕여관을 찾았다고 한다. 

 

1944년 무렵 나혜석이 이곳을 떠난 뒤 고암 이응노가 이 여관을 사들여 작업실로 삼았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수덕여관은 오늘날까지 명가, 명소로 알려져 있다. 김일엽, 나혜석, 이응노 이 세 사람이 활동한 무대가 수덕사 경내였다는 사실은 그곳을 명가와 명소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예산의 또다른 명소는 어디일까? 그것은 예산 광시에 있는 충남문학관이 아닌가 싶다. 이곳에는 유치진, 박종화, 서정주,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오영수, 조연현, 백철, 유치진 선생 등 700여명 정도 되는 문인들의 인장이 보관되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고 문학과 인생의 경계에서 가난과 질곡과 싸우던 사람들의 귀한 문화유산이 보관되어 있다. 그들의 지문, 그들의 삶의 언저리에서 눈에 익은 과거사가 묻힌 인장이 누워있는 공원. 

 

오늘도 충남문학관은 그 유명한 문인들이 붉은 지문을 머리에 이고 과거를 되살리면서 오늘을 살고 있다. 

 

700여명의 문인들은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그리고 4.19와 5.16을 겪으면서 고난의 삶을 살았던 역군들이다. 

 

이동희, 전상국, 오찬식, 안장환, 이동하, 홍석영, 전상국, 신상웅, 박영웅, 백시종, 유후명, 이문구, 김주영까지 . 이들이 한국소설 산맥을 이루는 것이다. 

 

김남조, 김후란, 이형기, 오탁번, 성찬경, 황금찬, 박희진, 박재천, 강우식, 이탄, 김여정 시인들의 찬란한 이름도 존재하는 공간이 어찌 수덕여관을 못 따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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