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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사랑이 필요할까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0/06/01 [17:48]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사랑이 필요할까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0/06/01 [17:48]

[최창일 칼럼] "사랑의 집을 사두었으나 아직 들어가 보지 못했네”

 

로미오와 줄리엣 3막 2장에 나오는 명  대사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미완의 사랑으로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대사만 보아도 가슴이 미어진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사랑이 필요한 것일까. 아직도 그에 관한 답을 내 놓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철학자, 사랑을 소재로 한 작가는 많았다. 오늘도 작가는 사랑에 대하여 꾸준하게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사랑에는 사유(思惟)하는 마음의 사랑도 있다. 또는 헛된 사랑도 있다. 사랑의 종류는 30만 가지도 넘는 다는 추정의 환산치가 있다. 결론인 즉은 답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의 노자(출생, 사망 미상)는 사랑에 대하여 가장 고민을 많이 한 학자중의 한 사람이다. 과연 노자의 가정은 완성의 사랑이었는지 그 어디에도 근거는 없다. 다만 사랑을 연구하다가 생을 마쳤다는 자료만이 있을 뿐이다.

 

여름이 다가 온다. 고향에 가면 어머니는 소박한 밥상을 만든다. 어머니가 내어주는 밥상은 찬물을 우리고 밥을 말아서 들기름에 볶은 김치랑 단출히 먹어도 사랑이 넘친다. 주변의 어느 시인 기자가 있다. 서울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주말이면 전북의 어머니 댁에 내려간다.

 

국회를 출입하고 출입처에 밀리는 기사가 넘친다. 그래도 주말이면, 어머니의 밥상을 그리워한다. 그 밥상은 소박한 사랑이 담겨 있다. 그는 어머니 밥상을 SNS에 꼭 올린다. 세상사의 쓸쓸한 일들이 소박한 어머니 밥상 하나, 받으면 오래된 생각 하나가 사랑으로 바뀐다.

 

땅에 뿌리박은 모든 것들,  땅에서 길어 올린 것들은 사랑의 밥상으로 오른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것은 모든 것을 버린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아무것도 욕심을 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의 밥상만을 사랑으로 생각하는 기자 시인이 진정한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새벽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수녀님은 과연 사랑의 말씀을 만나고 나오는 것일까. 나뭇가지에 달린 잎 새들이 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수녀님의 회색 옷자락에 인사를 한다.

 

이원좌 시인께서 시집을 준비한다. ‘시가 왜 거기서 나와‘ 재미있는 제목이다. 해설을 멋지게 만들어 주었다며 열무김치 선물이다. 

 

여름이 오는 길목에는 소박한 열무김치가 밥상의 어른 노릇을 한다. 환성을 부르는 열무김치는 숟가락의 속도에 지장을 준다. 

▲ 최창일 시인.     ©성남일보

몸과 마음은 왜 그럴까 어릴 적 먹었던 열무김치의 맛을 그렇게 잊지 않고 기억해 낸다. 법정스님의 말씀이다. 모든 것을 버린다. 단 한 가지 어머니가 남겨주신 여름날 열무김치의 맛은 버리지 못한다고 했다. 

 

아마도 법정 스님은 그것이 사랑의 소중한 자산이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사랑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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