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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회장, 비극을 쏘다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0/07/15 [08:16]

신격호 회장, 비극을 쏘다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0/07/15 [08:16]

[최창일 칼럼] 슬픔의 탄생은 에덴동산에서 아담부부가 쫓겨나며 시작되었다는 성서적 학설이 있다. 다소 통속적이다. 슬픔이란 인간의 탄생 옆에서 나무처럼 성장하거나 꺾이는 것이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어느 시인은 슬픔이란, “죽음보다 지독한 형벌을 만드는 것이다”. “펄펄 끊는 국물이 다 식을 때까지 앉아 있다가 특별한 이야기 없이 돌아서는 것”이라는 구절도 있다. 

 

슬픔의 역사를 극명하게 표현한 작가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독일 시인, 정치, 극작가, 과학자1749~1832)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라는 철학자도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가 1775년 변호사가 되어 고등법원 실습생으로 베츨러에 머무는 동안 샬로테 부프와 비련을 겪은 후 쓰였다.

 

소설은 사랑했던 여인이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된 베르테르는 본인과 사랑이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에 비관하며 스스로 삶을 마무리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소설의 파급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베르테르를 우상으로 삼는 젊은이들이 생겨났다. 특히 이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에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는 많은 젊은이들이 베르테르를 따라 자살(베르테르효과Werther effect)하는 상황이 있을 만큼 유럽사회에 큰 파문의 돌을 던진 작품이다. 

 

이와 반대로 동양의 청년이 비극을 정면으로 쏘아버린 일도 있다. 롯데의 신격호(1922~2020) 회장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감명을 받아 회사명을 ‘롯데’(1948년 설립)라고 지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비극의 씨앗을 받아 자살하는 유럽의 젊은이들이 있는가 하면, 동양의 청년 신격호는 작품 속 주인공 ‘롯데’ 이름의 영감을 받아 ‘롯데그룹’을 창업하는 긍정의 면도 본다.

 

신격호 회장이 바라보는  행복은 실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리는 일종의 제현을 통해서 존재했다. 따라서 행복을 직접 실현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에게는 행복으로 다가온다고 믿었다. 

 

행복이란 언제나 지금과는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있는 만큼,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인류 역사의 출발점에서부터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기까지 행복이 어떠한 방식으로 인식되는 가는 문학, 예술, 사회, 정치, 역사를 아우르는 다양한 분석으로 전개된다.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행복은 인간에 대한 배려를 뜻한다. 각자 자기 방식으로 자기만의 목표를 세워 추구한다는 점에서 행복은 전적으로 개인 문명 속에 속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든가 가정을 꾸린다든가 자식이 좋은 친구와 함께 한다든가 사회적으로 성공한다는 등의 공통적인 경험을 통해 정의 하곤 한다.

 

신격호 회장은 젊은 베르테르를 문화적 관점에서 롯데시네마를 만들었다. 롯데 껌은 젊은 베르테르를 씹는 것이다. 그것은 슬픔의 씨앗을 제거하고 행복을 형태로 추구하였다. 이 같은 문제는 행복과 슬픔은 같이 성장하는 나무로 보았다.

 

행복해지려는 동기는 개인과 시대, 문명에 따라서 서로 다르게 형성돼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 하면 행복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엇‘을 추구하게 하는 계기이자 구실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불행은 밤비가 속살거리며 내리는데 등불을 밝히지 않고 어둠을 끌어안고 누워 있는 것과 같다.

▲ 최창일 교수.     ©성남일보

반대로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베르테르는 보이는 패가 아니었다. 버린 패의 화투장과 같다. 신격호 회장이 본 샬로테는 행복의 근원으로 보았다. 문화적, 상품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슬픔은 더 큰 슬픔으로 덮어 내는 것들이 아니다.  더 큰 행복으로 덮는 것이다. 비극을 쏘아버린 자는 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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