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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도 철학으로 하면 사랑이 된다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0/08/21 [12:57]

질투도 철학으로 하면 사랑이 된다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0/08/21 [12:57]

[최창일 칼럼] 질투의 탄생은 인간의 탄생과 같이 한다. ‘젖먹이에게도 질투가 있다’고 아우구스투스(BC63~AD14)는 말했다. 성인은 욕망을 은폐하지만 어린이는 욕망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광고 심리학에서는 ‘질투를 자극하라’라는 문구로 이를 잘 이용하는 것 같다. 

 

서구의 신화들은 질투의 잔혹성의 관계 속에서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성경과 신화에는 가인과 아벨,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나 자매들이 자주 등장 한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질투한 나머지 인류역사에 최초 살인자 오명을 가진다. 

▲ 최창일

로마 건국신화에서는 형인 로물루스가 동생인 레무스를 죽이며 끝난다. 로마 신화는 강자의 편이다. 로마의 이름은 로물루스에서 따 왔다. 사회는 차이를 통해 유지되고 이루어진다. 신화들은 형제 사랑이 아니라 형제 투쟁, 질투의 이야기다. 즉 신화는 차이를 소멸시키는 존재에 대한 제의를 함께 달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희생양의 메커니즘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문화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기원으로 배웠다. 그러나 희생양의 저자 지라르(Girard 1923~)는 문화의 기원은 살해에 있다고 설명한다. 인류가 건물을 지을 때, 특히나 황궁(皇宮)을 지을 때 어린아이를 재물로 바쳤다. 

 

집이 든든히 서도록 희생과 폭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건물 뿐 아니라 문화, 문명 또한 이러한 희생과 폭력으로 유지 된다. 건물 밑에 아이들 뼈가 있듯이 문화의 기초에는 초석적 폭력이 자리 잡고 있다. 질서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피를 통해 이루어진다. 인류문화와 문명도 피로 지속된다. 그러나 인류문화는 이러한 희생제물이 은폐되어 있다.

 

우리정치사에도 정권탄생에 희생양이 된 광주(光州)가 있다. 전두환(1931~ ) 정권의 탄생은 광주라는 희생양을 통하여 탄생이 되었다. 그 같은 사실은 먼 이야기도 아니다. 그렇지만 전두환 씨는 광주라라는 희생양을 은폐하려 든다. 전두환은 광주를 폭도의 도시로 둔갑시켜 희생양을 삼은 것이다.  

▲ 최창일 교수.     ©성남일보

북한에서 침투한 간첩이 있었다는 터무니를 등장시킨다. 희생양을 통하여 당위성을 만들어 간다. 전두환 씨의 아내, 이순자 씨는 전두환을 민주주의 꽃이며 민주주의 아버지라고 전 씨의 회고록을 통하여 주장한다. 전형적인 희랍신화의 인용을 보는 듯하다. 

 

오이디푸스는 성공한 희생양이다. 전두환은 실패한 희생양으로 분류가 된다.

 

선한 영향력은 사회를 새롭게 만들어 간다. 불의를 들춰내고 희생양이 존재할 수 없는 곳이 된다. 지금도 우리사회는 희생양을 통하여 희생양을 살해하거나 추방시켜 재질서화 시킨다.

 

우리는 질투라는 것도 광고에서처럼 선하게 사용하면 인류의 발전을 만든다.

 

사회가 차이로 움직이듯 그 차이를 선하게 사용하는 자는 문명의 질서가 된다. 반대로 희생양의 메커니즘으로 사용하면 폭력과 파괴자가 된다.

 

결론적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자는 ‘아는 자’가 아니라 ’사고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질투도 철학으로 하면 성공한 사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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