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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8·10 광주대단지사건 50주년, 무엇을 할 것인가

성남일보 창간20주년 기념 온택트 생방송, 8.10광주대단지사건기념사업회 대안 모색 나서

강진구 / 중앙대 교수 | 기사입력 2020/10/01 [14:20]

[특별기고] 8·10 광주대단지사건 50주년, 무엇을 할 것인가

성남일보 창간20주년 기념 온택트 생방송, 8.10광주대단지사건기념사업회 대안 모색 나서

강진구 / 중앙대 교수 | 입력 : 2020/10/01 [14:20]

8·10 광주대단지사건 50주년, 무엇을 할 것인가 

 

 . ‘지금- 여기’, 광주대단지 사건의 肖像(초상)

 

- 8.10 광주대단지사건 50주년, 무엇을 할 것인가 생방송 보기 

  

2021810일은 광주대단지 사건이 발생한 지 정확히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건 발생 50주년을 맞아, 성남에서는 두 가지 의미 있는 성사되었다. ‘성남시 광주대단지사건 기념사업 등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하 조례안-’ 통과와 ‘8·10광주대단지사건 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 출범이 그것이다. 전자는 201964일 은수미 성남시장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시 의회에서 전원 동의로 원안이 가결되었다. 

▲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강진구 교수.

주요 내용은 그동안 성남시 의회에서 수차례 시도되었던 조례안 제정 과정에서 논란- ‘실태조사피해자 지원-사항이 삭제된 채, 광주대단지 사건 50주년을 염두에 둔 문화·학술 및 조사· 연구사업 등의 기념사업이 그것이다.그 결과 성남()에서는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구성, 기념사업의 추진, 관련 기관·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이 가능해졌다.

  

한편, 기념사업회는 성남시 주도의 조례안과 달리 민간차원의 움직이라 할 수 있다. 기념사업회 역시 당면의 문제로 다가온 광주대단지사건 50주년을 맞이하여, “광주대단지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하는 염원을 안고민간차원에서 할 수 있는 기념사업을 비롯해 문화·학술사업, 자료 발굴 등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얼핏 보면 조례안과 기념사업회의 내용은 비슷하거나 심지어는 중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두 흐름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50주년을 1년 남짓 남겨 논 현 시점(현재 성남)에서 기념사업회가 출범한 것은 성남시 탄생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광주대단사건 50주년 기념을 관(성남시)에만 맡겨 놓아서야 되겠느냐는 상식적인 수준의 문제의식을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기념사업회는 광주대단지 사건의 의미화를 다양한 영역에서 수행해야 한다는 당위뿐만 아니라, 조례안에 근거한 50주년 기념사업만으로는 “8.10광주대단지사건은 폭동또는 난동이 아니라 생존권에 대한 외침이었고, 명백한 시민항쟁이었으며, 결코 사장 시킬 수 없는 시민의식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렇다면 기념사업회는 왜 이런 판단을 했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외형적으로는 조례안에 근거해 제시되고 있는 성남시의 50주년 기념사업 프로그램이 추상적이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 기념식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현재의 시점까지도 상세한 프로그램이 제시되지 않고 있기에 자칫하면 50주년 기념행사마저 기존의 행해졌던 행사위주나 보여주기식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또는 불안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외형적인 것보다 내적인 차이이다. 여기에는 광주대단지 사건의 의미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조례안의 경우, 광주대단지 사건의 의미화-광주대단지 사건의 기념사업으로 읽어도 좋음-사건에 대한 지역 주민의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부정적 인식 또한 점차 개선되었다고, 또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 기초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른바 분당 주민들로 대표되었던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이에 근거한 수정·중원구 거주 주민들에 대한 편견이 광주대단지 사건을 의미화 하는 것에 걸림돌로 작용했지만, 조례안 통과를 계기로 광주대단지 기억을 성남시의 공식기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믿음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기념사업회는 여전히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해 성남 시민들 중 일부가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광주대단지사건은 성남시민에게 오랫동안 망각을 강요당한 기억이었으며, 개발독재의 명암을 재조명하고 지역의 뿌리 찾기를 시도하는 과정에서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현재에 와서 광주대단지사건에 대한 성남시민들의 시각 또한 빈곤’, 그리고 해당 사건에 대해 폭동또는 난동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여전히 부정적 인식이 강하게 존재하고 있다.

  

창립선언문의 일부분이다.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지난한 시민 사회의 의미화 작업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인식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광주대단지 사건을 성남시 태동의 자극제로 전통성과 역사성을 지닌 것으로 적극적으로 의미화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다시 말해, 50주년 기념사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폭넓은 활동이 필요하지만, ‘지금-여기에서는 그 같은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례안으로 인해 민간 영역의 활동마저도 위축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광주대단지 사건 50주년을 1년 남겨 논 지금-현재성남에서 진행하고 있는 상기의 두 가지 기념사업 관련 움직임은 분명 긍정적인 모습이지만, 그 움직임이 지금- 여기’, 광주대단지 사건의 肖像(초상)인 것 또한 사실이다.

  

.광주대단지 사건과 기념 사업화(의미화)의 필요성

  

광주대단지 사건은 2021810일이면, 사건이 발생한지 50년이 된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현재까지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공식적(국가) 담론차원에서의 定義(정의)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 사건 발생 직후 국가권력에 의한 난동또는 폭동처럼 사건에 대한 다양한 명명이 존재했지만, 그 개념이 시대적 변화에 의해 새롭게 구성되어 국가차원에서 공식화 되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것은 한국 현대사에 존재했던 국가폭력에 의한 다양한 사건-제주 4.3사건, 여순사건, 사북사건, 5.18광주민주화운동 등-과 비교 했을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이처럼 공식화된 정의의 부재는 그 사건을 기념 사업화(의미화)하는 데 큰 장애로 작용한다. 더구나 광주대단지 사건은 아직 통일된 명칭 또한 부재한 상태이다. 이것은 그만큼 광주대단지 사건의 의미화 과정이 지난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사건이 여타의 국가폭력 사건과 달리 우발적 그리고 1회성 사건으로 종결되었기에 사건 관련 주체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환기 되는 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떤 것인가? 가장 일반적인 정의에서 논의를 시작하도록 하자.

 

광주대단지사건

  

광주대단지 사건은 서울시의 판자촌 주민들을 지금의 성남 수정구와 중원구로 강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정부와 서울특별시의 일방적 행정행위에 항거하여 1971810일부터 812일까지 경기도 광주군(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개발 지역 주민 수만 명이 공권력을 해체시킨 채 도시를 점령하고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다. 광주대단지란 서울시의 빈민가 정비 및 철거민 이주사업의 일환으로 계획된 위성도시로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수정구 일대이다. 

▲ '광주대단지사건 50주년 무엇을 할 것인가' 토론회 장면. ©성남일보

사건 발생 초기에는 3만 명의 시위대가 몰렸으나 그날 5만명이 성남출장소를 점거한 뒤 10만 명 이상으로 폭동 참여 시민이 폭증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내무부장관과 서울특별시장, 경기도지사를 파견하여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요구조건을 수용함으로써 3일만에 진정되었다.(강조는 필자)

  

원인

  

박정희 정권은 조금씩 팽창하던 인구와 공장을 분산 수용하기 위해 서울 중심부에서 동남방 반경 20km 지점에 위치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중·후에 성남시 수정구·중원구에 편입된 지역 일대 350만여 평에 6개년에 걸쳐 신흥 위성도시를 건설할 계획을 추진하고 이 지역에 경기도 광주군 성남출장소를 설치했다가, ·군과 같은 격인 경기도 성남출장소를 설치했다. 1960년대 후반에 서울특별시는 도시 재개발 계획에 의하여 생겨난 철거민들의 이주를 위해 경기도 광주군에 대규모 이주단지를 조성하였다.

  

1968년부터 35만 평 규모의 대단지를 조성하여 1969년부터 대다수가 청계천, 영등포와 용산 등지의 무허가 판자촌 강제 퇴거 주민 출신인 21,372가구, 101,325명을 이주시켰고, 19718월까지 25,267세대 124,356명에게 토지 분양과 일터를 약속하고 이주시켰다.

  

당시 농촌에서 서울로 이주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일했지만, 대다수는 건설 일용노동직, 비정규직, 하층 판매직, 단순 임시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철거민들의 주거지 조성 과정에서 땅투기, 분양권 분배와 입주 과정에서 토지 투기가 만연하거나, 생계수단 미비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서울시가 부족한 단지조성 재원을 개발 차익을 통해 확보하고자 했던 것에서 비롯했고, 결과적으로 부동산업자와 투기꾼들이 몰리게 되었다.

 

경과

 

그 뒤 서울특별시 철거 이주민에게 우선 분양권이 주어진다는 계획과는 반대로 철거이주민의 분양권이 불법전매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중간에서 투기꾼과 업체들이 몰려 철거 이주민 우선 분양권은 외지인에게 넘어갔고, 당시 불법전매된 분양권으로 이주한 가구가 단지 내 21,372가구의 약 30에 달하는 6,343가구였다.

 

이주지역 내에는 대부분이 도시빈민이던 주민의 생계수단이 전혀 없었다. 당초 일터 제공을 약속하겠다는 정부와 서울특별시의 약속과는 다르게 주변에는 공장 지역도 없었고 상가 단지도 조성되지 않았으며, 버스와 교통편 역시 확충되지 않고 기존의 농촌 마을버스만이 수 대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교통이 불편해 생계수단이 있는 서울시내를 왕래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 대부분이 손수레와 행상으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는 처지여서 차량으로 이동할 정도로 먼 거리에 거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서울로 나가는 차편도 없는 황량한 곳에서 먹고 살아갈 터전도 제공되지 않아 이들의 생활 형편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산천초목만 무성한 야산과 들판에 무작위로 내쫓겨 내버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전에 이러한 사정을 고려한 철거민은 이주분양권을 불법전매하고 서울시내의 다른 지역에 다시 무허가로 정착했다

  

광주 대단지는 아직 기반 시설조차 미비해서 식수나 화장실 조차 건립되지 않아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행정당국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감독과 감시에 태만하였고, 주민의 의견 수렴 방안이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광주 대단지 건설을 무리하게 강행했다.

  

행정당국은 전매입주자들에게 이주민 분양가의 40~80배에 해당하는 평당 8,000~16,000원의 지가를 일시에 불입할 것과 이주 초기 단지 내 주민들에게 과중하게 부과된 각종 세금납부를 독촉했고, 주민들의 분노는 폭발하였다. 일터를 요구하는 철거민 및 입주민들의 강한 불만과 교통편을 우선 제공해달라는 요구는 묵살되었고, 수도, 전기, 전화, 도로 등의 사회 기반 시설의 계획량의 20% 수준도 미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점거 농성

  

1971 77일에 이주민들에게 처음 약속한 평당 2,000원으로 불하했던 땅 값을 평당 8,000원에서 최대 16,000원까지 대폭 올린 뒤 토지 대금을 일시불로 납입하라고 통지했고, 이는 입주민들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정부와 서울특별시 당국은 비싼 분양가, 철거민 우선권이 무시되고 외지인들의 분양 증가, 땅 투기, 주변 지역 일자리 부족 등의 문제 해결과 정책의 시정, 생계수단의 마련 등 주민의 절박한 요구를 번번이 묵살했다. 810일에 5만 명의 이주민이 경기도 성남출장소 앞에 집결했다. 이들은 박정희 정부를 향해 무상분양 및 분양가 인하, 세금감면, 공장과 상가 등의 건설, 작업장 알선, 주민 구호사업 추진 등을 요구하면서 성남출장소에 불을 질렀고, 출장소 소속 기물과 차량을 파괴했다.

  

같은 날에 최고책임자인 서울시장이 주민과의 대화 약속마저 일방적으로 어기자 이에 격분한 주민들은 도시를 점령 지역 내 토지 불하 가격 인하, 취득세 감면, 세금 부과 연기, 긴급 구호 대책 마련, 취역장 알선 등을 요구하며 도시를 점령하였다

  

시위대가 수만 명으로 증가하자 내무부와 서울시는 700~800여 명의 경찰 기동타격대를 광주대단지로 투입했으나, 이들의 소요사태를 진압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참다 못한 시민 일부는 버스를 대절해 서울로 올라와 집단으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사건을 보고받은 중앙 정부는 행정안전부 차관과 경기도지사를 현장으로 파견해 이주민들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은 물론, 주민대표에게 정식 사과하고 이주민들의 화를 달랬으며, 812일에 서울시장이 방송 담화를 통해 이주단지의 성남시 승격과 함께 주민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시민들이 자진 해산한 끝에 사태는 3일 만에 최종 진정되었다.

  

평가

 

1960년대의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그에 따른 농업의 해체와 실업문제 등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허점인 도시빈민문제를 드러낸 사건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정부와 서울특별시의 일방적인 행정행위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인용문은 위키백과의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설명이다. 필자가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해 보다 정선된 네이버지식백과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가 아닌 위키백과를 인용한 것은 위키백과가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광주대단지 사건을 이해하고 있는 일반 대중의 이해 또는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위키백과는 앞의 다른 두 백과사전이 관련 분야 전문가의 책임 집필에 의해 작성되는 것과 달리 사용자들의 자유로운 견해가 실시간으로 반영되어 만들어지는 사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백과사전은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인식을 이항대립적 틀 속으로 위치시킨다는 점이다. 백과사전식 저작들은 목록 만들고, 질서 지우고, 구분하도록 거의 躁病(조병)에 걸린 듯 닦달하여, 이를 토대로 구축되는 대조-비교 체계를 통해 대중들에게 옳고 그름이라는 이항대립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든다. 그럼으로 광주대단지 사건은 그것을 의미화하려는 성남시와 학계, 그리고 성남 관내 시민단체의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인식에서는 여전히 공권력을 해체시킨 채 도시를 점령한 폭동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광주대단지 사건의 기념 사업화(의미화)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正名(정명)과 그에 부합한 공식적인 해석이어야 한다. 또한 사회적 인식을 인정하는 속에서 그러한 인식을 개선 또는 타파하기 위한 구체적이면서도 실천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기념사업이 추구해야 목표가 되어야 한다.

  

.광주대단지 사건과 기억의 정치

  

광주대단지 사건을 기억하는 행위는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기억 주체의 현재적 욕망을 반영하는 것이다. 로웬델(D. Lowenthal)과거는 우리가 본대로 회상되지 않고, 우리가 창조한 모습으로 재현되는것이라 언명했다. 따라서 우리가 완벽하게 복원된 과거라고 믿는 기억들도 특정한 목적을 갖는 현재의 시선으로 과거를 재단한 것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과거라는 것은 현재적 용도에 따라 언제든지 구성 또는 재구성 될 수 있는 것이다.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위와 같다면, 우리가 특정 사건의 기억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개인이나 집단이 지니고 있는 과거상이 아니라, “현재적 관심(신념, 이해관계, 열망)에 의해 조형된 특정 사건의 모습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적 관심에 의해 조형된 광주대단지 사건은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폭동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조례안과 기념사업회의 존재가 상징하듯이 지금-여기에는 광주대단지 사건과 성남을 재구성하려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욕망들이 협상하거나 연합 또는 공모하여 광주대단지 사건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필자는 광주대단지의 재현화 과정이 현재까지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것은 비단 조례안이나 기념사업회의 존재 때문만이 아니라, 광주대단지 사건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특징 때문이다.

  

광주대단지 사건은 여타의 국가폭력 사건과 비교했을 때, 기억화(기념사업)하는데 상대적인 수월성을 지니고 있다. 통상,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폭력과 관련된 사건을 기억하는 것(기념사업화)은 매우 지난한 작업이다. 왜냐하면 사건을 기억한다는 것은 범박하게 말하면,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의 專有(전유)’를 둘러싼 사회세력간의 갈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여순사건이나 또 4.3사건, 그리고 최근에 벌어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은 사건의 기억화가 얼마나 지난한 작업인지를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광주대단지 사건은 기억의 전유를 둘러싸고 가해자/피해자간의 극단적인 갈등이 위의 사건들처럼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기억의 전유과정에서 갈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난동과 항쟁이란 인식에서 보듯이 광주대단지 사건의 기억화 과정에서는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따라 일정한 갈등이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관점의 차이도 인천 개항을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처럼 심한 경우에는 극단적인 대결로 나아기도 한다. 하지만, 관점의 차이는 위에서 언급한 국가폭력과 관련된 사건의 기억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 목숨을 내 놓고서라도 상대방이 사건에 대한 기억을 전유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상대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광주대단지 사건의 기억화는 수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광주대단지 사건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필자는 5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는 광주대단지 사건의 본질에 대한 물음 등과 같은 추상적인 질문보다는 재현체계들에 대한 물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사건 발발 50년이 지났고, 학계에서 다양한 연구 결과가 산출된 현 시점에서 여전히 광주대단지 사건의 본질이나 진상 규명등을 묻는 것은 동어반복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재현들이 언제, 어떻게, 무엇 때문에 나타나고, 변화했는지를 묻는 게 필요하다. 왜냐하면, 현 시기 광주대단지 사건의 기억화와 관련된 갈등은 진실이 은폐되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한국문화 담론에 의해 호명되고 전시되었던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에서 기인한 바가 크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광주대단지 사건을 성남의 역사로 구성해야 한다. 다시 말해 광주대단지 사건이 지금-여기의 문제와 상관없는 해프닝이 아니라, 현재를 구성하는 하나의 원천의 서사(narrative)로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광주대단지 사건이 성남에서 장소성을 획득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공간은 가치가 부여됨에 따라 특정한 의미를 간직한 장소가 된다. , 장소는 조직된 의미세계로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작게는 인간관계의 친밀감에서, 나아가서는 사회적 관계에 의해 파생되고 축적된 경험적 가치이다 공간을 장소로 만들고 특정 장소를 다른 장소와 구별되게끔 하는 총체적인 특성을 장소성’(placeness, sense of place)이라 부른다.

 

따라서 광주대단지 사건의 기억화(기념 사업화)는 역사적 사건이었던 광주대단지 사건이 지금-여기에서 집단기억으로 재구성되어 성남이라는 구체적인 공간과 연결되면서 장소성을 형성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으로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기억화는 광주대단지 사건이 성남이란 공간에 어떻게 장소성을 부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어떻게 하면 장소애로 발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필자는 역사적 사건의 기억화(기념사업화)에는 사건을 환기하고 소환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소성의 체험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사건 발생 50주년을 맞이하는 현 시점에서 구체적인 장소성이 존재하고 있는지, 존재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콘텐츠화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것 인지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50주년이 단순히 기억의 문제로 인식될 때는 일정한 한계를 갖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광주대단지 사건을 현재화 할 수 있는 장소인 사적지는 오랜 세월의 경과로 그 원형이 훼손되거나 변형되어 사건과 관련된 가시성은 물론 진정한 장소감(sense of place)도 느낄 수 없는 곳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럼으로 광주대단지 사건과 관련한 장소들이 원형이 보존되어서 시민들에게 사건과 관련한 가시성을 보여주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 추측된다.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필자는 여타의 국가폭력 관련 사건들이 그랬던 것처럼 기념관 건립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기념관을 만든다면, 다른 지자체의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주민들의 접근성을 고려한 곳에 설치해야 한다. 제주 4.3평화공원은 접근성이 낮아 탐방객이 학생 등 극히 일부에 국한되어 있고, 심지어 지역민들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광주의 5.18관련 장소성들은 국립묘지와 기념공원을 분리하여 묘지가 비록 광주시 외곽이 자리 잡고 있지만, 기념공원이 접근성이 높은 도시지역에 자립잡음으로써 광주를 대표하는 브랜드 역할을 하고 있다.

  

.8·10 광주대단지사건 50주년,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1년 앞으로 다가온 광주대단지사건 50주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하자.

  

필자가 보기에 지금-여기성남은 광주대단지 사건과 분당(판교 테크노 단지)이라는 두 상징체계가 갈등·경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두 상징체계는 광주대단지 사건의 기억화(기념사업)에 관해서는 일정한 상호협조 내지 공모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50주년 기념사업을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따라, 향후 성남에서는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인식에 일정한 변화가 예상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변화를 추동시킬 것인가? 필자는 광주대단지 사건의 기억화 과정에 성남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해집단을 적극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성남과 이해관계를 갖는 다양한 집단들이 자신의 입장에 따라 자유롭게 광주대단지 사건을 상상하고 의미화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참여도 필요하지만, 아래로부터의 참여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조례안에 근거해 광주대단지 사건을 기억화(기념사업화)하는 것과 함께 성남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참여와 교섭을 통해 자기 주도적이고 자기 준거적(self-referential)인 광주대단지 사건의 의미화를 추구하는 기념사업회의 참여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조례안과 기념사업회가 상호협조 내지 공모-보다 적극적인 소통의 의미로 사용함-를 통해 광주대단지 사건과 관련한 가장 우세하고 영향력 있는 재현들을 찾아내고 이를 성남을 대표하는 구체적인 상징적 표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기념사업회는 조례안에서 미처 담아내지 못한 아래로부터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들을 준비해야 하는가?

  

두 가지 측면에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조례안으로 상징되는 공적 영역(성남시)에서 계획하고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을 신속하게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일이다. 가령, 기념관이나 기념 조형물 건립 등은 성남 시민들에게 장소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다음으로 왜 광주대단지 사건을 기억화(기념사업화) 하려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 또한 공적 영역(민관에서도 진행해야 함)에서 지속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범박하게 말하면 광주대단지 사건의 기념화는 성남의 정체성과 관련한 일종의 기억투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 같은 기억투쟁을 통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명시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필자는 현재적 욕망을 반영해 광주대단지 사건의 의미화 과정에 주거문제 해결을 통한 인간다운 삶의 보장들을 반영한 새로운 비전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공유도시 성남또는 주거로부터 해방된 휴먼 도시등이 그것이다.

  

다음으로는 기념사업회의 역할이다.

 

필자가 보기에 기념사업회가 조례안과 경쟁하기보다는 상호협력과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50주년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조례안에 의해 기념사업회의 목소리가 배제될 가능성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극단적인 배제가 아니라면, 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시민참여를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광범위한 참여가 광주대단지 사건 기억화(의미화)의 열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광주대단지 사건 50주년 기념사업을 위한 TF팀 구성(내년 사업의 결정, 프로그램 선정 및 결정, 타임라인 확정 등 및 공유)

 

2. 다양한 형태의 전시 프로그램 기획- 성남문화재단 공모 사업 적극 홍보

  

3. 준비성 있는 학술대회 개최  

-학술 용역 보고 대회(한국학중앙연구원) 

-기획된 학술대회 진행(TF팀에 의한 주제 선정 발표 형식(발표자에게 충분한 시간 부여) 

:동어 반복적인 학술대회가 아니라 창조적이 생산적인 논의가 될 수 있도록 시간과 금전적인 부분을 투여해야 함

  

4.시민참여 프로그램 기획 및 개발

  

-광주대단지 사건 현장 순례(기념 주간 동안)-다크투어리즘 관광 개발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청소년 의식실태조사 발표회 및 토론회(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

 

:확산과 계승이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함(지자체장 상 또는 지역 신문사 상으로 포상)

 

-광주대단지 사건 관련 다양한 서사 창작 지원(연극, 뮤지컬, 소설, , 영화 등)

 

: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창출 작업

 

-시민참여 UCC경연대회 (지자체장 상 또는 유관 기관장 상으로 포상- 상금)

 

포상을 확대하여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음(상을 많이 주자)

  

참고문헌은 각주로 대신함.

  

- 이 글은 지난달 28일 오후 성남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8.10광주대단지사건기념사업회(회장 김준기) 주관으로 온택트 생방송으로 진행된 '광주대단지사건 50주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발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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