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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김기권 / 전 남양주오남중학교장 | 기사입력 2021/03/11 [08:15]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김기권 / 전 남양주오남중학교장 | 입력 : 2021/03/11 [08:15]

[김기권 칼럼] 가족(家族)에 한자를 풀이하면 돼지들이 우글우글, 바글바글 한 지붕 밑에 네 모퉁이 담을 치고 살면서 외부로부터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내며 산다는 뜻이다. 

 

가족 성원은 상호 간에 상부상조할 의무가 반드시 필요하고 서로를 밖에서 오는 위협으로 부터 안전을 지켜주며 의식주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는 정말 백척간두 위험수위에 와 있다. 취업에 어려움으로 당장 먹은 문제가 해결 안되는 절박한 처지를 정치인들은 알고 있는지?

공자는 주류 천하 할 때 7일간 양식이 없어 많은 제자들과 함께 굶어 지냈으니 그의 심중은 상상하기 어렵다. 당장 절박한 처지에서 극단적 선택을 저울질하는 분들 7일간 굶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태극기를 생각하자. 칠흙 같은 밤이 지나면 내일에는 반드시 환한 밝은 태양이 눈 부시도록 솟구쳐 오른다.

 

이 세상은 돌고 돈다. 이 세상 모두가 돌고 돈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제발 낙담하지 말며 내일에 태양을 기대하자.  

  

때는 1870년대 동유럽에서 유대인 박해를 피해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서 사는 유대인 가족이 있었다. 양친은 살림이 어려워 손수레를 끌고 일용잡화를 팔며 슬하에는 11명의 자녀가 많아 참 힘들게 살고 있었다. 

   

형제 중에 10번째 아들이 매우 총명하고 활동적이지만 학교생활에 적응치 못하고 성적은 늘 하위에 머물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고교 졸업하는 나이 18세 기념으로 아시아로 가는 여객선 편도 3등표 한 장과 5파운드(10만원 정도) 지폐를‘ 주며 말했다. 

 

아들아 이 표는 목적지에 하선하면 효력이 상실되는 표로 배에서 내리면 다시는 탈 수 없는 편도 표다. 그러니 하선하는 것은 너의 자유고 어쨌든 하선하는 곳에서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라. 그리고 금요일 안식일 이전에 어머니께 반드시 편지를 써라. 만일 돈을 벌면 형제들을 생각해서 도움을 다오.

 

이후 그는 혼자 몸으로 배를 타고 인도, 태국, 싱가포르를 지나 마지막 종착지 일본 요코하마에 하선 (1871년) 당시 일본에는 서양사람 수는 수 백명에 불과하고 서로 연결도 어려운 처지였다. 

 

그는 우선 바닷가 판잣집을 얻어 기거하면서 바닷가 산책 중 사람들이 간석지 뻘에서 조개를 캐서 파는 것을 보고 자기도 조개를 캐서 우선 의식주를 해결하였다. 

 

그 조개를 보니 색깔이 매우 아름다워 이것을 가공하면 상품이 되겠다 싶어 궁리한 결과 와이사스 단추와 담배 케이스 나전칠기 세공품을 만들어 샘플을 런던에 보냈는데 이게 당시 영국에서 대 히트를 쳤고 아버지는 그 상품 중심으로 도매 사업해 큰돈을 벌게 된다. 

 

이 청년이 세계적인 석유회사 쉘의 창업자 마커스 사무엘이다. 그는 일본에서 자본을 모아 1776년 요코하마에서 사무엘 상회를 설립하고 당시 석유가 사업성이 있다고 보고 인도네시아 석유개발에 투자하고 석유운반선 유조선도 개발하여 중국, 러시아까지 판매망을 넓이고 그의 상표가 지금도 유명한 쉘 (shell) 상표다. 그는 엄청난 돈을 벌고 그의 형제들도 자회사를 운영 재벌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노란색 조개에 붉은 줄이 있는 가리비 조개 상표는 지금도 세계 각처에 지점이 수없이 많고 우리나라에도 엔진 윤활유 대부분이 쉘 제품을 많이 쓴다. 

 

나무는 큰나무 밑에 있으면 반드시 죽지만 사람은 큰 사람 밑에서 크게 자란다. 제일 영향을 주는 것이 가족 단위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면 가족 일원 한 분 한 분이 정말 소중하다. 

 

세종대왕과 형제간에 사랑

  

우르르 쿵쾅 우르르 쿵쾅 천둥 울고 벼락 치는 경연장 (왕손들이 모여 공부하는 자리) 풍경

모두 놀라 허겁지겁 책상 밑으로 숨는데 유독 혼자 태연하고 의젓하게 책을 읽고 있는 사람 충령대군. 

 

세종은 태종의 셋째아들로 왕의 세습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원체 형제 중에 출중해서 위에 두 형인 양령대군 세자와 효령대군이 왕위 자리를 스스로 셋째인 충령 세종에게 양보한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가문의 본보기다. 

▲ 김기권 전 남양주 오남중학교 교장     ©성남일보

부왕 태종의 심중에 충령이 그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할 것을 예측한 세자 양령은 둘째 효령을 설득하고 포기하도록 하여 충령이 왕위에 올라 이 나라 문화 발전에 전대미문의 업적을 남기게 하였으니. 그 과정이 한 폭의 드라마다.

 

양령은 일부러 스스로 미친 척 세자 품위를 손상시켜 세자자리에서 쫓겨났으며 효령은 자의적으로 승려가 되어 입산수도의 길을 갔다. 

  

절망에서 희망을 본다

 

나의 고교 친구 중에 김평기라는 벗이 있었다. 그에 집은 학교에서 20여리 떨어진 깊은 산골짝, 작은 동네이고 그의 집은 부엌 쪽 벽이 무너져 횅했다. 집이 엄청 가난해서 도시락은 꿈도 못 꾸고 점심은 우물가에서 물로 양을 채우고 집에 가면 늙으시고 허리90도 구부러진 엄마가 남의 밭에서 주어온 가느다란 고구마로 저녁을 해결했다. 

 

하루, 이틀 굶기는 보통이고, 그는 나보다 3살 많은 쥐띠다. 생각하는 것이 어른스럽고 공부도 월등히 잘해서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서 소사로 시작종 끝 종 쳐주며 선생님들의 잔심부름으로 그렇게 저렇게 2년을 다니다 도저히 학업을 이을 수 없어 그만 자퇴하고 집에서 쉬는 동안 이리 남성고등학교 교장 선생님께 거의 매일 편지를 올렸다. 친구들의 권유로.....너는 정말 천재다. 희망을 잃지 말라. 편지 한 번 써보라.

 

내용은 천재가 돈이 없어 시골에서 울고 있으니 살려 달라는 내용이다. 

 

하도 편지를 많이 해서 교장선생님은 도대체 어떤 놈인가 하고 하루는 불러 상담했다. 네가 천재냐? 예 천잽니다. 수학, 영어 선생님을 불러 테스트 해보니 정말 실력이 대단했다.

 

1년 후에 서울대 갈 수 있느냐? 자신합니다. 좋다, 3학년에서 공부하라. 그리하여 다음 해 1959년 서울대 사범대 영문과 합격했고 명동 부잣집 가정교사로 4년 졸업 공군장교로 근무 전역 양정고교 영어교사로 당시 과외수업으로 많은 재산 축적 전두환정권이 과외수업 못하게 하니까 미국으로 이주했고 현재 LA 근처에서 잘살며 몇 년 전 양정고 제자들이 스승의 날에 초청해 귀국해서 압구정 현대백화점에서 나를 불러 저녁 대접 잘 받았다. 모두가 친구들 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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