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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장수기업 코맥스 변봉덕 회장의 삶에서 배운다

어려운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 모두 힘내세요!

김기권 / 전 남양주오남중학교장 | 기사입력 2021/05/13 [12:28]

60년 장수기업 코맥스 변봉덕 회장의 삶에서 배운다

어려운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 모두 힘내세요!

김기권 / 전 남양주오남중학교장 | 입력 : 2021/05/13 [12:28]

[김기권 칼럼] 딩동댕, 딩동댕, 누구세요? 집집마다 출입문 쪽에 붙어있는 초인종(招人鐘) 인터폰 소리다.          

대문에서 멀리 떨어진 안채까지 연결하는 초인종 (인터폰)이 우리 문화에 접목되어 생활에 편리함을 준 것은 아마도 60년 장수기업 코맥스(KOMMAX)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1967년 4월 1일 청계천 골목 허름한 한옥 한 칸짜리 빌려 전화교환기 제작 판매까지 하는 중앙전업사 설립했다. 

이어 인터폰 이외 오늘날에는 수요자 중심 완전 보안 해결제품 다양성을 주제로 제품생산업체로 성남시 중원구 둔촌대로 변 우람한 사옥과 중국 현지 공장까지 운영하는 세계적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코멕스 변봉덕 회장의 파란만장한 삶은 그의 저서 ‘꿈을 경영하라 나를 넘어라’를 보면 얼마나 험한 고개를 넘고 넘어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알 수 있다. 

 

나와 변 회장과의 관계는 4.19혁명공로자회 같은 회원이고 그분이 성남상공회의소 회장 재직 중 삼락회(초중고퇴직교장모임)원 30여명을 스승의 날에 초청해 분에 넘치는 대접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20여 년 가까이 친교를 맺고 있다.  

  

모처럼 코맥스 본사를 방문해 그의 저서를 받고 하도 재미있어 끝까지 읽어 보고 이건 정말 대단한 인생살이에 교본(등불=길잡이)이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희망이 새롭게 움터서 새 삶을 영위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변 회장은 1946년 11살 되던 해 6.25사변으로 자유를 찾아 월남한 그야말로 38 따라지다. 

 

‘따라지’는 그의 자서전에 나온 용어이고 1960년대 한참 유행한 화투놀이 도리짓고땡에서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모친을 모시고 그를 포함해 어린 오 남매들이 월남해 부산 피난 시절 굶기에 지쳐 물로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끼니를 구하기 위해 해결책으로 구두닦이를 하면서 침을 손님 구두에 바르자 그 손님이 귀싸대기를 때려 길바닥에 나가떨어진 추억도 있다. 

 

이는 험난한 기업운영에 좋은 영양제가 되어 주고 지금도 유용하다. 

▲ 김기권 전 남양주 오남중학교 교장     ©성남일보

그는 미군 부대서 흘러나온 만화책을 그림만 보고 만화에서 전개되는 대화를 우리말로 창작 각색해 만화방을 운영해 생계에 도움을 준 것은 그의 창의성과 독창성이 오늘의 중견기업을 일구는 토양이 되었다.

 

- 1차 고비

 

그가 애써 개발한 제품이 초기에는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5-6개월 동안 진 빚이 5% 넘는 고이자와 함께 쌓이면서 빚 독촉에 시달렸다. 

 

1969년 말 더 이상 삶에 의지를 상실하고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엄동설한 어느 날 저녁 극단적 마음을 먹고 수면제 한 웅큼과 소주 한 병 사 들고 남산에 올라갔다. 

 

그는 네온사인 찬란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그래 소주 한 병과 이 수면제를 먹으면 내일은 동사체로 발견되겠지”하며 막 입에 털어 넣는 순간 엄청 쎈 세찬 바람이 흙먼지와 함께 순간적으로 획 불어와 두 눈으로 들어갔다. 

 

쓰린 눈을 비비는 찰나 수면제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참고 참았던 눈물이 솟구쳐 엉엉 대성통곡 한참 울고 나니 속이 좀 후련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왜 이런 극단적 생각을 했지 하는 자괴감이 생기면서 다시 한 번 마음 고쳐먹고 살자 하면서 산을 뛰어 내려와 재기의 몸부림이 오늘을 있게 했다.    

 

- 2차고비

   

코맥스가 어느 정도 정상 궤도에 올라 전자정보통신기기 불모지 국내에서 토종기술 개발에 힘써 2017년 2월 자랑스런 금탑산업 훈장을 수상한 이면에는 정말 피눈물 나는 일화가 있다.

 

남산에서 뛰어 내려와 도어폰(방문자와 주인 간 대화 가능 폰)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하늘의 도움이 있어 주문량이 한참 늘어나는 시기에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불량품 반품이 이어지고 고객의 항의가 계속되어 원인분석 결과 새로 개발된 제품에 스위치가 접촉 불량으로 나타나 2개월 생산제품 전량회수 폐기 처분, 회사 운영에 엄청난 손실을 감내하고 고객의 신뢰를 얻는데 상당한 시일이 흘렀으니 마음고생 하늘은 알까?

 

- 3차고비

   

코맥스 제품이 잘 나가니 국내외적으로 상표도용으로 골머리를 수도 없이 당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코맥스에서 퇴사한 사람이 먼저 코맥스 상표를 등록해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그 상표권을 회수하는 재판이 무려 2년이 계속됐다. 

 

재판이 진행되자 도용자가 지쳐서 손들고  과거의 잘못을 구하며 용서를 빌자 주변 사람들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인도네시아 코맥스 에이전트(대행)로 임명했으니 변 회장 인품에 놀라움이 크다.  

 

- 4차 고비

  

1-2차 석유파동과 1997년 외환위기는 사업자들에게는 더 이상 생각하기 싫은 악몽 자체다. 

 

허약한 체질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고, 코맥스 역시 그 큰 파도를 쉽게 넘길 수는 없었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절약, 사원들은 스스로 상여금 반납 해외 에이전트들도 모금 전달 어떤 사람은 10만불 송금 평소에 쌓아 올린 신의가 큰 빛을 발휘하여 위기를 극적으로 타계했다. 

 

- 5차 고비

   

2008년 세상을 뒤흔든 키코 사태 발생 회사가 환율변동으로 600억원의 손해를 입게 되는 상황은 40년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리는 절체절명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비상관리대책회의를 꾸려 피나는 절약과 과감하게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 포기, 그러면서도 월급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불, 노사 간에 40년 신의가 그 큰 수렁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코맥스 본사 1층 로비는 회사 발전상을 상징하는 각종 전시물과 세계 도처 120개 이상의 무역지점이 실치 된 국가의 국기들, 무수한 표창장이 전시되어 있다. 

 

이는 변 회장이 외국 출장 시 홍보용 제품을 담아 지구를 몇 바퀴 함께 돈 묵직하고 연륜의 때가 묻은 큰 가방이 코맥스 역사를 대변하고 있고, 그의 경영 실제가 담긴 책의 진수를 빠뜨리고 고난사만 소개한 것이 못내 아쉽다. 

 

나의 의도는 실의에 삶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수많은 이들께 용기를 주는 연민의 정으로 받아 들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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