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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였는데

우아한 사람, 푸른 생명의 나무가 되고
설탕과 소금처럼 필요한 조미의 사람이 되어야 겠다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2/01/07 [21:42]

호랑이였는데

우아한 사람, 푸른 생명의 나무가 되고
설탕과 소금처럼 필요한 조미의 사람이 되어야 겠다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2/01/07 [21:42]

[최창일 칼럼] 파우스트는 “사람들의 이론은 모두 잿빛이며 영원한 생명의 나무는 푸르다”고 했다. 지금의 시간이 그렇다. 둘러보면 나무는 변함없이 푸르고 푸르기만 하다. 인간에게 코로나 19의 시간은 잿빛의 진행형이다. 

 

새해, 새해의 소망은 나무처럼 푸르게 살아가는 방법의 지혜를 알고 싶다. 절친, 학인(學人)이 북한산을 바라보며 우화(寓話) 한 토막을 들려준다. 

▲ 사진 / 최창일

시골의 농부가 숲속 산책길에 호랑이 새끼를 발견했다. 호랑이 새끼는 어미를 잃고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다. 농부는 새끼를 가슴에 안고 집으로 왔다. 때마침 기르던 개가 새끼를 낳아 젖을 물릴 수 있었다. 새끼 호랑이는 개들과 잘 자라주었다. 호랑이 새끼는 호랑이라는 것을 못 느끼고 개처럼 개소리를 내며 자라주었다.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도 개와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꼬리를 흔드는 모습도 같았다. 시간은 흘러 호랑이 새끼는 어미 개보다 더 크게 성장을 했다.

 

새벽이었다. 고요한 새벽이었다. 멀리, 숲속에서 호랑이의 포효 소리가 들렸다. 기르던 호랑이는 묘한 느낌이 전신에 몰아쳤다. 그리고 숲속의 호랑이 소리를 따라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호랑이는 본능적으로 소리를 냈다. 그리고 숲으로 달려갔다. 지금까지 개로 살아왔던 시간이 마을의 입구에 버려졌다. 

▲ 최창일 / 시인     ©성남일보

학인은 말한다. 우리가 호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지 모른다. 코로나로 인하여 우리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확실한 계기가 됐다. 

 

미국, 영국, 프랑스가 하루에 100만, 또는 10만 명이라는 확진자가 될 때 한국은 그에 절반의 절반도 미치지 않았다. 정부가 권하는 백신과 마스크를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의 시민들처럼 저항하지도 않았다. 비교적 정부의 방침에 따랐다.

 

그러면서 학인은 우월성에 대하여 말한다.

 

우월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우월성은 물질로 드러난다. 우월한 주인은 명령을 내린다. 그는 부유하고 힘세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는다. 그런데 물질적으로 열등한 노예의 상황은 그의 영혼마저 천박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자신의 처지로 인해 노예근성을 가질 수 있다. 자기 앞에 닥치는 일에 모든 것이 부정이다. 대화는 늘 방어적이다. 

 

우아(優雅)함도 같은 뜻이다. 우월함이나 우아함은 교과서에도 기록하지 않았다. 자신이 존귀하게 처신할 때 우월하거나 우아하게 된다. 귀족과 양반이라는 제도는 ‘부류’라는 존재들이 만든 인류 최대의 실패작이다. 

 

군사정권도 군인이라는 부류가 만들었다. 공안정국이나 검찰편향 부류의 실체도 그들의 소수가 다수에게 횡포로 다가가는 부류의 형태다. 양반과 귀족이 그렇다. 동양의 양반, 서양의 귀족이 부류라는 형태를 만드는 야만적 횡포였다.

 

우리가 가장 가까이하는 소금과 설탕은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주방에 놓여 있는 설탕과 소금은 맨눈으로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설탕과 소금은 있는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음식에 넣어 먹는다. 그러면 음식의 맛은 더 좋아진다. 소금과 설탕은 썩기 마련인 음식의 분해속도를 늦춰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인간은 설탕과 소금에 대하여 비유를 든다. 소금은 진실이다. 설탕은 달콤한 사랑에 비유한다. 진실과 사랑은 같은 의미로 사용이 된다. 사랑에 진실과 달콤함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가 아니다. 

 

영양학자들은 한결같이 사람들이 매일 평균적으로 섭취하는 설탕이나 소금의 양이 지나치게 많다고 말한다. 우리는 설탕과 소금이 절대적이지만 그것이 문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물과 불도 그렇다. 모두 우리의 생명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불은 인간에게 하나의 혁명이었다. 문명이었다. 인간은 양수에서 태어났다. 물은 인간의 근원이다. 불꽃은 영혼의 현존을 나타내기 때문에 우리를 매혹 시킨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인간에게 재앙이 되기도 한다.

 

무엇이든 과하면 잿빛이 되고 하늘을 보고 우뚝 서면 푸른 나무가 된다.

 

새해에는 나무처럼 푸르게 살아야겠다. 높은 곳을 보되 교만하지 않아야겠다. 설탕과 소금처럼 적절한 조미의 새해가 되어야겠다. 우월하되 인간의 존엄을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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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 시인 2022/01/08 [21:30] 수정 | 삭제
  • 세상에 흔하디 흔한 잡초도 전략을 가지고 생존한다고 한다. 여의치 않으면 싹을 틔우지 않고 해를 거르기도 한다고 한다. 꽃이 피는 시기를 걸러서 자주적으로 풀들은 살아간다고 한다. 잡초도 전략을 가지고 싹을 틔우는데 우리도 새해는 전략을 가지고 살아가야겠다. 종로 시인이 들려준 글은 벌써 봄이 호루라기를 불고 있다.
  • 종로시인 2022/01/08 [12:17] 수정 | 삭제
  • 새해는 언제나
    12월 마지막 날 밤 재야의 종소리로 서운해 하며 온다
    1월1일이 되면 전날의 아쉬움 언제 그랬냐싶게 새 날을 노래한다
    호랑이 해라네

    무엇이 그리 중한지 새해 전 전날 안 것 같아
    카톡에서 호랑이 그림이 뿌려질 때 알았다니까
    새해 희망 이런거 잘모르겠어
    요즘은 뭐가 진실이고 사실인지도 모르겠다니까

    그래 이 칼럼을 쓴 시인의 표현대로
    소금과 설탕의 변하지 않는 맛 소금은 언제나 짜고 설탕은 단 맛을 잃지않는....
    그런 입맛이라도 간수하자

    그러노라면 봄이 오고 꽃이 피겠지
    잎보다 후루루 먼저피는 개나리 설레는 진달래
    봉우리 때 이쁜 목련
    오늘따라 꽃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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