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동백꽃이 붉은 입술을 내밀자 동박새가 왔다. 여름내 얼씬도 하지 않던 동박새가 동백의 소식을 어떻게 들었는지 신기하다. 동박새는 동백의 붉은 입술을 요리조리 살핀다. 마치 연인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물끄러미 쳐다보다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다. 실바람이 불자 동박새는 자세를 고쳐 앉는다. 그리고는 동백에 머리를 박고 붉음의 입술에 정열의 키스를 퍼 붙는다. 동박새는 동백의 수술을 좋아한다.
‘여기에 좋은 꽃 달린 나무가 있어 / 눈 속에서도 능히 꽃을 피우도다/ 곰곰 생각하니 잣나무보다 나으니/ 동백이란 이름은 옳지 않도다’
고려의 천재 시인 이규보(1168~1241)의 시다. 눈 속에 피운 동백을 행한 선비의 시선이 편협이 아니라 올바른 표현으로 보인다. 동백(冬柏)은 춘백(春栢)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동백꽃은 사랑이라는 이미지도 있지만 혹독한 한고(寒苦)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선비의 절개를 상징한다.
동백이 가진 이미지는 시와 소설에 다양하게 등장한다.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춘희(椿姬)> 또는 <동백의 여인, La Dame aux camellas,1848>에서 여주인공 코리티잔이 들었던 꽃이 동백이다. 이 소설은 여러 나라로 건너가 영향을 끼쳤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의 모티브로 연결됐을 것으로 본다.
한국에서 춘희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번역하여 만든 제목이다. 일본의 번역이 원제목보다 느낌이 크기에 한국에서도 사용하게 된 것이다. 글이란 흥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춘희의 소설은 알렉산드로 소설가의 실지 이야기다. 소설가는 사생아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사랑에 굶주린 작가는 거리의 창부를 사랑한다. 소설은 희곡이 되어 1852년 오페라로 무대에 올려진다. 계급이 다른 여인이 집안의 반대로 헤어지게 된다는 전형적인 비극이지만, 당시에는 정취를 느끼게 하기에 충족했다.
동백은 예술의 소재지만 사람들이 애용, 쓰임새가 많다. 동백의 기름은 머릿결 손질과 천식에 효능이 있다. 잘 마르지 않고 굳지도 않는다. 기계가 녹스는 걸 방지한다. 나무의 결은 균질이 견고하여 방망이, 악기, 우산 자루, 다용도 다식판으로 사용된다.
해안에서는 강한 바람을 막는 방풍림으로 식재된다. 사찰 주위에 가면 동백을 흔하게 본다. 깊은 산사에 자리 잡은 사찰이 소방의 대비에는 동백이 방화림으로 적합하다는 과학적 근거다. 대표적으로 선운사에는 동백이 절 주변에 병풍처럼 서 있다.
‘선운사(禪雲寺) 고랑으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꽃(冬柏 花)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재기에 넘치는 미당의 ’선운사 동구(禪雲寺 洞口)‘ 시다. 동백은 연간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7.32톤(헥타르, 50년생 기준)이다. 이는 중형차 3대가 1년 동안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상쇄시킬 수 있는 양이다. 이래서 동박새는 미당이 사랑하고 프랑스의 알렉산드로 뒤마 피스가 사랑한 동백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동박새의 영어명은 White-eye, 일본에서는 ’메이기로‘다. ‘동박새는 눈가에 흰 테를 두르고 있다’를 의미한다. 동박새 소리는 듣기 어려울 정도로 작지만, 음이 높다. ‘히링 히링 히링‘하는 소리는 맑다. 제주도 해녀의 숨비소리와 같다. 동박새는 동백나무의 작은 가지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 동백의 잎과 꽃술 사이로 몸을 숨기는 것을 좋아한다.
동박새는 동백나무와 같이 잎이 반짝거리는 숲, 조엽수림(照葉樹林)에서 햇빛을 피하며 먹이를 빠르게 찾기 위해 적응하는 산물로 흰색 눈 테를 가졌을 수도 있다. 마치 야구 선수들이 햇빛을 피하고자 눈 주위에 검은 색칠을 하는 거와 같다.
동박새는 전 세계적으로 동아시아에 분포하는 아름다운 산새다. 민가에서 사육을 금하고 있으나 종종 사육한다. 동박새는 동백꽃의 벌레를 잡아먹고 꽃가루받이를 돕는다. 동박새와 동백은 인연이다. 붉은 세상을 꿈꾸는 동백에 동박새는 공존의 사랑을 꿈꾼다. 서로의 생명을 존중하고 꽃은 화밀을 내어주고 작은 부리는 동백의 번식과 생명을 지켜준다. 눈 덮흰 설한에 붉은 동백의 꽃잎을 지르밟는 조그맣고 날렵한 동박새는 청자의 자태다. 하얗게 소리 내는 동박새의 아침! <저작권자 ⓒ 성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