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권 칼럼] 향토의 의미는 인간이 태어나 자신이 자라온 생활 터전으로 촌락을 이루어 혈연이나 농수산 생업에 연관되고 자연 지리적 가까운 고향을 의미하고 넓은 의미로 확대하면 주소와 관련된 생활 터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향이 따로 있나 정들면 고향이지 백일홍도 심어놓고 옥수수도 심어놓고 부모님 공경하고 아들딸 사랑하면 타향도 고향일세라는 노래도 있다. 꽃이 피는 정든 땅 고향이 따로 있나 정들면 고향이지 낮이 오면 논밭 갈고 밤이 오면 길쌈하고 참되고 올바르고 집안이 화목하면 타향도 고향일세 새가 우는 정든 땅
백년설의 구성진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듣노라면 바쁜 일상생활 중에도 아련한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이처럼 고향을 기리는 노래는 수도 없이 많다.
나의 고향은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로 아마도 전기가 군내에서 제일 늦게 들어온 벽지 깡촌이었다. 금산시장까지 장장 20리 길을 걸어겨우 소금 몇 되 사 짊어지고 자갈밭 신작로 따라 초가집에 도착하면 하루가 다갔다.
이런저런 사유로 객지를 떠돌아 성남에 둥지를 틀고 지나온 세월이 30년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3번이나 변했으니 성남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그것도 아파트에서 생활하다 보니 출입문 닫고 나면 30년 앞집도 영원한 타향 사람이다.
아파트 생활이란 이웃 사이에 철제문이 항상 잠겨 있어 인정이 오고 갈 빈틈이 없다. 그러나 문 열고 나가면 시원한 탄천의 맑은 물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잘 가꾸어진 가로수 수변 공원의 온갖 생활 편의 시설은 성남의 자랑이다.
한때 성남에 고향을 심자 캠페인(campaign)이 있어 본적지를 성남으로 옮기는 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민등록제 다용도 사용으로 그 의미가 상실되었다.
성남의 역사는 1960년 말 군사정권 시절에 광주군을 조각조각 성남 출발이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성남시는 남한산성 험한 산골짝이 한 모서리에 서울 청계천 빈민가 이주민 중심으로 텐트촌 건립으로 시작되어 8도 도민들이 생활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애향심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탄생한 성남시는 비탈길이 많아 자전거 점포가 제일 먼저 망했다. 겨울철에는 연탄재가 비탈길 오르막에 환영 받는 곳이고 비만 오면 마누라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사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판교테크노밸리가 들어서 미국 실리콘밸리에 머금가는 도시로 성장했다. 이로 인해 광역철도 성남역 개통 등의 영향으로 전국 일일생활권에 도전하는 비약하는 도시 면모로 국내 어느 도시에 비교해도 시민들이 높은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큼 성장했다.
성남에는 유독 신도비와 유적지가 많다. 신도비(神道碑)는 역사에 남을 만한 큰 인물들의 묘비로 후세에 교훈으로 남길 좋은 글들이 많아 자녀들 학습장소로 활용할 가치가 높다. 어린 시절 좋은 추억의 가르침은 어른이 되어도 잘 변하지 않기에 현장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특히 율동공원 저수지 번지점프 옆 소재 청주한씨 문정공파 신도비는 조선조 한계희(韓繼禧)와 그의 두 아들 신도비로 경기도문화재자료 제84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의 이력과 업적이 당대 명필 서거정의 필적으로 소상히 기록되어 문화적 보존가치도 높다
- 성남시장님께 드리는 당부의 말씀
성남시는 유치원을 포함해 초중고에 시민이 내는 세금 중 막대한 자금이 급식비를 포함해 지원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에게 성남시 곳곳 역사 유적지 탐방이 확대 되어야 한다.
역사 탐방과 판교 테크노밸리와 각종 산업시설공단과 서울공항 등을 견학케 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역사의 중요성과 장래 진로 직업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 기념으로 학교가 마련해 준 버스로 측후소, 담배 제조창, 경찰서, 우체국 등의 공공시설을 참관한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 때문이다.
성남시가 청소년 대상의 체험 프로그램을 확대해 운영한다면 학생들은 프로그램을 마련해 준 성남시에 감사할 것이고 평생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저작권자 ⓒ 성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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