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소월은 내가 시의 감성을 일깨울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시의 심리학자였다. 그는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행운 가운데 하나다.“ ”한국은 소월을 낳았다는 것만으로 민족의 서정성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라는 말은 시를 공부하는 김정수 시도반의 말이다. 시도반은 술을 한잔 걸치면 한국 시사에 위대한 작가들을 하나하나 거론하곤 한다. 그러다가 김소월(1902~1934)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선 차가운 건배를 하자며 말을 이어가지 않는다. 그저 침묵으로 위대한 선배 시인에 대하여 울컥한다.
시도반이 김소월에 대해 하고자 하는 말은 그의 시적 공감도 크다. 그러나 더 큰 것은 소월이 32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여 시의 단절이 아프며 아쉽다는 것이다. 소월은 그리 많은 시를 남기지 않았다. 더욱이 소설은 단편으로 <함박눈>, 한편을 남겼다. 소월이 발표하지 못했던 작품은 전쟁의 폭격으로 큰 여행 가방 분량의 원고가 소실되었다.
소월은 죽기 전 면사무소와 주재소에 끊임없는 호출을 받았다. 요즘으로 치면 경찰서나 검찰에 수시로, 불려 다녔다. “많이 배운 분이 면사무소의 일에 협조를 하라”는 등 고문과 같은 분위기에 살아갔다. 시인은 심성이 예민한 부류들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윤동주 시인은 괴로워하였다. 소월도 그렇다. 하루는 숙모가 들려준 진두강 설화를 그대로 시로 만든다.
‘접동/접동/ 아무래비 접동// 진두강(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인/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라/ 오오 불설워/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접동새> 전문이다.
호롱불 아래 젊은 숙모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너무나도 가슴 아픈 사연에 저도 모르게 눈물 떨구던 어린 소년 시절이다. <접동새> 시에는 이야기의 힘이 담겼다. 아홉이나 되는 동생을 남겨두고 의붓어미의 시샘 때문에 죽어간 누나의 사연은 그 자체로 눈물겹다.
이렇게 감성의 시인이 일제 강점기에 느닷없는 주재소의 부름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돌아오는 날의 저녁은 술을 마신다. 하루 이틀의 술은 일상으로 술을 가까이한다. 아내는 술을 자제하도록 권유한다. 그러다가 아내마저 소월을 위로하느라 술을 같이 나눈다. 이것이 30대의 소월의 시간이다. 시를 만들던 소월은 붓을 놓고 접동새의 심정이 된다.
한국의 교과서에는 시인들이 쓴 시가 많다. 한국에는 유명 시인을 말하면 김소월, 윤동주, 신경림, 권일송, 나태주 등 많은 현대 시인을 든다. 김소월이나 윤동주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은 여러 가지의 내용이 얽히고설킨 시대적 사연이 있다. 그 시대적 사연이란 그들이 일제 강점기에 시인으로 서글픈 시적 서사를 가진 것도 이유다. 시적 감각이 빼어난 김기림이나 정지용 시인은 월북이니 귀향이니, 여려 사연도 그렇다. 여하간 한국인은 김소월에게는 남다르게 국민 시인으로 평가하는 것은 현실이다. 김소월이나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에 나쁜 놈들에게 시달리다 아주 짧은 생, 젊은 나이에 별이 되었다.
김소월을 논하기 전 한가지는 전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 소월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훨씬 전에 태어났다. 2009년에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과 평론가들이 모여 우리 현대 시 100년에 역사에서 가장 빼어난 시인을 선정했는데 100명 중 87명이나 김소월을 1위로 꼽았다. 2012년에는 문학 평론가들이 모여 한국현대문학사를 대표하는 시집을 선정했는데 75명 중 63명이나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꼽았다. (김소월,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방일환 저. 우리학교출판 1913년 자료) 소월은 일제 강점기, 쓰디쓴 소태를 핥다가 스러져 갔다. 정치인의 입에서 일본의 마음을 생각하는 말을 들으면서 소월의 그 날 모습이 보인다. 일제 강점기의 시간은 지식인에게는 모독의 시간. 요즘 돌아가는 시국을 보면 소월이 마신 독한주량이 생각된다.
고민도 모이면 에너지가 된다는 말이 있다. 고민을 에너지로 남기지 못한 소월이 아쉽다. 시인이라면 칼끝에 서 있다 주검이 된 소월을 죽도록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성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