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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성남의 자화상

30주년에 무엇을 할 것인가

하동근 | 기사입력 2003/02/18 [07:00]

서른 살 성남의 자화상

30주년에 무엇을 할 것인가

하동근 | 입력 : 2003/02/18 [07:00]

[특별기고] 이번 대선은 "내가 너희를 위해 무엇을 해 줄게"를 "너희들과 함께 할게"가 이겼다는 의미를 남겼다. 나는 그것을 근대성에서 탈 근대성으로의 전이라고 느낀다. 캠페인의 내용(사용가치: 무엇을 해준다)이 아니라 형식(교환가치: 함께 한다)이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그래서 이제는 형식이 모든 것을 규정한다-라고 억지부릴 생각은 없다. 다만 경향적으로 그렇게 가고 있고 그것은 의미 있는 변화(가치판단을 배제하면)라는 생각이다.








▲하동근     ©성남일보
이러한 흐름을 염두에 두면서 서른 살의 성남을 디벼 보자.


올해는 「성남시 대도약의 해」(이대엽 시장 신년사)이다. 이 슬로건이 갖는 문제는 시민과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공청회를 거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그런 민주적 형식에의 요구는 현실적으로 사치다) 「대도약」이란 말이 개발독재 시대 유물의 냄새가 난다는 데 있는 것도 아니다.(우리의 시장님이 근대성을 넘어서는 의식을 갖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문제는 지역의 문제와 전망, 그리고 구체적 정책대안을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이 이 말속에 보이지 않다는 데에 있다. 선언이라는 것이 그 형식상 추상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평창군의 「happy 700 평창」처럼 추상적이면서도 비주얼을 담고 있는 선언과는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언이 성남의 지역성에 대한 구체적 고민이 모자랐다는 판단이 자의적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그대에게 다음의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올해는 성남이 서른 살을 맞는 해이다. 일정한 시간대를 묶어서 특별하게 기념하는 일은 의례적 당위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그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서 잘잘못을 살피고 공동체의 새로운 전망을 세우는 전략적 가치를 가진다.


또한 이러한 의식을 통하여 공동체 구성원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키우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성남시의 정체성이 뭐야? 혹은 이 당연한 질문에 누가 똑 떨어지게 대답할 수 있는 거야?  정체성에의 이러한 모호함은 성남 행정의 방향이 시장의 교체에 따라 춤추는 현상을 초래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었다.


그런데 30주년에 걸맞은 이 의식에 대한 시나 시민단체의 생각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단순한 기념식과 그에 따른 예산이 시에 의해서 준비되고 있다. 시민 쪽은 아직 기획 이전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 100만 성남의 시민사회가 지역성(정체성)에 기반한 담론생산구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하다. 시, 시의회, 의제21 등의 행정영역과 시민단체들의 시민영역을 포함하여 이런 의제가 공식적인 수준에서 채택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관료들은 언급하지 말자. 어차피 관료세계의 자발성은 책임으로부터의 자유의 영역에 국한된다. 뒤집어 말하면 제도적으로 의제생산이 보장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경우는 좀 복잡하다. 일본의 「마을 만들기」나 「어메니티 운동」의 경우 우리와 가장 다른 모습은 공무원과 시민단체가 함께 간다는 점이다.


더구나 공무원이 더 열심이다. 지역의 의제 생산에서 공무원과 시민단체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시민사회는 관료에 대한 감성적 벽이 있다. 공무원과의 친밀한 소통은 "관변 단체"의 위험을 감수해야한다. 관변과 시민의 핵심경계는 예산의 성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장치(알튀세)이냐 이데올로기 감시 장치이냐에 있다. 관변의 위험 때문에 공무영역을 포기하는 것은 시민단체의 가장 핵심전략영역을 파기하는 일이다.


또한 시민운동의 지역성에 대한 소홀은 운동의 논리에 그 원인이 있다. 운동의 논리가 국가론, 변혁담론, 계급담론 등의 거대담론에 뿌리를 두고 생산된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지역운동론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텍스트를 보지 못했다. 중앙의 영역별 운동이론이 지역에서도 그대로 원용되고 있는 수준이다. 이러한 운동이론은 지역운동의 성과물들에 대한 회의로까지 나아간다. 즉 지역의 성과들이 지역을 규정하는 중앙(정치, 경제,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냐는 회의이다.


또한 이러한 운동이론은 조직의 경직성을 통하여 시민의 자발적 참여 공간을 협애화 하고, 이론의 전문성을 통하여 평범한 시민 참가자들을 인형으로 만들어 주체성의 박탈화를 유발한다. 일본의 공무원들이 지역운동에 적극적인 이유는 68 학생운동의 좌절과 거대담론의 포기, 그리고 공무원에의 대거 진출에서 찾아져야한다. 운동이론의 이론적 분석(메타이론분석)에서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새로 들어설 정부는 지방분권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분권이 지방성을 키워내고 시민들의 일상적 현실을 개선하는 지역의 조건이 되어 있는가 해서 머리가 무겁다. / 성남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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