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HOME > 뉴스 > 정치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아버지의 집안교육·학교교육은 엄격
2남 5녀의 막내 ... 성악 개인교습 받아 주말 성가대 활동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 자서전 -  ③ 형과 누나의 막내 사랑] [성남일보] 성남일보는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의 자서전  ‘잘못된 정치,49%는 국민의 책임’을 7월 21일부터 매주 월요일 게재한다. 7선 국회의원으로 국회 부의장을 지낸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의 자서전 ‘잘못된 정치,49%는 국민의책임’은 현실정치의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주]

 

(2) 형과 누나의 막내 사랑

 

2남 5녀의 막내아들이었던 만큼 내게는 형님 한 분과 5명의 누이들이 있다. 형님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거의 아버지 같았다. 나보다 스물세 살이나 위였던 형님은 경기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의대의 전신인 경성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뒤 현재 고려대 의대의 전신인 서울여자의과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였다.

 

나중에 종로구에 오세헌 내과의원을 개업해서 돌아가실 때까지 운영했다. 형님은 내과 중에서도 위장 전문이어서 환자 중에는 술을 많이 마시는 재벌들이 많았다. 형님은 약보다는 술을 줄이고 커피를 많이 마시지 말고 우유 등을 마시는 식이요법에 더 신경을 쓰셨다.

 

형님도 나를 마치 아들같이 여긴 덕분에 아버지와 형님의 돌봄을 받으면서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다섯 누이 가운데 위의 두 누이들은 대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모두 타계했다. 아래 세 누이들은 대학교까지 졸업했는데, 셋째 누이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고, 넷째 누이는 풍문여고 교사를 하다가 은퇴했다. 막내 누이는 재동초등학교 앞 오세춘 산부인과 병원을 운영하다 몇 년 전에 은퇴하였다.

 

(3) 장로였던 아버지의 기독교 사랑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무척 엄격했다. 아버지는 중학교까지 교육받은 평범한 사람이셨지만 노력가여서 일제 강점기에 면서기를 거쳐 군수까지 했다. 유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종교는 기독교를 택했다. 신앙심이 깊은 기독교 장로로 교회 일을 집안일보다 더 열심히 돌봤다.


2006년에 발간된 <성결교회 인물전> 제10집을 보면 “오명환 장로가 서울 안암동의 동부성결교회 설립에 가장 많은 재정적 지원을 했고, 장로로서 교회 설립의 초석이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내가 전해들은 바로 집안에서 교회 짓는 경비의 3 내지 4 분의 1은 아버지가 없는 돈을 만들어서 도왔다고 한다.

 

그 책에는 또 청년회에서 여름 물놀이를 갔는데 젊은 남녀가 수영복 차림으로 같이 놀았다며 그들을 모두 교회에서 내쫓아야한다고 끝까지 고집하는 바람에 젊은 학생들의 입장을 어렵게 한 일도 있었다고 적혀있다. 이 사건은 결국 경고를 주는 선에서 마무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는 그만큼 집안교육이나 학교교육에 엄격했다. 내가 일요일 교회에 안 가면 일주일 치 교통비와 점심 값을 주지 않았을 정도였다. 영(靈)의 양식인 교회를 안 갔으니 육(肉)의 양식도 필요 없다는 주장이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였다. 하루는 아버지가 내 방을 조사하다 서랍에서 담배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담배가 방바닥에 널려 있었다. 아버지가 일일이 부셔서 보란 듯이 내 방에 뿌려놓은 것이었다. 담배를 끊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내가 연세대학교 2학년 무렵 새천막교회가 문을 열었다. 나는 이미 7~8년간 성악 개인교습을 받아 노래를 꽤 잘하는 편이었다. 아버지 권유도 있고 해서 10여 명 밖에 안 되지만, 노래를 좋아하는 학생들로 성가대를 조직했다. 내 실력은 별로였으나 서로 도와가며 주일예배 때마다 성가대의 찬송이 있었고, 내가 처음부터 서투른 지휘를 했다.

 

아버지가 하루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번에 교회 집사가 되는데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라.”

▲ 미국 유학 떠나기 전 여의도 비행장에서 부모님과 함께.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교회에서 찬양대 지휘자를 맡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싫어하던 담배도 피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학생들과 데이트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집사를 하라는 명령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저는 아직 신앙심이 부족해 집사 될 자격이 부족하니 다음에 준비가 됐을 때 맡겠습니다.”

하지만 다음 주일예배 때 목사님이 나를 포함한 열댓 명의 새 집사를 부르며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목사님이 이름을 호명하면서 한 명씩 앞으로 나가는 중에 내 순서가 돌아왔고, 목사님이 드디어 내 이름을 불렀다. “오세응 씨.”

 

그때 나는 찬양대 지휘자로 맨 앞줄에 모두가 다 보이는 곳에 앉아 있었지만, 고개를 숙인 채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까지 내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자 결국 목사님은 나 없이 행사를 진행했다. 그날 집에 돌아온 뒤,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심한 꾸중을 들어야 했다.

 

당시 내 생각은 목사님과 아버지가 평상시에 말씀하신 것처럼 술과 담배를 하거나 내 여자가 아닌 남의 여자를 쳐다보는 것은 참 신앙심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당연히 집사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아버지는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집사의 자격이 충분하다며 설득했지만 나는 끝까지 승복하지 않았다. [계속]

 

 


배너
배너
배너
기사입력: 2014/08/04 [07:42]  최종편집: ⓒ 성남일보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 공감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주간베스트 TOP10
배너
뉴스 플랫폼 - 댓글 Here!
명석하신 이재선씨가 입바른 소리하면서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제목이 기소여부 초읽기가 뭡니까?? 김혜
역시 참언론 성남일보 예전부터 알고 기
혜경궁 김씨입니다. 저를 죽여주세요.. ^
혜경궁김씨입니다. 이재명지사가 감옥에가
박사모 부부가 똑같네.. 이제와서 딴소리
조중동이 성남일보와 같았다면, 지금 대한
인맥이 아주 화려하네~ 줄줄히 낙하산인사
이런 게 기사죠. 이재명이 뿌린 돈 받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