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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정치에 관심 갖고 학생회장 출마
1956년 한국서 열린 아시아반공연맹 주최 '아시아대학생 반공대회' 참가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 자서전 - ⑦ 연세대학교 시절] [성남일보] 성남일보는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의 자서전  ‘잘못된 정치,49%는 국민의 책임’을 지난 7월 21일부터 매주 월요일 게재한다. 7선 국회의원으로 국회 부의장을 지낸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의 자서전 ‘잘못된 정치,49%는 국민의책임’은 현실정치의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주]

 

(3) 연세대학교 시절


공군에서 만기 제대를 하고 대학 진학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내가 가려던 서울대 문리대에 고등학교 동기생들이 이미 50명 이상 다니고 있었다. 군대 갔다 오느라 늦은 것이 자랑스럽기는 했지만, 동기생들 후배 노릇을 해야 하는 게 싫어서 주저하고 있었다. 마침 연세대 정외과가 좋다고들 해서 그리로 지원하게 됐다. 내가 지원할 당시 연대 정외과는 경쟁률이 13대 1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이미 군대도 다녀온 데다 집안 형편도 나쁘지 않아서 많이 놀러 다닌 편이었다. 인접한 이화여대 학생들과 데이트도 하고 춤도 추러 다녔다. 물론 당시에는 놀러 다닐 만한 곳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기껏해야 인천 송도나 가는 정도였다. 춤을 추려면 미군 바(Bar)나 한국 바를 가야했지만 그런 곳을 간 적은 없고, 주로 친구 집에서 전축을 틀어놓고 춤을 추었다. 올나이트 파티도 1년에 한두 번 하곤 했다. 나는 춤을 잘 추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내가 춤을 잘 출 수 있었던 것은 누이들 영향이 컸다. 한창 춤이 유행하던 시절이어서 누이들도 춤을 좋아했다. 여자들이 춤추러 다니면 안 된다고 하니까 주로 나를 데리고 집에서 함께 춤을 배우곤 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배웠는지 누이들은 새로운 춤을 배워 와서 나를 파트너 삼아 추곤 했다.

 

그 때 췄던 춤은 트로트, 지터벅(지르박), 탱고, 차차차 등이다. 춤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당시 서울여자의과대학(현재 고려대 의과대학) 창립자였던 박춘자 씨의 아들이었던 동창생 김두수가 학생 중에서는 춤을 제일 잘 춘다는 소문이 친구들 사이에서 파다했다. 그 무렵 김두수의 집에 미제 닷지(Dodge) 자가용이 있어 그 차에 여학생들을 태우고 퇴계원이나 뚝섬으로 놀러 다닌 기억이 난다.


연세대 시절 요즘 학생회 격인 학생운영위원회 선거에도 출마한 적이 있다. 정치에 관한 관심은 이미 대학생 시절부터 있었던 것 같다. 연세대학교가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갔다가 서울로 돌아오고 난 3학년 때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도 벌써 지역주의 현상이 나타나서 전라도는 전라도끼리 뭉치고, 경상도는 경상도끼리 뭉치는 경향이 강했다. 학교가 부산으로 내려갔다 올라온 직후였기 때문에 역시 경상도 출신들이 많았던 까닭인지 경상도 출신의 장학식이라는 친구가 회장이 됐다. 선거 결과는 내가 실력이 부족한 탓도 있었다.

 

당시에 선거운동을 한답시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막걸리도 마시며 돌아다니곤 했다. 그런데 경기도 태생인 나로서는 지역을 중심으로, 또 고향을 중심으로 뭉치는 것이 그때부터 생리에 맞지 않았다.


선거에 패하긴 했지만 이긴 쪽의 제안도 있고 해서 나는 학생운영위원회의 홍보부장을 맡았다. 홍보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내가 새로 시작한 일이 바로 연세대학생회 주최 전국 남녀 고등학생 영어 웅변대회였다. 경기중학교 다닐 때부터 영어에 관심이 많았던 편이기도 했지만, 앞서 말했듯 군대생활을 할 때 의도적으로 영어 공부를 많이 해서 비교적 잘하는 편이었다.

 

그때 영어 웅변대회를 개최하면서 직접 영어로 사회를 보기도 했다. 대회 결과도 기억이 난다. 남자부에서는 ‘democracy and dictatorship'(민주주의와 독재주의)이라는 제목으로 웅변을 한 경기고등학교 학생이, 여자부에서는 이화여고 학생이 1등을 했다. 남자부에서 1등을 한 정주년 군은 나중에 외교관이 되었다.

 

(4) 아세아대학생 반공대회


내가 대학 3학년인 1956년에 아세아반공연맹이 주최하는 ‘아세아대학생 반공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나는 연세대학교를 대표하여 대회에 참가했다. 아세아반공연맹은 이승만 대통령과 대만의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주도해서 아시아 10여 개 국가가 참여해서 만든 것으로, 그 해는 우리나라가 주최국이었다.

 

이 대회에 거의 10여 개 나라가 참여해서 상당히 큰 규모로 치러졌다. 그때 한국 학생대표는 각 대학교에서 영어를 잘하는 학생을 중심으로 선발했다.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2명씩 나왔고, 연세대, 고려대, 숙명여대, 성균관대, 중앙대 등에서 각 1명씩 나와 도합 10여명으로 대표단을 구성했다. 이때 이화여대의 대표로 나온 이연숙 씨는 나중에 국회의원과 정무장관을 역임했다.

▲ 아시아반공학생회의 때 외국대표들과 함께 경무대로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한 후 기념찰영.(화살표 아래 필자와 영부인 앞에 이연숙 전 장관이 보인다)     © 성남일보

이 대회는 6·25전쟁 직후 냉전이 한창이던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었다. 아시아 각국 대학생 대표들이 모여서 공산주의 팽창에 대응하자는 결의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회가 끝난 후 경무대로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하기도 했다.

 

그때 한 가지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대회에 나가는 우리나라 대표들이 잘 보이는 게 좋겠다는 뜻에서 대회 고문인 황성수 국회부의장에게 “대표들에게 같은 색의 양복을 한 벌씩 맞추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일이 그것이다. 그 때 황 부의장은 ”외교 대표는 운동선수 대표가 아닙니다” 라며 받아 넘겼다. 생각해 보니 황 부의장의 말이 옳아서 무안했던 기억이 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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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9/29 [07:52]  최종편집: ⓒ 성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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