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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만자루의 권총이 필요한 사회

최창일/시인·세계펜클럽한국본부이사 | 기사입력 2015/09/17 [08:49]

한국,천만자루의 권총이 필요한 사회

최창일/시인·세계펜클럽한국본부이사 | 입력 : 2015/09/17 [08:49]

[최창일 칼럼]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들은 하나 같이 시대의 매세지가 담겨있다. 그 메세지는  10년, 20년 묶은 감정들이 모여 있다가 일어서게 된다. 마침 강한 호소력을 가진 영화가 나타날 때 대중 정서와 맞닿아 관객 동원으로 이어진다.

 

이런 것을 두고 임계점(臨界點)이라고 한다. 임계점은 저 온상에서 고온상변화를 할 때 저 온상으로 존재 할 수 있는 한계 온도의 압력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여 99도에서 100도로 올라가는 사이다.


 영화, '명량'(鳴梁)은 천만 관객을 스크린 앞에 동원 시켰다. 사회상황은 이순신 같은 지도자가 그립거나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여의도 정치인의 몰골은 하나같이 이념논리다. 계파이익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지역논리, 당리당략의 국정이다. 국민편의 가슴이 아니다.


  '갑' 질의 정치. '을'이 되어버린 국민들은 짜증을 넘어 분노로 치닫는다.     폭발직전, 대안과 훈기를 요구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안철수 현상이다.     정치 지형에 전혀 예고되지 않는 시대와의 불화가 발생된다. 정치에는 전혀 무뢰한인 안철수에게 기대치를 걸었다. 무엇인가 해줄 사람으로 보인다.  

 

안(安)이 발명한  PC의 백신처럼 사회의 불편현상을 퇴치할 만한 인물로 점찍어 보는 것이다. 안의 현상은 민주화의 주역, 3김(金)이 받았던 지지 이상으로 순식간의 국민의 열기를 얻어냈다.


앗 차! 그것은 찰라의 환상이었던가. 기대하였던 안철수는 희미하게 기대치 밖으로  기존세력이 밀어버린다. 기댈 곳이 없어진 국민들은 영화라는 종합예술에서 찾게 된다.
 

명량의 성웅 이순신은 국민의 뇌(腦)였다. 노론 소론도, 여야 계파논리가 아니었다.  일본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수군(水軍). 열 두 척의 거북선으로 국민을 지켜냈다. 비록 영화 속이지만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넘어 은총이었다.

 

어쩌란 말인가. 화면의 이순신은 임진왜란의 역사적 인물. 여의도의 실존인물은 아니었다.  다시 국민은 지도자상에 허기진다. 국민을 위한 순덕(純德)자가 절실하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을 넘어선다. 잘못된 것은 직접 손봐주고 싶다는 행동주위에 도달한다. 비정상의 지도자에게 기댈 수 없다는 묵시적 여론이 팽배해 간다.


 2015년의 여름'암살'(暗殺)이라는 영화가 순식간에 1200만 관객을 동원한다. 1993년 일제하 조선 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마모루와 친일파 강일국을 내손으로 제거한다. 국민의 편에 서서 일하지 않는 지도자는 영화 속의 조선 주둔군 사령관이거나 친일 자다. 숨 막히게 추격, 저격하고 싶어진다.


 배우 전지현의 총은 극장 티켓을 구입한 관객의 손으로 넘겨진다. 순식간에 천만여 자루의 권총이 동이 난다. 국민 다섯 명중, 한사람이 권총소유자가 된다.


 역사는 을(乙)끼리 뭉쳐지면서 이루어졌다. 독일의 통일도 수많은 '을'들의 시간이 만들어 냈다. 6.29선언이라는 민주화의 결과도 '을'들이 뭉쳐서 만들어 냈다.


 대통령으로 당선 되리라 믿었던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보자.


권위주위 청산이라는 뜻하지 않는 변수다. 권위주위에 넌 저리가 나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지도자들의 모습. 빈정상한 국민들은 잠 못 이루는 저항이 잠재된다. 때마침 노 후보는 기존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공약을 선보인다. 대학로 목로주점에서 통기타를 치며 눈물 흘리며 노래하는 노 후보. 국민들의 가슴에 와 닺았다. 이회장의 권위주위를 읽지 못한 패배다.


  정치학자들도 권위주위를 무너뜨린 '을'의 쾌거라고 평한다. 이도 임계점의 결과다.


  다시 학자는 말한다. 박근혜대통령이 당선된 요인은 정직과 약속의 이미지였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에 환멸이 뭉치고 있었다. 믿음직한 사람을 찾게 된다. 그럴 즈음 가장 믿음직스러운 지도자상은 박근혜 후보였다.


 현재 박근혜대통령의 정치적 상황과는 별개라는 전재가 필요하다.


 성하의 끝자락 극장가에 천만관객을 넘어선 '베테랑'영화도 마찬가지다. 재벌들의 못된 경제지배주에 분노한 대중들은 영화를 통해 악을 소탕하고 싶다. 정부나 지도자가 대중의 임계점을 읽지 못하면 패배하거나 폭력을 보게 된다. 임계점은 수많은 시간 속에 만지작거리다가 순식간에 이루어 졌던 것을 지금도 목도하고 있다. 한국의 대중들은 권총이 필요하다. 

 

- 기사제휴 : 뉴스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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