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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국회, 외무위원 활동 ⑯
외무위에서 김형욱과 한판 ... 김형욱과 함께 맞은 10월 유신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 자서전 - ⑯ 18년 6개월, 최장 외무위원 활동의 시동] 성남일보는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의 자서전  ‘잘못된 정치,49%는 국민의 책임’을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


7선 국회의원으로 국회 부의장을 지낸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의 자서전 ‘잘못된 정치,49%는 국민의책임’은 현실정치의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주]

 

5장


18년 6개월, 최장 외무위원 활동의 시동

 

1. 8대 국회, 외무위원 활동

 

(1) 외무위에서 김형욱과 한판


나는 역대 최장 외무위원이었다. 18년 반 동안 외무위원을 했으므로 그것이 곧 나의 의정활동의 중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8대 국회에 처음 등원했을 당시 곧바로 외무위원회로 갈 수 없었다.

 

여야 모두 외무위원회에 중진급들이 포진해 있던 터라 초선 의원을 배치하는데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 간 곳이 보사위원회였고, 그곳에서 3개월 활동한 다음 비로소 외무위원회로 갈 수 있었다.


그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헌법이 허락하는 8년 임기 마지막을 앞두고 3선 개헌을 위해 무리수를 둘 때였다. 특히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평판은 몹시 좋지 않았다. 공화당 내부에서까지 3선 개헌에 대한 협력을 조건으로 이들의 경질을 요구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당시 공화당은 영빈관에서 의원총회를 하면서 3선 개헌을 논의할 때 이만섭 의원이 찬성의 조건으로 막강한 이후락 비서실장과 김형욱 정보부장의 퇴진을 내걸기도 했다.


바로 그 즈음 내 귀에 미국 하원에서 해나(Hanna) 의원이 김형욱 전 정보부장을 영웅시하는 연설을 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내용을 알아본즉 워싱턴DC에 근거를 둔 박동선이라는 한국 실업인이 뒤에서 조종했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당시 공법(PL) 480호로 한국에 곡물을 원조하고 있었다. 박동선이 캘리포니아 출신인 리처드 해나 의원의 선거구에서 쌀을 구입하도록 김형욱 전 정보부장에게 부탁하는 대신 해나 의원으로 하여금 김형욱 부장을 영웅시하는 국회 발언을 하도록 만들고, 그 중간에서 쌀 구매 커미션 수십억 원을 챙겼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당시 외무위원회는 국회의 상원이라 일컬을 만큼 정계 거물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여당에서 정일권 전 총리를 비롯해 이동원 전 외무부장관, 공화당 실세인 장덕진 의원, 그리고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형욱 의원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야당의 진용도 만만치 않았다. 유진산 총재를 비롯해, 김영삼 전 대통령, 정일형 전 외무부장관, 윤재술 원로 의원 등이 있었다. 위원장은 대통령 비서실장과 외무부장관을 역임한 이동원 의원이 맡고 있었다.


그날 위원회가 시작되면서 내가 말문을 열었다.
“오늘 황당한 뉴스를 들었습니다. 미국 하원에서 리처드 해나 의원이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어서 최근 그 자리에서 밀려난 정치인을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애국자이자 반공투사로 표현한 연설을 하였다고 합니다. 내가 알기에 부도덕한 장사꾼이 뒤에서 장난을 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도덕하고 좋지 않다고 평가받는 사람을 미국 국회가 영웅시하는 것은 두 나라의 우호관계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일이니 외무부로 하여금 조사하여 진상을 국회에 보고하도록 조치를 취하여 주십시오.”


여기에서 내가 말한 부도덕한 정치인은 물론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형욱 의원이었다. 차마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발언한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겁 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너무 황당한 일로 여겨져 조심스럽게 말문을 꺼낸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발언이 끝나기도 전에 김형욱 의원이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누구 이야기하는 거야!”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김형욱 의원에게 대꾸하지 않고 이동원 위원장에게 ”지금 본 의원이 발언권을 행사 중이고 아직 발언이 끝나기도 전인데 이렇게 방해해도 됩니까?”라고 반문했다. 대학 선배이기도 한 이동원 위원장이 잠시 멈칫하더니 ”김형욱 의원! 오 의원 발언이 끝나면 말씀하십시오”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김형욱이 위원장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내 자리로 건너오는 게 아닌가? “이 새끼 국회의원이면 아무 말이나 막 해도 되는 줄 아는데, 내가 손 좀 봐줘야겠어”라면서 저고리 소매를 걷어 젖히며 내 쪽으로 오자 여당의 정일권 의원, 장덕진 의원, 강성원 의원을 비롯해 대여섯 명이 김 의원을 막고 나섰다. 그 바람에 마지못해 김형욱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분을 참지 못한 그는 “너 재작년 3.1절에 미국에서 학생회 회장들이 한국에 왔을 때 내가 그 경비 다 대줬어,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고 덧붙였다. 김형욱은 내가 정부 돈으로 여행한 사쿠라 같은 놈이라는 뉘앙스를 강조한 것 같은데 나는 모른 척하고 그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앗! 대한민국 큰일 났네. 나는 한국정부 초청으로 3·1절 행사에 참석했는데, 그 경비가 김 의원 주머니에서 나왔다면 대한민국 예산과 김 의원 주머니가 같다는 이야기란 말이요?” 당시 발언하면서도 “내가 좀 심했나?” 하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그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는데, 그가 그토록 화를 내기에 솔직히 조금 무섭긴 했다. 그 일이 있기 얼마 전에 중앙정보부가 김영삼 야당 원내총무 승용차에 염산을 뿌린 일이 벌어지기도 했고,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김형욱이었기에 더 그랬다. 그렇지만 기자들이 다 지켜보는 공식회의 석상에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내일 테러를 당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맞섰던 것이다. 아래는 당시 나의 발언 내용과 장내소란으로 잠시 정회되는 상황에 관한 국회 속기록 내용이다.

 

오세응 위원 : “1969년 7월 29일 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영빈관에서 공화당 의원총회가 있었습니다. 이 69년 7월 29일 의원총회는 그때 문제가 되어 있는 3선 개헌과 관련되어서 논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이 자리에서 이모 의원을 비롯해서 20여명의 공화당 의원들이 집권층 내의 몇몇 사람 이름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이들이 과연 국민의 신임을 받고 있느냐라고 들이대면서 3선 개헌에 앞서 소위 요직개편을 선행해야 한다는 등 밤새도록 시끄러웠던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공화당내에서까지 정부 요직개편을 해야 된다고 문제시되고 있는 이 사람들 중의 한사람이 1969년 7월 12일 미 하원에서 캘리포니아주 출신 모의원에 의해서 이 사람이 신상발언을 했는데 대한민국의 3선 개헌과 관련되며 또한 공화당 의원총회에서까지 정부개편을 해야 한다는 그 사람을 세계 영웅으로 만드는 발언을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이 원하는 바 없으며 또한 공화당 의원총회에서까지 요직개편을 들고 나올만한 이런 사람을 외국 국회의원이 영웅으로 만드는 그러한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 뒷조사를 해본바 있습니다. 그래서 보니까 박아무개 부도덕한 장사꾼이 이에 개재되어 있어서 영웅시되었던 그 사람에게 이권을 받고 또한 그 미국 국회의원은 자기 출신구의 쌀을 팔아먹는 이러한 교환조건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데 여기에서 박아무개가 본위원이 알기에는 이러한 일을 한건 치렀기 때문에 50만달러라고 하는 이익금을 가지고 돈을 번 그러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 외무부에서는 앞으로 이러한 캘리포니아주 출신 의원과 같은 친한파 의원에 대해서 대한민국 국민이 원하지 않는 그런 발언을 시키는 그러한 부도덕한 장사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의미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요란했던 회의가 끝난 뒤 내심 무서웠지만 태연한 표정으로 위원회 부속실로 가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정시키고 있었다. 회의장 내 여러 의원들이 있었지만, 모두들 내가 너무했다고 생각했는지, 혹은 김형욱 의원 앞에서 나하고 친한 것을 보여주기 싫어서인지 별로 이야기를 붙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순간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동원 위원장이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귀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다. “잘 했어! 하지만 나중에 김형욱 의원이 이 방으로 들어오면 ‘내가 좀 너무한 것 같네요, 미안해요’ 라고 한 마디만 해.” 자존심이 약간 상하긴 했지만 김 의원이 부속실에 들어서는 순간 이 위윈장이 하라는 대로 사과를 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김형욱 의원이 보인 반응이었다. 내 옆으로 바싹 다가와서 앉더니 어깨를 두들기면서 “미안하긴 뭐, 젊었을 때는 그런 패기가 좋은 거야. 이거 봐요, 위원장! 오늘 저녁은 내가 한턱 낼 테니 삼청각에 외무위원들 다 함께 갑시다.” 그날 저녁 10여명의 외무의원들이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셨는데, 술자리에서도 김 의원은 나에게 친절히 대해줬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난 조간신문을 모두 펼쳐놓고 어제 일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직 한국일보만 가십란에 단신으로 취급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그날 석간에 몇몇 신문이 조금 더 자세한 기사를,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는 더욱 더 자세하고 크게, 김형욱 전 정보부장이 오세응 초선의원에게 당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문들도 김형욱 의원에게 불리한 기사를 쓰는 것이 무서웠는지 일부 신문들이 조금씩 쓰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확대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전국적으로 온 국민에게 알려지면서 나는 초선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나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사건인 것이다. 참고로 동아일보(1972년 3월 14일)에 실린 기사 내용은 이랬다.

 

신상 발언이 도화선(導火線)
국회 외무위는 13일 오후 미, 중공 회담결과에 대한 대정부 질의 도중에 신민당 오세응 의원의 발언이 도화선이 돼 김형욱 의원과 오 의원이 서로 욕설을 퍼붓는 등 약 15분 동안 승강이를 벌여 험악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미국유학생 회장을 지낸 후 신민당 전국구로 뽑힌 오 의원은 지난해 연말 한병기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칼 앨버트 미 하원의장이 한국의 비상사태선언을 지지했다고 발언한 것처럼 신문에 보도된 것은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미국의 친한파 의원들을 멀어지게 하는 결과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여당으로부터 지탄받던 모 인사가 한국 실업인 P씨의 작용으로 미국 하원의원으로부터 찬양받은 사실이 있는데 이 같은 처사는 외교적으로 한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따지자 맞은편에 앉았던 김형욱 의원이 들고 일어나 "당신 누구 얘기를 하는 거야. 왜 동료의원 이름을 들먹여"라고 제동을 건데서 점화됐다. 
오 의원 “할 얘기가 있으면 발언권을 얻어서 하시오.”
김 의원 “신민당이 사람이 없어 저런 걸 전국구로 추천했나. 너 아직 맛을 못 봤어.“
오 의원 “이보라구. 당신이 상식 있는 줄 알았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김 의원이 흥분해서 명패를 들고 일어나 달려가려 하고 정일권, 장덕진 의원 등이 곁에서 김 의원을 말리는 바람에 장내가 몹시 소란해지자 이동원 위원장은 정회를 선포.

 

(2) 김형욱과 함께 맞은 10월 유신


김형욱 전 정보부장은 우리나라 정치사에 파란곡절이 많은 사람이기에 그와 있었던 일을 몇 가지 더 설명하기로 한다. 외무위원회 충돌 사건이 있고 몇 달이 지난 후 국정감사 때 일이었다. 김 의원을 단장으로 여당 의원 1명과 나, 이렇게 셋이서 유럽지역 대사관 국정감사를 갔다. 출발 전 김형욱 의원의 비서라면서 누가 찾아 왔다. “김 단장께서 오 의원님 비행기 표를 가지고 오랍니다.” 별 생각 없이 비행기 표를 줬는데, 나중에 보니 김 의원과 내 표는 1등석이고, 동행한 여당 의원은 정부에서 사주는 2등석이었다. 자기 돈으로 내 표를 1등석으로 바꾼 것이었다. 의원이 3명에 불과한 단출한 감사여행이었음에도 같은 여당 소속의 의원을 내버려두고 나만 챙겨서 1등석으로 바꾼 것은 물론, 현지에서도 나에게만 유난히 잘해줘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제네바에 갔을 때 김 의원이 “오늘 저녁에 나하고 조용히 갈 곳이 있으니 다른 약속은 하지 말아요”라고 해서 기다렸더니, 박동진 제네바 주재 대사가 직접 운전하는 차에 우리를 태워 프랑스 국경지대의 카지노로 데려갔다. 그날 밤 대사는 멀리 떨어져서 구경만 하고 우리는 둘이서 블랙잭을 했다. 김 의원은 내게 1만 달러 묶음을 주면서 “천천히 하고 부인 스위스 시계나 하나 사다 주시오”라고 했다.


다음 감사지인 스페인 한국대사관에서 감사를 막 시작하려 할 때였다. 참사관이 황급히 들어오더니 보고 중인 대사에게 귓속말로 무언가를 속삭였다. 곧바로 대사가 말하기를 ”오늘 새벽 2시 한국에서 계엄령이 선포되고 국회가 해산되었습니다”는 것이 아닌가? 순간 속으로 드디어 올 것이 오긴 왔는데, 조금 빨리 왔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김 의원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았어요, 계속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국회가 해산되었는데 무슨 국정감사를 계속해요?”라고 하자 김 의원도 그제서 상황 파악이 되었는지 “그런가? 그럼 그만둡시다”면서 흐지부지 감사를 끝냈다. 나는 10월 유신을 해외에서 맞았던 것이었다. 


국회 해산과 더불어 갑자기 실직자가 된 우리는 스페인에서 감사단을 해산했고, 김형욱 의원과 나는 곧바로 미국으로 향했다. 뉴욕의 한 호텔 방에서 김 의원과 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그는 나를 많이 믿었던지 속마음까지 털어놓았다. 박 대통령의 독재로 어려운 처지가 되었으니 큰일이라고 말하면서, “오 박사는 미국에서 대학 교수라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난 돌아가기 싫지만 안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아무리 독재라고 하더라도 나를 죽이기야 하겠느냐. 아무 잘못한 것이 없는데…”라도 대답하면서 함께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김 의원은 곧 귀국했고, 나는 도중에 하와이에서 푹 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귀국했다. 공항에서 야당 의원은 혹시 심하게 다루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무 일 없이 서울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유신헌법 하의 9대 국회에 다시 진출할 수 있었다. 나보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왔던 김형욱은 조용히 골프와 테니스를 치면서 지내다가 차후에 몰래 미국으로 망명했고, 망명한 직후에는 뉴저지의 농장이 붙은 넓은 집에 살면서 지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면서 미국 의회 청문회에까지 나가 한국정부를 비난하는 증언을 서슴지 않았고, 박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는 책을 쓴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3) 김형욱의 외로웠던 망명생활


그가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할 때 나는 국제회의에 참석하느라 1년에 한두 번 미국에 들렀다. 그의 생활이 어떤지 궁금해서 연락했고, 골프를 같이 치기도 했다. 그도 내가 연락하면 반갑게 맞아주었고, 내게서 한국 사정을 듣는 걸 좋아했다. 한 번은 새로 나온 최고급 골프채까지 사주면서 골프를 치러 가자고 해서 함께 간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뉴욕 56번가에 있는 ‘삼복’이라는 한식집에 갔을 때다. 비록 내가 야당 소속으로 긴급조치에 걸린 신세이긴 했지만 그가 초조해 보였고, 또 한국에 대해 너무 심하게 비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김 선배! 나는 김 선배가 이렇게 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니, 귀국해서 박 대통령에게 사과하고 한국에서 사세요. 내가 미국에서 살아봐서 잘 아는데 김 선배 같은 분은 여기서 마음 편하게 행복하게 살 수가 없어요.”

그러자 그는 펄쩍 뛰면서 “나 지금 여기서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다시 ”김 선배! 나처럼 여기서 13년 살면서 공부를 하며 익숙해도 여기서 아주 사는 것은 싫은데, 김 선배는 얼마나 불편하겠어요!”라고 거듭 귀국을 권유했다. 그랬더니 그는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식당의 주인아주머니를 불러 “여보 이 마담, 나 어제 여기 왔지? 내가 젊은 여자 세 사람하고 술 마시고 밤늦게 돌아갔지?”라고 말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미국생활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나에게 애써 강변하려 하는 그의 모습이 애처롭게 여겨졌다. 내가 경험한 바로 그는 씀씀이가 컸다.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에 그가 박 대통령의 비리를 과장해서 기록한 책을 출판하기 직전에 중앙정보부가 그 책의 원고를 받고 100만 달러를 주겠다는 흥정을 했었다. 그 와중에 파리의 한 호텔에 투숙한 것을 마지막으로 타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계속]

 

-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 손 전화 : 010 - 5261 - 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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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1/01 [10:21]  최종편집: ⓒ 성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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