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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장 받을 때 처음 본 전두환 대통령
11대 국회,4선 의원 시절 ... 정무장관 시절의 야당관리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 자서전 - ⑲ 11대 국회,4선 의원 시절] 성남일보는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의 자서전  ‘잘못된 정치,49%는 국민의 책임’을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


7선 국회의원으로 국회 부의장을 지낸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의 자서전 ‘잘못된 정치,49%는 국민의책임’은 현실정치의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주]

 

6장

 

제5공화국, 여당 정치활동

 

1. 11대 국회, 4선 의원 시절

 

(1) 국가보위입법위원이 된 계기

 

1980년 봄, 양김씨의 단일화는 실패했고 정국은 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소란했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대로 군인들이 정치무대에 들어왔다. 그때 내 심정은 정치를 그만두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럴 즈음 신군부 쪽에서 연락이 왔다. 처음 연락해온 사람은 권정달씨 측근으로, 입법회의에 참여해달라는 것이다.

 

양김씨를 통합시켜 정국의 혼란을 최소화하려고 나름대로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던 서운함도 내 마음 속에 없지는 않았다. 그들도 군인들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차라리 그 안에 들어가서 바른 소리를 해서라도 올바로 할 수 있게 하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며칠 뒤 결국 참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나중에 들어보니 정대철 의원에게도 연락이 왔다고 하는데 거절했다고 한다. 나는 그 문제에 있어서는 정 의원과 생각이 조금 달랐다.

 

당시 신군부 내에서 정당 관련 일은 권정달씨가 총책임을 맡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사람과 자주 부딪쳤다. 다른 정치인들은 민정당에 들어가면서 대개 지역구와 공천을 약속받고 들어가는 식이었지만 나는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싫으면 그만두고 무소속으로 나가면 그만이라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권정달씨에게도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배짱을 가지고 권정달씨를 대했는데, 그는 군인치고는 상당히 정치를 잘 아는 편이었다. 아무리 신군부의 후광을 업고 있다곤 하지만 육군 대령 출신이 정치권을 그렇게 주무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2) 어차피 할 여당이라면 더 철저하게

 

당시 신민당 출신으로 입법회의에 참여한 정치인 대부분은 나중에 민주한국당(민한당)으로 갔지만 나는 민정당을 택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성격상 야당에 들어가면 진짜 야당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데, 민한당이 중앙정보부의 뜻을 많이 따르는 소위 관제 야당이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나는 여당을 하려면 철저하게 여당을 해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민정당을 택했다. 그때가 나로서는 야당 생활을 접고 여당 의원으로 180도 변신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법적으로 신민당이 해산되었기에 자연히 당적도 없는 상태였다.

 

야당 의원에서 여당 의원으로 적을 옮기기는 했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아서 애를 많이 먹었다. 무엇보다 심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일들이 적지 않았다. 많은 부분에서 참아야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속에서 뚜렷하게 의사표현을 해야 할 순간에는 집에 걸려있던 윤보선 전 대통령의 글 ‘의를 보고 밀고 나가라’(見義勇進)의 뜻을 떠올리곤 했다.

 

(3) 원내총무 선임을 거부한 경위

 

신군부 측의 권유로 여당 의원이 되긴 했지만 솔직히 누가 날 민정당에 끌어들였는지 잘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등학교 후배로 당시 KBS 기자였던 길종섭씨가 늦은 밤 여의도 내 아파트로 찾아 왔다. 내가 놀라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웬일이냐?”라고 물었더니 “형님, 좋은 얘기가 들려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뭔데?” 그랬더니, “오늘 전두환 대통령한테서 술 한 잔 얻어먹고 오는 길인데요. 형님이 원내총무가 될 것 같습니다”는 것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원내총무는 오세응 의원 같은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을 했다. “대통령이 정치를 너무 모르는구나. 나 같은 사람이 하면 안 돼. 왜냐하면 내가 나서서 군인 편을 들면 구 정치인들이 오세응이 언제부터 저렇게 변했냐고 할 것이고, 내가 야당 편을 들면 혁명한 사람들이 혁명 다 망친다고 그럴 텐데, 왜 나 같은 사람을 집어넣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건 안 되지.”

 

그래서 다음날 내가 먼저 허화평 청와대 비서실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를 원내총무로 지명했다가 내가 거절하면 무안할 테니 미리 말하는데 나 말고 육사 출신을 시키라”고 권했다. 혁명을 해놓고 나같이 양쪽 이야기 다 듣는 사람을 시켰다가는 큰일 나니까 앞만 보며 밀고 나갈 육사 출신으로 임명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 내 의견이었다. 결국 이종찬씨가 5공화국의 초대 원내총무가 되었다. 그때 전두환 대통령이 나를 좋게 보고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2. 정무장관 활동

 

(1) 임명장 받을 때 처음 본 전두환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정무장관 임명장을 받을 때였다. 사전 통보는 없었다. 당시에는 인선 발표를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장관 임명 받는 사람이 다 좋아할 것이라고 여겨 의견을 묻지도 않고 임명했을 것이다. 당연히 그만둘 때 일방적으로 후임자를 발표해도 겉으로는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내가 어떻게, 누구의 추천으로 장관이 되었는지 모른다. 민정당 초대 원내총무를 내게 주려고 했던 대통령의 뜻을 감안하면 대통령이 전부터 나를 좋게 생각한 듯하다.

▲ 대통령 특사로 아이티를 방문해 두베리아 대통령과 회견하는 필자.(오른쪽 끝)     © 성남일보

정무장관은 예전의 무임소장관을 말한다. 주된 업무는 행정부와 국회의 이견을 조율하고 정치인들의 고충사항을 조용히 도와주는 동시에, 대통령께 좋지 않은 여론에 관하여 말씀드리고 그 해결책을 건의하는 일이었다. 내가 주로 상대한 정당은 민한당이었다. 그 무렵 민한당은 이미 정부를 긍정적으로 대하는 분위기였기에 나는 큰 어려움 없이 대(對) 야당 정치를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중요 정책은 결과에 따라 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대통령이 극단의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잘못되면 방패막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문제는 장관 차원에서 결행하고 잘못되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전두환 대통령은 “괜찮아요. 나의 지시로 결행했다고 하세요. 그것이 나의 소신이니까” 하는 식으로 일처리를 해서, 어쩔 수 없이 뒷자리로 물러선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정무장관 시절 남미의 콜롬비아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대통령 취임식에 대통령 특사로 참석했다. 또 그곳에 가는 길에 우리의 우방인 아이티에도 들렀다. 이외에도 대통령 특사로서 네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시아 각국을 15일 간 방문하기도 했다.

 

(2) 특이했던 친구 관계, 전두환과 노태우

 

1983년 10월 정무장관을 그만둘 때 청와대에서 퇴임하는 장관 여섯 명이 동부인해서 만찬을 가졌다. 그때 눈에 거슬린 것 하나는 노태우 내무장관과 전두환 대통령이 생사를 같이한 혁명 동지이자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 동창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태우 장관이 전두환 대통령을 매우 어려워하던 모습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친구처럼 대하는 반면, 노태우 장관은 선배 대하듯이 했는데, 여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 날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술을 한 잔씩 권하는데 내가 “대통령께 한 잔 올립니다”라면서 술을 따르려 했다. 그러니까 전두환 대통령이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나 오늘은 술 못 먹어요. 오 장관.” 그래서 “왜 그러세요?”하고 물었더니 “이ㅇㅇ 의원이 외국에 갔다 오면서 무슨 보약이라고 갖다 줬는데, 어제 그걸 먹고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어 술을 못 마셔요”라고 했다. 나는 전두환 대통령이 거침없이 실명을 언급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솔직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모 의원은 K대 학생회장 출신이며 강직한 사람으로 알려진 의원이다.

 

당시 정무장관은 당의 서열 여섯 번째였다. 고위당직자들과 중앙집행위원이 최고의결기관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차기대권 후보를 지명하는 행사가 청와대에서 이루어졌을 때다. 30여명의 중앙집행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전두환 대통령이 노태우 당 대표를 지명하는 자리였다. 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후보로 그동안 경험을 많이 쌓은 노태우 당 대표를 추천합니다”라고 선언하자 노태우 대표는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인사를 해서 다들 박수를 쳤다. 그런데 나중에 밖으로 나돈 풍문은 노태우 대표가 눈물을 흘리면서 감격해했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3) 정무장관 시절의 야당 관리

 

그 무렵에는 야당과 여당의 의견이 뚜렷하게 갈리지 않았던 때라서 정무장관으로서 역할을 한 것이 별로 없었다. 다만 여야를 떠나서 내가 저녁이라도 한 번 하자고 연락하면 모두들 반갑게 응해주었다. 야당 의원들에게는 앞으로 여당 쪽에서 제기할 현안들에 관해 미리 설명해주곤 했는데, 그럴 때 일리가 있다면서 이해를 잘 해주는 편이었다. 아마 그런 점에서 다른 사람이 한 것보다는 야당 출신이었던 내가 한 것이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특히 야당 쪽에 아주 깊숙하게 관련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어 내가 좀 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한다. 민한당의 유치송 총재와는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온 사이로 나에게 충고도 많이 해주었다.

 

▲ 대통령 특사로 스리랑카 대통령 면담.     © 성남일보

과거의 관례로 봐서 정무장관이 야당 의원들에게 용돈을 나눠준다던가 하는 일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을 내게 맡기지 않았다. 내게 그런 것을 맡겼다가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른다고 판단했던 것이라고 추정했다. 야당 의원들에게 용돈을 주는 창구는 따로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아마도 그런 일은 통상적으로 가신들이 하니까, 그 때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후 재판과정에서 드러나는 바람에 나도 자세히 알게 되었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재임 시 많은 돈을 거둬들였고 또한 많은 돈을 아랫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곧 있었던 13대 국회의원 선거 1개월 전쯤 C 전 장관과 J 전 장관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을 점심 때 연희동 자택으로 초대한 일이 있었다. 식사 후에 전 대통령이 선거에 꼭 당선되라고 격려하면서 1억 원짜리 수표가 든 봉투를 하나씩 주었다. 나는 선거를 여러 번 치렀지만 1억 원짜리 돈을 선거에 쓰라고 받아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기억하기에 전 대통령이 재판 후에 벌금으로 내지 않은 돈이 1,600여억 원인 것으로 아는데, 분명한 것은 전 대통령이 아랫사람들에게 상당히 많은 돈을 뿌렸다는 사실이다. 노태우 대통령에게는 개인적으로 선거 비용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노태우 대통령은 벌금 2,300여 억 원 중에서 2,000억쯤은 내고 나머지는 못 내다가 얼마 전 완납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 청조근정훈장     © 성남일보

정무장관을 하면서 업무상 부득이하게 김영삼씨와 김대중씨도 만났지만, 왜 여당으로 갔느냐는 질책을 들은 기억은 없다. 오히려 두 분 모두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양김 단일화 운동을 하던 당시의 내 순수했던 마음을 그 분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마 나를 질책했다가는 “왜 형님들은 싸움박질을 해서 군인들이 다시 들어오게 만들었냐?”고 대들지 몰라서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무장관을 할 때에도 두 분과 사석에서는 형님, 동생 사이로 지냈다. 아랫사람들을 통해서 들어오는 민원도 가끔은 해결해주곤 했다. 도와줄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 도와주지 않았다가 나중에 야박하게 굴었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다.

 

정무장관 시절 취직 부탁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내가 부탁해서 취직된 사람들의 90%는 한두 달 가면 그만두었다. 경험도 없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을 장관이 부탁하니까 할 수 없이 받아들인 회사들은 취업 초기에 월급 100만원 미만의 경비직 같은 시원치 않은 자리를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관에게 부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구매과장 같은 요직을 원했다. 이런 기대 차이 때문에 결국 취업을 하고도 오래 버티질 못했던 것이다. 대부분 큰 자리를 바라는 풍토가 문제였다. 선거 때 조금 도와주고 대가를 기대하는 풍토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계속]

 

-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 손 전화 : 010 - 5261 - 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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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1/29 [15:06]  최종편집: ⓒ 성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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