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칼럼] 사전적 의미의 평화는 인간집단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뜻하며 전쟁의 상대 개념이었다. 따라서 인류는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전쟁을 계속해 왔다.
지금도 국가, 단체, 개인이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라는 이유를 내 걸고 서로 싸우고 있다. 심지어 사소한 만남 속에서 조차 자신이 주장하는 평화를 상대방에게 관철시키기 위해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어쩌면 평화는 그를 외치는 인간의 내면에서 조차 약자를 누르고 자신의 정신적, 물질적인 안위를 추구하는 개념으로 변질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앞을 다투어 평화를 주장하고, 또 평화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데도 아직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계 도처, 각기 다른 사회에서 깊어가는 갈등과 분쟁으로 인해 평화를 향한 인류의 소망을 점점 더 어려운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의 탄생으로 이미 평화가 왔다고 말한다. (눅 2:14).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자체가 평화라고 했다. 인류가 그 분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평화를 얻게 되지 않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여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만이 인간이 미처 다 이룰 수 없고 줄 수 없는 평화의 지평을 여는 유일한 길임을 인류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을 이루시고 무질서와 파괴, 혼돈에서 승리하신 부활의 예수님이 홀연히 나타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Peace be with you.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하시니 (눅 24:36).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완성하고 성취한 축복이 바로 평화인 것이다.
십자가 처형이라는 피 흘림의 고통을 거치고 육신의 부활이라는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 우리 주님께서 이미 평화를 이루어 주신 것이다. 십자가의 피로 인류에게 평화를 실현시킨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회복하기 위해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하려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꾸준한 노력, 그들의 남모르는 눈물과 땀, 희생이 없이 인류에게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화평을 꿈꾸는 인류 앞에 유일한 희망은 바로 그들이 전하고 실천하는 복음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성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