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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바이디

이승영 / 새벽월드교회 담임목사 | 기사입력 2017/08/26 [21:48]

싸바이디

이승영 / 새벽월드교회 담임목사 | 입력 : 2017/08/26 [21:48]
▲ 이승영 목사.     ©성남일보

[화평칼럼] 제국주의의 강점, 식민지, 독립에 뒤이은 전쟁과 살육 그리고 가난. 경제개발정책. 매혹적인 자연과 독특한 문명을 지니고 있는 반도국’이라면 얼핏 한국의 현대사냐고 묻겠지만 실은 인도차이나다.

 

‘인도차이나’하면 1930년, 프랑스 치하의 사이공(현재의 호치민시)을 배경으로 하롱베이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함께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프랑스 여인, 카트린드 드뇌브와 황족 출신으로 프랑스 군 장교와 사랑에 빠지는 그녀의 양녀를 그린 프랑스 영화부터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19세기 후반 이후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다가 제 2차 세계대전 후 독립을 되찾은 세 나라, 즉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3개국이 바로 ‘인도차이나(Indochina)'다.

 

인도차이나는 인도와 중국의 중간에 있고 지형이 복잡해서 여러 민족이 섞여 살고 있는 곳으로 상호대립과 항쟁이 극심했던 곳이다. 19세기 초, 영국과 네덜란드 보다 뒤늦게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프랑스는 쇄국정책을 취하고 프랑스의 가톨릭 선교사를 탄압했다는 구실로 베트남을 침입, 비옥한 메콩 삼각주를 중심으로 영토권을 확보했고, 이어 캄보디아, 라오스까지 이른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을 형성했다.

특히, 라오스는 1954년 독립 이후에도 내전과 베트남 전쟁의 격랑에 휩싸였고, 그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화평을 구가했다고 말 할 수 있는 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일전에 전 교회적으로 라오스의 국민들을 위해 새 옷 2만 5천여 점을 포함, 4만 여점의 의류를 수집, 배로 실어냈는데 그 도착 일자에 맞춰 우리들의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 라오스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인천에서 하노이, 방콕을 거쳐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Vientiane)에 도착할 때까지 일반 단체 관광 여행객처럼 마냥 편안한 마음이었다면 거짓말이리라. 외무부 차관과 국가 육영사업재단 대표 등의 환영을 받을 터인데 불교국이자 사회주의 국가의 정부 관리들이 폐쇄적인 태도로 나오면 어쩌나.

 

상습적인 빈곤에 시달리고 있어 국민 식생활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는데, 거리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은 겨울인데 날씨는 또 얼마나 덥고 습할까 등등 조금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수도인 비엔티엔과 루앙프라방을 방문하면서 쾌적한 기후, 널찍하게 펼쳐진 벌판과 작은 산들, 무엇보다 라오스 사람들의 편안하고 느긋하고 여유 있는 표정, 그리고 웃음을 보는 순간, ‘아, 여기에 참으로 화평이 심겨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가난한 나라에 가면 볼 수 있는 ‘원 달러 플리즈’를 외치며 내미는 조막손들이 전혀 없는 점, 사회주의를 주장하면서도 북한처럼 1인 독재체재가 아니라 정부가 집단체제로 움직이는 점, 우리의 선물을 비굴함이나 아부하는 표정이 아니라 참으로 느긋하게 상황을 인정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점, 진심으로 교류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점, 그리고 저소득층은 고위층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관심을 보여주는 모습 등에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두 손을 합장하며 ‘싸바이디(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때의 그 선하디 선한 얼굴이었다.

 

최근 인도차이나는 정치, 경제, 사회적 변혁이 몰아치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아래 시장경제 체재로의 전환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화해의 성취가 아닐까. 하나님의 복음으로 인도차이나 반도를 감동시킬 때 이 곳에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고, 나아가서는 남한과 북한의 대사관이 함께 있는 라오스를 통해 남북 화평의 물꼬가 트일 수도 있겠고, 탈북자들의 문제도 보다 개선되는 쪽으로 전환될 수 도 있을 것이다.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는 것은 승려와 신자 사이에 행하는 인사법이니 불교식이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당신의 화평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뜻으로 두 손을 합장하고 ‘샬롬’하면 될 것 아닌가. 진정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이며 라오스를 비롯한 인도차이나와 세계를 향해, 그리고 우리 민족의 화평을 위하여 외치리라. ‘샬롬! 주님의 화평이 당신과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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