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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개인은 왜 대서사에 뛰어드나?
질문 던진 감동의 숲 한 자락
 
이건행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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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 <택시운전사>를 뒤늦게 보았다. '광주'를 다룬 영화는 '눈물 범벅' 일쑤여서 보는 걸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의 택시운전사라는 제 3자의 시각이 거리를 확보해 줄 것이라고 믿어 서현 메가박스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막상 보니 나의 이 믿음은 믿음에 지나지 않았다. 제 3자인 관찰자가 사건에 깊이 뛰어들어 상황이 예기치 않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택시 운전사는 왜 국외자에서 사건의 한 당사자로 참여한 것일까?

 

이 계기가 영화의 터닝포인트이자 스토리텔링 정점일 것이다. 택시 운전사 만섭(송강호)은 독일인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광주에 가서 살육현장을 목격한다. 그러나 서울에 두고온 어린딸이 눈에 밟혀 새벽에 홀로 광주를 빠져나온다. 인근 소도시에서 딸에게 줄 구두를 사고 국수로 배를 채운다. 이제 서울로 가면 그만이다. 택시를 몰고 소도시를 떠나는데 만섭은 별안간 고통스런 눈물을 흘린다. 운전대를 꽉 잡고. 만섭은 급기야 운전대를 꺾는다. 이 반전이 영화의 키포인트다.

 

만섭은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슴으로 알고 있다. 이 동일화는 관객들이 연민 혹은 공포로 이야기 구조 속에 참여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영화는 이 지점부터 관객들이 밀고 간다.

 

만섭은 가장으로서, 개인으로서의 삶 대신 무엇 때문에 죽어가는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했을까? 이 질문은 관객들이 무엇 때문에 만섭의 결단에 함께 한 것일까와 동의어가 된다. 허나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택시운전사>는 개인이 어떤 까닭에서 역사의 현장인 대서사의 일원으로 참여하는지 친절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다만, 우리는 개인의 자발적 참여만이 대서사를 완성한다는 걸 보았다. 개인의 참여는 숭고한 감동 그 자체라는 것도 가슴 아리게 느꼈다.

누군가 말했다. 철학이나 신념은 쉽게 변하지만 감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강상중선생의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참고) 대서사에 참여하는 동기는 이미 사람들 감성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겨울 촛불 시위가 오버랩되면서 어느덧 나도 만섭이 되어, 택시운전사가 되어 '광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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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12 [07:56]  최종편집: ⓒ 성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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