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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통렬한 집단적 자기반성?
"봄에 씨뿌리는 게 明淸보다 중요합니다"
대장장이 서날쇠 당시 백성 대변
 
이건행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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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의 소설을 영화화한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 포스터.   © 성남일보

[이건행 칼럼] 김훈의 소설을 영화화한 <남한산성>에서 인조(박해일)가 청나라 칸 홍타이지(태종)에게 세 번 절하면서 아홉 번 이마를 땅에 찧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는 실리와 명분이라는 뚜렷한 대립구도가 형성돼 있어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장면은 새로울 게 없다. 그런데 클로즈업되어 들어온 까닭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서사의 본질을 끄집어 내야 설명이 될 것 같다. 서정이 개인의 자기반성이라면 서사는 집단의 자기반성이다. 서정이 자기자신과 대화를 하는 반면 서사는 집단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철학이야기,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참조)

 

따라서 삼배구고두는 통렬한 '집단의 자기반성'이다. '인조굴욕'이 아니라 집단적 맹목에 대한 자기고백이다. 중심을 만들어 그 중심이 영원하리라고 굳게 믿은 당대 정치적, 인문적 미숙에 대한 자기비판이다. 그 이데올로기에 대한 총체적 자기부정이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47일만에 끌려나온 동기는 간단하다. 더이상 군사력으로 버틸 수 없어서였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다. 실리냐, 명분이냐를 놓고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의 치열한 논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영화는 다른 복선을 깔아서 우리의 시선을 확장시킨다. 대장장이 서날쇠(고수)의 등장이다. 그는 역사적 인물이지만 사료나 원작보다 비중이 크다. 그가 김상헌에게 한 말은 사실여부를 떠나 당시 백성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명나라나 청나라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봄이 오면 씨를 뿌리고 가을이면 거두면 됩니다."

 

민심은 언제나 간단명료하다. 이런 민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시 지배세력은 중화사상에 빠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고조차 하지 않고 오로지 쇠락해가는 명나라 섬기기에 바빴다. 명과 청 사이에서 줄다리기 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을 가차없이 폐위시키고 인조를 내세운 것도 그들, 이데올로기에 눈먼 사대부들(서인과 남인) 아니었던가?

 

인조의 삼배구고두는 청 칸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민심에 대한 반성이다. 당시 조선 지배세력의 집단적 자기반성이다. 명분론자 김상헌의 자조섞인 말은 이에 대한 방증일 것이다.

▲ 남한산성 대장장이 서날쇠로 분한 고수. 서날쇠는 본명이 서흔남으로 실제 인물이다. 실제 서흔남은 인조의 격서를 산성을 어렵게 빠져나와 지방에 전달했다. 영화와 달리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있었다. 그의 묘비 2기가  남한산성 지수당 인근 화단에 서 있다. 그중 1기는 파손된 상태다.     © 성남일보

"새로운 삶의 길이란, 낡은 것들이 모두 사라져야 비로소 열리는 것이오. 그대도, 나도, 그리고 우리가 세운 임금까지도 말이오. 그것이 이 성 안에서 내가 깨달은 것이오."

 

그렇다면 김상헌의 말을 지금 여기, 한반도로 불러들인다면 사라져야할 맹목은 무엇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간단명료한 사실 앞에서 자꾸만 복잡하게 만드는 낡은 것들이 떠올라 심사가 뒤틀렸다면 이 영화는 잘 만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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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09 [17:15]  최종편집: ⓒ 성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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