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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부딪혀 시가 빛날 때
양호의 시세계
 
이건행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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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중견시인 양호의 시선집 <시간의 발자국따라>가 최근 출간됐다. 본 글은 이 시선집 해설로 씌어진 것이다. 두 분의 양해를 얻어 본지에 옮겨 싣는다. 한편 양호 시인의 시선집 출판기념회는 10월 18일 오후 1시부터 분당티카페에서 열린다. <편집자>

 

▲ 시간의 발자국 따라 표지.     ©성남일보

1. 정신 궁핍시대에 '처마 끝 풍경소리'  같은 시

 

휠더린의 '궁핍한 시대'는 물질 궁핍 시대가 아니라 정신 궁핍 시대다. 이런 정신 궁핍 시대에 시란 무엇인가? 정신 긍핍의 시대에 서정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정신 궁핍 시대는 사건의 시대다. 사건은 의미를 낳으면서 동시에 숱한 이야기를 빚는다. 서사구조적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가 맹위를 떨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서사시는 아니더라도 서사적 형태의 시, 이야기시가 형식을 파괴하면서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도 정형적 형태를 유지하면서 짧게 쓴 서정시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처마 끝 풍경소리  

  보름달에 걸리고

 

  마음은 시나브로  

  상념에 얽매이고

 

  언제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될까나

 

     - <산사>

 

이 시는 전통 시가인 시조풍이다. 정형시율에 담은 정서도 고즈넉하다. '풍경소리'나 '보름달', '시나브로', '상념'  등은 거기에 잘 어울리는 시어들이다.

 

정제된 시율에 절제된 정서가 한데 어우러져 마치 한폭의 동양화같다. 이 동양화에 비구상을 대비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동양화로 감상하고 즐기면 그만이다.

 

이처럼 양호 시인의 시 특징은 시의 알곡인 이미지나 메타포, 상징 등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거추장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오히려 서정의 시적 상상력을 방해하는 요소일 수도 있다.

 

   맴돌던 추억들은   

   파도소리 뒤로하고

 

   오롯이 피워내는   

   청자빛 맑은 향기

 

   시간의 발자국따라   

   밀려오는 그리움

 

      - <겨울 바다>

 

이 시도 마찬가지로 정형시율에 의존하고 있다. 정서도 정적이다. 시간(추억이라는 과거)을 '청자빛 맑은 향기'로 보고 모든 지난 시간을 '그리움'으로 말하는 것은 과거지향적 정적 세계다. 과거는 꿈틀거리는 것이 아니다. 정지돼 있는 세계인 것이다.

 

정형시율에 담는 정적 세계는 서정시의 한 방식일 터이다.  무리하게 시적 장치를 삽입하면 오히려 한폭의 동양화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 감상이 놓치는 게 있다. 바로 '시간'이다. 정적 세계를 흩뜨려놓는 시간을 간과하면 시인의 시세계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2. '시간'의 세계

 

  구름은  

  시간에 묶여있는 나를  

  자꾸만  

  시간 밖으로 밀어낸다

 

       - <겨울 바람> 부분

 

이 아름다운 싯구는 그러나 잔혹하다. '시간에 묶여있는'  것이나 '시간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두려움인 까닭이다. 시간에 속박해 있는 시적 화자의 고통이 끔찍하게 다가온다.

 

양호 시인의 시세계에서 시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의 전시를 관통하는 시어 중 으뜸은 단연 시간이다.

 

   슬픔은   

   꼬리를 물고   

   기억 저편에서 피어난다

 

   붉은 피는  

   하앟게 탈색되어  

   바람에 흩어지고

 

   떨어진 시간은  

   몸 안 가득 차올라  

   살포시 그리움 연다

 

      - <목련>

 

목련(꽃)의 생애를 시간으로 형상화한 이 시는 시선의 확장을 꾀한다. 여기서 목련꽃은 정적인 대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물은 고여있지 않고 움직인다.

 

'기억 저편'이라는 슬픈 과거와 그리움 여는 '(꽃이) 떨어진 시간'은 댓구를 이룬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 시간은 꽃의 생애다. 생애는 역동적이기에 아름답다.

 

  우리는 누군가의  

  여백이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나는  

  무드셀라 증후군에 젖어  

  빈 그루터기처럼  

  추억을 따라 흘러간다

 

      - <여백>

 

시간은 '무드셀라 증후군'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지난 시간을 아름다움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금 시간을 견디게 하는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은 두려움이나 분노로 나타나기도 한다. <무제2>와 <무제3> 같은 시가 대표적이다.

 

  난 이 이십오시에서 뛰쳐나가고 싶다  

  하나뿐인 영혼을 팔아서라도  

  내일을 보고싶다  

  잠시라도  

  내일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다

 

      - <무제2> 부분

 

   시계 초침처럼   

   똑각이며 길이 스쳐 지나간다   

   지나는 길은 불길이 되어   

   공포를 심고   

   사람들은 삿대질하며 협박을 하고   

   온통 하나가 되어

 

   소리 지르고프다        

 

   우리도 진작 포기하고   

   모두가 포기한 시간이다

   꿈은 멀리 사라져

 

       - <무제3>

 

시간의 본래 모습은 무엇일까? <무제2>에서 시인은 '이십오시에서 뛰쳐나가고 싶다'. '이십오시'는 본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아니라 인위적 시간이다. 인위적 시간에 대한 분노는 자연스럽게 무위적 시간, 있는 그대로의 시간에 대한 염원으로 나타난다. '하나뿐인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러나 이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무제3>은 그 절망의 자기고백이다. 현실은 '불길'이자 '공포', '삿대질', '협박' 등으로 각인된다. 현실은 살만한 곳이 못된다. 이런 현실에서의 시간은 무의미하다. 시인은 절규한다. (그 소중한 시간을) 모두 포기했다고.

 

3. '시간'으로 만든 집에서

 

   누구나   

   세월을 사는 한 사람의 나그네인 것을 아는지   

   보이지 않는 눈빛을 나누며   

   마음이 담긴 길로 간다   

   뒤늦게 따라온 하늘은   

   하루의 시장을 붉새로 말한다

 

       - <새벽 시장>  부분

 

'누구나 / 세월을 사는 한 사람의 나그네'.  이 시에서 시간은 비로소 자기정체를 확연하게 드러낸다.

 

현대물리학에 따르면 시간은 상대적 개념이자 주관적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광활한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시간의 제한 속에서 살아간다. 시간은 우리를 규정하는 절대다. 동시에 여지가 전혀 없는 한계다.

 

원시인간은 이 시간 앞에서 인문적 감수성을 획득했다. 같은 인간의 시간으로 인한 죽음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인간이 고안해낸 것은 제의(祭儀)였다. 이 제의에서 시가 나왔다.

▲ 양호 시인.     ©성남일보

제의에는 서사(이야기)와 서정(노래, 시), 몸짓(연극) 등이 뒤섞여있었다. 중요한 건 시가 숱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지속적으로 창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많은 영감을 준다. 여전히 인간은 시간이라는 벽 앞에서 양호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무제7>  참조)

 

양호 시인의 시에 있어서 주된 모티브가 시간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간은 절벽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집인 것이다. 존재의 집!  <새벽 시장>은 시간의 집을 인정하고 서로 '보이지 않는 눈빛을 나누며 / 마음이 담긴 길로'가면 희망('붉새')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공간 속에서>와 <골안개>, <바다>, <아버지> 등 많은 시편에서 시간으로 만든 집을 노래하고 있다. 시간은 '꿈 한자락'과'눈물'이 공존(<골안개>)하기도 하고 인간 존재의 원인(<남강>, <바다>)이기도 하다.

 

  남아 있는 것보다  

  잃어버린 것이 더 생각 날 때면  

  방황하는 혼은  

  쪽빛 남강에 뛰어든다

 

  남강은  

  쪽빛 꽃잎되어  

  각기 다른 모양새로 속도로  

  나의 영혼을 청명하게 한다

 

  그래서  

  남강에서 만난 사람들은   더 따뜻하다

 

     - <남강>

 

시간('속도')은 '나의 영혼을 청명하게 한다'. 시간을 긍정의 차원이 아닌 존재의 원인이자 존재의 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4. 시간과 부딪혀 시가 빛날 때

 

<채석강>은 시간과 시가 만날 때 무엇을 낳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시다. 전문을 인용한다.

 

   집착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한 권 한 권 포개놓은 책들이   

  세월의 무게에 못이겨   

   땅 끝까지 내려와 있다

 

   임자없는 책들은   

  겨울 바다의 바람에   

  한 권 한 권 빨려 들어가 버리고

 

   한 시대는 알 수 없는 미래로부터 달려오는   

   낯선 사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바람 속에 들어가    애꿏은 책장만 자꾸 넘기고 넘긴다

 

이 시에서 연상케하는 것은 시간의 부질없음 혹은 허무다. 그러나 시간('시대')은 책장을 넘기는 현실이다. 이 양자 사이에서 시가 빛난다. 시간의 미학이 완성되는 것이다.

 

시간이 부질없든, 허무하든 그것은 일상을 메우는 구체적 현실일 터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간을 시간으로 인식한다. 동시에 시간을 시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시간의 씁쓸함, 아름다움, 절망, 희망, 사랑 등 모든 것을 한꺼번에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시는 어떤 완벽이 아니다. 어떤 완벽의 조짐에 관여하는 것이다. 혹은 시는 어떤 절망이 아니다. 어떤 절망의 조짐에 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채석강>의 시간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의 어떤 조짐들에 관한 파편이다. 우리는 이 파편을 통해 무수한 상상을 하게된다. 이는 시가 주는 축복이 아닐까?

 

<아버지>도 <채석강>  못지 않게 주목해야 할 시다. 시간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괄목할만한 시적 성취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고달픔의 시간을  

  탁배기 한 잔의 얼큰함에 풀어놓고    

 

  허리춤에 매달려 흔들리는  

  자반고등어 한 쌍에게

 

  바다로 가라고  

  바다로 가라고    

 

  마누라 보기 전에  

  바다로 가라고

  심줄 돋우며 별빛 쏟아지는  

  허공에 대고 고함을 친다

 

이 시에서 '고달픔의 시간'은 '바다'와 대비된다. 바다는 이 시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상징이다. 상징은 그 자체로 무언가를 암시하기 때문에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 서가에 꽂힌 양호 시인의 '시간의 발자국 따라'

분명한 건 '고달픔의 시간'이 '바다'에 이르러야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시적 화자가 '바다로 가라고' 세 번이나 부르짖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 바다로 가는 게 현실도피든 귀향이든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팽팽한 시적 긴장 속에서 제 나름의 상상력을 펼치면 그만인 까닭이다.

 

시간과 만날 때 시는 이렇듯 헤아릴 수 없는 영감을 준다. 시가 빛나기 때문이다.

 

5. 안녕, 서정시!

 

양호 시인의 시는 정형시율에 기반한 서정적 세계에 있지만 시간이라는 강력한 모티브가 그 정적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한 틀로 묶을 수 없다. 이것이 양호 시인의 시에 있어서 자기정체성이다.

 

그의 시세계는 어디를 향해 갈까?

 

  온몸에서 퍼지는 땀 내음을 좋아한다  

  그 내음 속에서 살아있는 내일을 볼 수 있어 좋다

 

     - <땅위에 사는 천사> 부분

 

이 시에 그 향방을 점칠 수 있는 단서가 있지 않을까? 이른바 일상이라는 '세간'(강상중선생의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참조)에서 부대끼며 시간의 미학을 더욱 담금질하지 않을까?

 

서정시거나 아니거나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리하여 지난날의 서정시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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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12 [15:06]  최종편집: ⓒ 성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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