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이어령 작가는 『문학사상』(文學思想) 주간 시절 모리아크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40여 년 전의 인터뷰다. 모리아크를 생소한 소설가로 생각할 수 있지만 195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현대생활의 추악함을 조명한 프랑스 카톨릭 작가들의 계열에 속한다.
고향인 보르도에 단조로운 생활에 숨이 막혔다. 모리아크는 숨 막히는 답답한 생활을 가슴에 묻고 살지 못했다. 가죽 가방하나 들고 독일과 영국 이탈리아를 여행하게 된다. 모든 작가들이 그렇듯 모름지기 자연과, 경험하지 못한 환경에서 희망을 가슴에 담고 눈으로 침잠(沈潛)의 시간을 갖는다.
이야기가 성급히 옆길로 간 것 갔다. 우선 이어령 작가의 탐방 인터뷰 이야길 다시 전한다. 해박하기 이르데 없는 이어령은 모리아크에 대한 성향을 모를 리가 없다. 모리아크는 당시 드골과 둘도 없는 친구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모리아크의 ‘사슬에 묶인 아이‘(1913년) ’백의‘(1914년)작품도 읽었다.
’사랑의 사막‘에서 주인공 여자가 숨 막힐 것 같은 생활에서 탈출하기 위해 남편을 살해하려 했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시대의 산물이라는 말이 있다. 모리아크는 스스로에 대한 환경의 반발이 <테레즈 데케루>를 통하여 묘사하고 있다는 것도 이어령은 눈치를 채게 된다. 이어령 작가는 인터뷰에서 작가의 절친인 드골의 정치적 역량을 묻는다.
드골은 군인출신으로 대통령에 오른 특출한 지도자다. 그는 집권 후 그의 인생을 걸고 전후 유럽을 재건하고자한다. 특히 프랑스 역사상 누렸던 영광과 위대성을 다시 찾는 동시에 파괴된 유럽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프랑스가 제1의 서열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그는 전후에 유럽의 상황을 고려 할 때 기본적으로 ‘함께 뭉친 유럽’또는 ‘단결한 유럽’을 구상하고 미국은 유럽으로부터 배제하고 러시아는 유럽의 일원으로 파악했다. 그런데 모리아크로부터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반응을 듣게 된다.
이어령 작가는 “그렇다면 드골을 지지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모리아크는 “드골은 나의 친구다. 그의 정책은 비판하지만 투표에서 그에게 표를 준다”고 대답했다. 이어령은 역시 거인 작가의 면모를 느낀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제2차 대전 때는 레지스탕스 작가들과 일을 함께 일을 했고 전쟁이 끝나자 정치토론에 더 깊숙이 참여한다. 그리고 친구 드골의 정책에 동의하며 그를 정책적인 면에서 지지한다. 그리고 1962년에는 『드골 De Gaulle』이라는 책을 내기도 한다. 모리아크의 명성은 서서히 퍼져 나갔고 한국의 이어령 작가가 문학사상 전성기에 화보와 함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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