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스피노자라는 사람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했다. 만약 그가 다시 태어난다면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국의 가을 덕수궁 길을 여행 하겠다”는 말을 남길 것이다.
스피노자는 철학자다. 사람들은 아리스토델레스나 소크라테스를 철학자로 더 많이 생각 하겠지만 스프노자(네덜란드1632~1677)의 철학은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현대 철학자의 혜성 들뢰즈(프랑스1925~1995)가 ‘그리스도‘라는 헌사를 바쳤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덕수궁돌담길을 걸으면 실패할 연애라는 저주가 있다. 사실이 그러한 연애 객이 많다는 통설이다. 연애의 거리는 사람이 흥청대는 홍대의 광장이나 압구정거리가 맞다. 덕수궁돌담길은 인간이 열등한 망상에서 벗어나 이성을 통해 세상을 볼 것을 요구하는 길이다.
돌담의 하나하나에는 한국 최초로 커피를 마셨다는 고종의 커피향이 피어난다.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俄館播遷)의 처절의 시간이 쌓여있다.
지금은 어느 계곡에 누워 지네는 화가가 평생을 덕수궁 돌담길 아래서 그림을 그리다가 생을 마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길이 인생의 변곡점이 된다. 결국 인생은 어떤 내세로 가기위한 과정에 불과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다보니 사람이 걷는 거리는 저를 움직이는 희망이 아니라 평안에 대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삼성 고 이병철 회장을 재벌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사실이 그렇다. 그 이병철 회장이 덕수궁 돌담길에서 오늘의 삼성을 구상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병철 회장은 1910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부유한 막내로 태어났다. 이병철은 서울에 상경하여 덕수궁 길을 걷는다. 그리고는 일본의 유학길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일본의 앞선 전자산업과 경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심장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유학과 동시에 틈만 나면 도쿄주변의 공장에 견학을 한다. 이병철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다시 덕수궁 길을 걷는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사업 구상을 말씀 드린다. 아버지는 말없이 300석의 재산을 큰형과 나누어 준다.
이병철은 덕수궁을 중심으로 사옥을 만들고 사업을 결심한다. 지금의 삼성 본사나 중앙일보, 당시 동양방송은 모두가 덕수궁에서 멀지 않다는데 흥미롭다.
다시 오늘의 현시점에서 보면 손자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의 승계를 두고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과 밀실협의를 하였다는 뇌물죄를 받고 있다. 범죄의 내용은 달라도 정권의 최 정점과 결탁하였다는 사실은 너무나 흡사하다. 이런 걸 두고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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