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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뜻하지 않는 역사를 만들었다

최창일 / 시인 · 한국문인협회 대변인 | 기사입력 2018/01/06 [14:10]

여행은 뜻하지 않는 역사를 만들었다

최창일 / 시인 · 한국문인협회 대변인 | 입력 : 2018/01/06 [14:10]
▲ 최창일 교수.     ©성남일보

[최창일 칼럼] 우장춘 박사하면 씨 없는 수박이 떠오른다.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는 급진 개화파 장교, 우범선이다. 1985년 을미사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조선인 협력자다.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할 당시 우범선은 왕실을 지키는 경호 실장에 해당하는 직책의 자리에 있었다.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시간, 우범은 광화문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치명적인 우를 범하고 만 것이다. 우범선은 친일 배신자라는 낙인이 되어 조국에 살수가 없게 되었다.

 

일본인의 협조로 일본 여행길에 올랐다. 말이 여행이지 원치 않는 여행길이었다. 역사는 마음에도 없는 여행을 만들기도 한다. 우범선은 일본 여자, ‘사카이 나카’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이 우장춘이다. 우장춘이 다섯 살 때 대한제국이 보낸 자객에 의해 그의 아버지 우범선은 살해되었다.

 

이때부터 우장춘의 가족은 떠돌이신세가 되었다. 조선에서는 배신자, 역적의 가족, 일본에선 이용가치가 없는 쓰레기, 튀기 가족으로 전락했다. 과부가 된 우장춘의 어머니는 극심한 경제적 빈곤에 시달려 우장춘을 고아원에 맡겨야 했다. 그는 고아원에서 무지막지한 이지메에 시달리며 지냈다. 그러한 와중에도 우장춘은 ‘기어코 훌륭한 사람이 돼서 너희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장춘의 어머니는 자식을 고아원에 버려두지 않았다. 돈을 벌어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자 아들을 집으로 데려와서 대학까지 보냈다. 그냥 대학이 아닌 명문 동경제국대학이었다. 동경제국대학 농학과를 졸업한 우장춘, 일본 농림성에 취업해 혁혁한 업적을 쌓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일본은 우장춘을 자유롭게 두지 않았다. 한국이름을 일본이름으로 바꾸지 않는다고 해임을 당한다. 우장춘은 지방의 농장에 재취업, 연구 활동에 몰두하며 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그런 와중에 한국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다. 대한민국은 1947년 농업근대화를 위해 일본에서 이름을 날리던 실력자 우장춘을 ‘같은 민족’ 이라는 명목으로 영입하고자 했다.

 

한국은 ‘한국농업 과학연구소’만들어 놓고 소장 자리를 우장춘에게 맡겼다. 우장춘은 감격해 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1백만엔의 돈으로 한국에 심을 종자를 사들고 귀국했다. 6.25 전쟁이 나던 1950년에 그는 부산에서 군복무까지 한다. 당시 높으신 양반들은 군을 가지 않는 현실이었다. 우장춘은 아버지 우범선의 잘못을 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도 여겼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군복무를 마친 뒤에 쑥대밭이나 다름없는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한다. 말이 소장이지 연구소라기엔 너무나 열악한 상황이었다. 전후의 한국이니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우장춘은 농업의 발전을 통해 전쟁으로 파괴된 대한민국을 일으키는데 일조하겠다는 다짐으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여 연구에 매진했다. 식량조차 자급자족이 되는 않는 것이 조국의 현실이었다. 우장춘은 가장 먼저 우량종자 개발에 주력하였다. 배추, 무, 고추, 오이, 양배추, 양파, 토마토, 수박, 참외 등에 걸쳐 20여종 품목에서 우량종자를 확보한다. 이로서 대한민국은 현대농업기술이 시작 됐고 기아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었다. 뿐만이 아니다. 우장춘이 손을 댄 우량종자들은 외국 것을 능가하는 엄청난 양질의 품종이었다.

 

우리가 요즘 먹고 있는 제주 감귤도 우장춘이 만든 당도 좋은 역작이다. 감자도 예외가 아니다. 감자가 바이러스에 취약하여 한번 창궐하면 전멸하곤 했다. 그 때마다 강원도 도민은 굶어 죽어갔다. 종자를 변형시켜 면역을 가진 강력한 작물로 탈바꿈 시켰다.

 

역사의 기로에서 우범선의 여행은 한국의 농촌을 탈바꿈한 우장춘이란 농학자를 만들었다. 여행은 뜻하지 않는 역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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