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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의 마음을 훔친 청순미 화신의 여행
 
최창일 / 시인 · 한국문인협회 대변인
▲ 최창일 교수.     ©성남일보

[최창일 칼럼] 멋진 연인을 가슴에 넣고 사는 것은 멋일까 아니면 윤리적이지 못할까? C시인이 존경하는 ‘인연’으로 널리 알려진 피천득(1910~2007) 수필가의 서재에는 세계의 마음을 훔친 청순미 화신, 잉그리드 버그만의 사진이 놓여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출연한 화보집과 관련 책들도 눈에 뛴다.

 

생전에 피천득은 버그만을 무척 사랑한다는 고백의 인터뷰는 인상적이었다.


피천득의 문학을 사랑하는 제자들은 많다. 심명호 서울대 교수는 “인간적인 깨끗한 심성의 교수님”으로 기억한다. 문학평론가이며 서울 시립대 권오만 교수는 “수필처럼 짧고 빼어난 작품을 남겼다”고 회상한다. 서울대 석경징 교수는 “낭만주의 시와 스피노자를 좋아했고 군더더기 없는 글을 썼다”고 평가한다.
모두가 피천득의 문학세계를 말했다. 내면의 인간적인 모습을 평가하는 제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피천득 교수가 잉그리드 버그만을 좋아하는 것이 알려진 것은 그의 서재에서 인터뷰한 장면을 보면 알게 된다. 서재의 중앙에 웃음을 머금은 버그만 사진이 놓여 있다.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서재의 보기 좋은 장소에 놓여 있다. 사람의 심리란 좋아하는 사진은 눈높이에 손으로 만지기 좋은 위치에 놓여진다. 그리고 벽에 부착을 하지 않는다. 교육 심리학을 전공한 어느 시인의 해석이다. 피천득이 좋아한 버그만을 잠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 배우 잉그리 버그만(1915~1982)은 세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사진작가 아버지 사랑 속에 컸다. 12살에 아버지마저 잃었다. 스웨덴 왕립드라마 학교에 입학하여 영화배우로 데뷔한다. 그는 인구가 적은 북유럽의 한계를 넘는 방법에 고민을 주저 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고국인 독일로 여행길에 오른다.
베를린에서 찍은 ‘인터메조’(1936)가 주목을 받자 치과의사 남편과 할리우드로 여행을 떠난다.


19, 20세기는 북유럽인들은 더 낳은 삶을 찾아 북미 5대호 연안(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있는 다섯 개의 큰 호수)으로 대거 이주했다.


할리우드 여행에서 버그만은 영어 공부에 매진한다. 푸른 눈의 금발의 미녀는 ‘카사블랑카’(1942년),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3년)에서 열연 세계인의 마음을 훔쳤다. 피천득 교수는 미국의 여행길에 버그만이 출연한 영화에 마음을 뺏긴다. 귀국길에 잉그리드의 브로드 마이드를 구입하여 표구, 서재에 놓게 된 것이다.


지적이며 일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던 그는 승승장구 했지만 거대한 공장처럼 돌아가는 할리우드에 지쳐 갔다. 극 사실주의 영화 ‘무방비도시’에 반한 그는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로셀르니 감독에게 영화를 찍고 싶다는 편지를 쓴다. 그는 지친 마음을 이탈리아 여행과 할리우드를 떠나 영화를 찍고 싶었다.

 

‘스트롬볼리’(1950년)를 촬영 했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강한 이탈리아에서 그는 고전 했다. 현지 어부를 섭외해 즉흥적으로 영화를 찍는 로셀리니의 연출 방식도 버거웠다. 각자 가정이 있었던 두 사람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 비난이 쏟아졌다. 미국의 상원은 버그만의 입국 거부 조치를 취하게 된다. 당시 미국은 청교도적 기독교 정신이 강하여 버그만의 태도에 비난은 크고 높았다.


버그만의 이탈리아 여행은 모두 흥행에 실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얼마 후 미국에 도착한 그에게 변함없이 우정을 지켜준 사람은 케리 그랜드 단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피천득의 순수한 마음까지 훔쳐간 버그만의 한 순간 실수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할리우드로 돌아와 20세게 폭스사와 영국 여행길에 올라 ‘아나스타시아’에 출연, 아카데미 여우상을 다시 수상하게 된다. ‘엘리나와 버그만의 남자‘(1956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1961년), ‘선인장 꽃’(1969년),등 영화에 출연하지만 점차 출연작을 줄여 나간다.

 

1973년 칸 영화제 위원장을 역임한 후 버그만은 ‘오리엔트 살인사건’(1974년)에 출연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다. 이로써 캐서린 헵번의 뒤를 이어 최다 수상기록이며 잭 니콜슨과 같은 기록이다. 1978년 스웨덴으로 돌아와 잉마르 베리만과 ‘가을 소나타’를 찍는다. 1979년에 버그만은 이스라엘 전 총리 골다메이어를 다룬 TV드라마 ‘골다라는 이름의 여자’에서 골다역을 맡게 된다. 이스라엘을 여행, 골다의 행로를 보며 인생의 많은 회환도 한다.

 

그녀는 1982년 8월29일에 67번째 생일날 유방암으로 사망하여 ‘골다라는 이름의 여자’는 버그만의 유작이 되며 여행을 멈추게 한다. 그의 무덤에는 ‘생애 마지막 까지 연기를 했다’라고 씌어져 있다. 미국의 영화 연구소는 버그만을 위대한 여자배우 주 4위로 선정했다.


스웨덴, 독일, 미국 할리우드, 이탈리아, 영국, 이스라엘의 여행은 버그만의 연기를 만들었다. 세계인의 마음을 훔친 청순미 화신 버그만의 여행은 지상에서 가장 슬픈 영화를 남겼다.


버그만은, ‘절대 고독자여 여행을 떠나라’라는 말을 남기고 하늘 호수로 여행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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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17 [10:34]  최종편집: ⓒ 성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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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세상에 미친 년넘들이 설쳐대는 꼴이
지금 이재명 부부 경찰조사 받고 있어요.
장군감이네요. 강단이 보입니다. 경영진들
여자도 버린 @이 개버리구 간건 당연한일
우리집 개는 잘 신경쓰고 있어. 쟤는 대놓
성남일보는 이재명 신문이냐?
니들 집 개나 신경써라. 할짓거리 없으니
담당팀장는 알바 시켜서 댓글 달지 마세요
참, 너무한다. "낙지네" 옷깃만 스쳐도
사람이든, 동물이든, 몹쓸 존재 곁에 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