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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비밀을 찾아가는 씨앗 여행

최창일 칼럼 / 시인 · 한국문인협회 대변인 | 기사입력 2018/10/08 [08:26]

생명의 비밀을 찾아가는 씨앗 여행

최창일 칼럼 / 시인 · 한국문인협회 대변인 | 입력 : 2018/10/08 [08:26]
▲ 최창일 교수.     ©성남일보

[최창일 칼럼] ‘사과 한가운데 숨은 씨앗은 보이지 않는 과수원이다.’라는 영국의 웨일즈 속담이 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환경보호론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씨앗의 세계에 큰 감명을 받고 영감을 얻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씨앗을 매우 사랑한다. 씨앗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이 책도 한때는 씨앗, 정확하게 여러 개의 씨앗이었다. 종이는 북부 침엽수림의 목재 펄프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나무들은 뿌려진 씨앗에서 자라났다.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보는 난초의 씨앗은 먼지처럼 가볍고 연약하기 때문에 그 새싹들은 자신들의 생애 처음 몇 년을 곰팡이에 기생해서 살아가야 한다.

 

반대로 20킬로그램에 달하는 씨앗도 있다. 쌍둥이 코코넛이라 불리는 그 야자의 조상은 셰이셀 군도라는 작은 섬들에 떠밀려온 조난자들이기도 한다. 이들은 인도 대륙의 지질적인 이동 중에 땅에서 일어난 진화가 가장 큰 씨앗을 만들어 냈다.

 

동물은 움직인다는 동(動)을 쓴다. 식물은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움직일 수 없다고 단정을 지어 버린다. 그러나 식물도 엄연히 여행을 한다.

 

꽃을 연구하는 방식의 성북동박물관에 들어서면 재미있는 그림 아닌 조형물이 있다. 그림이 아니라는 것은 살아 있는 박주가리의 씨앗이 바람에 날리는 모형을 벽에 붙여 놓았다. 박주가리 씨앗은 민들레처럼 가볍게 날아가는 특성을 가졌다.

 

한강에 가면 박주가리의 씨앗을 대하게 된다. 방식 회장은 박주가리를 우연하게 목포의 갓바위에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한강변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방회장은 박주가리의 여행하는 모습이 너무나 기특하고 놀라운 여행기술에 탐 복, 씨앗의 날리는 모습을 벽에 설치하였다.

 

씨앗은 생명의 거울이 숨어 있다. 이것은 자연의 기원이며 문학과 상상력의 소재가 된다. 씨앗들의 기록과 장엄한 서사시를 쓰는 가을 산에는 삼홍(三紅)이 있다. 산이 붉어 산홍(山紅) , 물이 붉어 수홍(水紅), 그 물에 비친 낯빛이 붉어 인홍(人紅)이다. 이 멋진 광경은 여행을 하는 바람들이 만든 경이로움이다. 휴대폰 하나면 여행하는 식물의 멋진 가을 단풍의 모습을 사람의 모습과 같이 담을 수 있는 가을이 왔다.

 

언제 어디서 붙었는지 모를 작은 씨앗들이 바지 아랫단에 붙었던 기억, 작은 씨앗임에도 생각보다 잘 떼어지지 않던 기억을 가을 산행을 했던 이들은 한두 번 경험했을 거다. 우리에게 조금 성가신 이런 경험이 식물에겐 무척 중요하다. 멀리멀리 후손을 퍼드려야 하는 것이 식물에겐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꼬마리나 도깨비바늘, 진득찰 등의 씨앗은 옷이든 털이든 가리지 않고 지나가는 이에게 일단 들러붙는다. 그리고 정해진 행선지 없이 마냥 붙어 여행을 다닌다. 가다가 어느 결에 떨어져버리기도 한다. 멧돼지 같은 동물이 나무줄기에 대고 비벼대는 통에 떨어지기도 한다. 바로 이게 식물의 여행이다. 씨앗이 옷에 붙은 걸 바로 알아차리긴 어렵다. 그 가벼운 무게는 느끼기 어렵고, 주로 들러붙는 씨앗들은 숲 바닥 쪽에 사는 식물일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걸어가는 동물의 몸에 그야말로 무임승차하기 쉽다. 비로소 발견한 씨앗을 떼어 주변에 휙 던짐으로써 씨앗의 무임승차 여행은 종지부를 찍는다. 아니다. 그곳에서 다시 다른 동물들의 털옷에 묻어 또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아니면 그곳에 사람의 동물의 발에 밟히며 자연스레 땅속으로 들어가 따스한 봄을 기다릴 수도 있겠다.

 

역사여행의 경우도 있다. 1982년 일본의 고대 거주지 발굴에서 2천 년 전의 목련 씨앗이 싹을 튀어내 언론의 이목을 장식한 경우도 있다. 현재 목련의 과거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학자들은 흥분한 소식을 전한적도 있다.

 

식물계의 잠자는 공주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아라홍연’이라는 애칭을 얻은 연꽃열매가 700년의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힘들게 발아를 성공 시킨 이 연꽃은 고려시대의 씨앗으로 밝혀졌다. 이렇듯 식물도 필요하면 여행을 즐긴다. 그 것은 어디든, 얼마나 멀든,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하든 말든 다만 우리가 몰라서 그럴 뿐이다.

 

중국의 철학자 노자가 기원전 6세기에 이렇게 말했다. “씨앗속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이, 그가 바로 천재일 것이다.“ 노자는 여행을 통하여 씨앗의 여행을 알았고, 노자철학을 집대성 하는데 이르렀다.

 

지금 돋보기로 보아도 보이지 않는 식물들의 씨앗여행은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지구를 넘나들고 있다.

 

생명의 비밀을 찾아가는 씨앗의 여행은 비행기를 통한 인간 여행이 애잔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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