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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일보 창간 19주년으로 보는 언론의 역할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19/05/27 [18:55]

성남일보 창간 19주년으로 보는 언론의 역할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19/05/27 [18:55]
▲ 최창일 교수.     ©성남일보

[최창일 칼럼] 불확실성의 시대! 어떤 관점으로 살아낼 것인가. 그렇다면 불확실성 시대는 누가 만든 것인가. 물론 불확실성의 시대를 만드는 요인들은 하나의 관점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불확실성 시대를 만드는 것들은 무수한 요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언론’과 ‘정치’의 두 집단이 불확실성 시대를 이끈다는 분석들도 나온다. 무릇 서있는 위치에 따라 세상은 달리 보인다. 어떤 태도로 사느냐에 따라 그 사회와 시민들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2002월드컵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2년 월드컵경기는 한국인 모두가 하나로 뭉치는 특별한 시간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즈음 신문과 방송은 오로지 월드컵에 관한 기사가 전부였다. 방송은 한국의 다음 경기를 치루는 시간까지 재방, 재방송을 거듭 거듭하였다. 24시간 풀가동 하였다.

 

국민은 모두가 월드컵이라는 주제로 하나로 뭉쳤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국민이 이렇게 하나가 된 것은 월드컵 축구경기를 빼고는 찾기 힘들 것이다. 

 

직설화법으로 스포츠에 관심이 없던 지긋한 할머니도 개별 선수에 관한 해설을 막힘없이 해댔다. 그것은 방송이 만든 착시 현상일 수도 있다. 내가 오래전부터 축구기술을 알고 있다는 자가당착으로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같은 상황은 불확실성 시대와는 상관은 없다. 다만 방송시청을 통한 착시 현상을 만든다는 논리다.

 

다시 한걸음 더 들어가 본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대한민국에는 종편이라는 방송이 시작되었다. 종편은 공중파의 방송과는 상이한 편성과 제작방향을 보인다. 그날의 현안을 4,5명의 전문 패널이 출연, 팩트가 아닌 패널의 개인적 견해와 예단까지 서슴지 않는다. 가정(假定)과 견해(見解)는 기존의 뉴스 팩트와는 확연한 차별을 보인다.

 

국민들은 종편의 방송 패널들이 분석해주는 사회적 문제들을 가감 없이 흡수한다. 그리고 자신의 분석쯤으로 착각과 오류에 빠져든다. 이 같은 양상은  2002년의 월드컵에서 국민 모두가 축구 해설가가 되었던 것과 동일한 결과다. 

 

불행하게도 못된 정치는 종편의 방송과 패널 들을 나쁘게 이용한다. 종편들은 편향된 시각을 예사롭게 방송하는 것이  관습적이라는 언론학자의 분석도 있다. 거기에 유튜브와 개인 방송까지 가세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종편방송은 이념과 진영논리를 판단하는 사관학교와 같다. 국민의 시선은 온건한 시선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의 행정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크다. 이에  광화문 광장은 시끄러운 마이크에 고성이 오간다.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 목소리가 뒤섞이는 현장이다. 거기에 가짜 뉴스도 상당부분 노출이 되어 있다. 가짜 뉴스는 당사자들에게 유리하게 다양한 방법으로 퍼 날리기 양상을 보인다.

 

이렇듯 언론의 역할이 사회의 거울이 되지 못하고 불확실시대의 주역이 되고 있다. 언론의 본질은 여론의 균형적 중심에 서있어야 맞다. 여론이 형성되는 정보 공장과 같기 때문이다.

 

성남일보는 여러 언론사와 비교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남일보가 창간 19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지난 25일 가천대학에서 ‘분당 정체성 찾기 컨퍼런스’를 개최하였다. 주제는 ‘분당신도시 30년 회고와 전망’이다. 성남일보는 성남이 가진 문제들을 전문집단의 연구진을 초청, 토론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성남일보도 여느 언론과 마찬가지로 뉴스를 생산하고 있다. 뉴스는 사실에 대한 거울이다.

성남일보는 뉴스 생산에 앞서 정파와 진영논리를 벗어난 대안이 필요한 시대임을 인식했다. 

 

이 같은 대안 제시는 역사 깊은 대형 언론사들도 관심권에서 벗어난 영역이다. 그들은 경제를 앞세운 영업적인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성남일보는 2017년과 2018년에는 광주대단지 형상화를 주제로 한 연극 ‘황무지’를 무대에 올려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상당한 자본이 투자되는 문화 사업이다.

 

국민들은 불확실성시대에 극도로 예민해 져 있다. 오늘 우리의 길은 앞이 보이지 않는 눈밭 같은 세상을 걷고 있다. 언론은 미래의 길로 나서야만 한다.

 

성남일보가 가는 길에 동참해야한다. 국가정책은 물론 지역현안에 대하여 미래적 시안(試案)을 펼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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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수 2019/05/28 [08:30] 수정 | 삭제
  • 성남신문의 미래를 제시하는 방향에 깊은 공감이 갑니다. 언론의 구실은 뉴스도 좋지만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칼럼에 크게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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