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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이 처음 커피를 먹기 시작했다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19/06/10 [08:22]

산양이 처음 커피를 먹기 시작했다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19/06/10 [08:22]
▲ 최창일 교수.     ©성남일보

[최창일 칼럼] 커피는 신들의 차(茶)다. 신(神)들의 잔치에 첫 번째 기호식품이 커피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커피와 대학은  유사점이 있다. 90년대 대학을 가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시험을 보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2천 년대에 들어서며 대학은 수시입학이라는 명목으로 30만 가지가 넘는 조건과 형태로 입학 되었다.

 

커피는 그 옛날 다방 커피라고 하여 오로지 한 두 종류뿐이었다. 지금은 커피의 종류가 헤아리기 어렵다. 오늘도 그 어디에선가 새로운 커피의 맛이 탄생한다. 

 

커피의 맛은 신맛, 쓴맛, 단맛 등 다양하다.  커피에 대한 기준은 대학에 들어가는 기준처럼 상당히 체계적이고 명확하다. SCAA라는 협회가 있다.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pecialty Coffee Association of America)의 약자다. ​스페셜티 커피업계의 발전과 회원간의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단체다.

 

이곳에 발표한 커피의 조합은 대략 153,092,096종의 커피가 나올 수 있다는 조건을 발표하고 있다. 무조건 커피의 맛이 탄생하는 것도 아니다. 이 협회가 정한 각종 조합 조건 중  총 점수가 80점을 넘어야 맛있는 커피라고 평가된다.

 

커피는 기원전 6~7세기경 ‘에디오피아’의 산악지대 ‘짐마’ 마을에서 ‘칼디’ 목동에 의해  전파되었다. ‘칼디’가 양떼를 몰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양들은 검붉은 열매를 보자 허겁지겁 먹어 댔다. 목장으로 돌아온 양들은 기분이 좋아서 우리를 날뛰며 잠을 자지 않았다. ‘칼디’는 겁이 났다. 평소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칼디’는 신부에게 사실을 알렸다. 신부는 ‘칼디’가 말한 커피 열매를 따와서 사제들과 나누어 먹었다. 웬 걸 밤이면 꾸벅꾸벅 졸던 사제들이 기분이 좋아져 기도를 열심히 했다. 신부는 커피를 좀 더 연구하고 많은 신도들에게 권해 주었다.

 

한국인이 마시는 커피는 수입에 의존했다. 최근 일부 커피가 국내에서도 생산이 된다. 

 

커피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스타벅스가 한국에 들어 온지 20년이 되었다. 한국에는 커피전문점 수는 5월 현재 8만개다. 고속도로 휴게소 188개중 40%인 76개소에서 모든 음식 중 매출 1위는 아메리카노다. 시장 규모는 5조 6300억 원대다. 20년 전만해도 한국의 커피규모는 세계 15위였다. 2019년 현재 미국, 중국에 이어 3위다. 유럽의 영국, 독일 호주 캐나다를 제치고 3위의 커피소비국은 놀라운 사실이다.

 

한국인이 커피를 좋아하는 과학적 통계는 없다. 다만 많은 사람들의 의견의 결론이다. 한국인은 식사 후 숭늉을 즐겨 마시는 습관이 있다. 일을 열심히 하기로 1등 국인 한국인에게 잠을 쫒는 커피는 기막힌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위 중국은 인구수에 비해 한국의 ‘커피공화국’이라는 말은 매우 이례적일 수밖에 없다. 일본은 문화적으로 디저트 강국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커피 소비 4위국이다.

 

한국인이 1인당 년 간 10만 9089원을 쓰는 것으로 유로모니터는 발표하고 있다. 한국의 커피는 전문 매장은 ‘스타벅스’와 그 이전의 ‘할리스’를 말한다.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걸음 들어가 보면 이상 시인이 한국의 최초 가맹점을 운영했다. ‘제비’를 비롯한 커피 점 4개를 운영한 기록이 엄연하게 존재 한다.

 

커피와 예술가의 상관관계가 크다.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는 <커피 칸타타>를 작곡했다. 그리고 <커피칸타타>의 연주와 함께 커피를 즐겼다.

 

<가을의 기도>로 잘 알려진 시인 김현승의 호는 차를 뜻하는 ‘다’자 들어간 다형(茶兄)이다. 김현승은 광주의 양림교회 5대 목사를 지낸 김창국 목사가 부친이다. 양림교회는 선교사가 새운 교회다.

 

일찍이 선교사들이 커피를 가져와 교회에서 나누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김현승은 보고 자랐다. 김현승의 커피 사랑은 그가 가벼이 잔으로 마신 것이 아니었다. 사발로 마셨다. 다형의 커피에 대한 상식은 요즘의 바리스타를 능가했다. 이미 커피의 브랜딩을 멋지고 맛있게 하는 프로급을 넘었다.

 

커피와 관련해서 김현승에게 또 하나의 특이한 습관이 있었다. 매일 아침 여름철에는 일곱 시쯤, 겨울철에는 여덟 시쯤이면 반드시 집 근처 다방에 나가 좋아하는 종류의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었다. 지금도 양림동에서는 역사를 간직한 커피 관련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광주에 가면 꼭 가보기를 권한다) 김현승 시인을 고독의 시인이라고 한다. 시집 <견고한 고독> <절대고독> 등 김현승의 말년의 시에서 이루는 고독과 무관 하지 않다. 그의 대표적인 시 <가을의 기도>는 가을에 대한 표현은 독보적이다.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신(神)은 산양, 그리고 목동 ‘칼디’를 통하여 사제 시인에게 커피를 전달했다. 분명 신도 커피를 즐길 것이다. 

 

인류 최초 커피를 먹은 것은 산양이었다. 신이 만든 창조물 중에 커피는 신(神)의 한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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