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사과는 인류 역사를 바꾸었다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19/07/06 [10:14]

사과는 인류 역사를 바꾸었다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19/07/06 [10:14]
▲ 최창일 교수.     ©성남일보

[최창일 칼럼] 사과가 처음부터 달콤한 맛을 내지 않았다. 사과나무는 사과 씨를 심어서 키운 나무에서 그 씨를 품었던 씨와 전혀 다른 사과가 열린다. 이렇게 열린 사과는 대부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시다. 먹을 수 있는 사과가 열리게 하려면 접붙이기를 해야 한다. 접을 붙이지 않는 사과나무의 사과는 ‘어찌나 시던지 다람쥐가 진저리를 치고 비명을 지를 정도다’. 이런 사과는 대부분 술을 담글 때 말고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과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은 1900년에 들어서야 알려지게 되었다.  장미가 찔레와 접을 붙여서 5천종의 장미꽃이 탄생 하는 거와 비슷한 길을 걸어 왔다.

 

과일이 인류의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의학의 발달과 의사의 임상으로 과일이 인체에 미치는 영양을 새롭게 정리, 발표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가장 선호하는 과일의 순위는 차차 밝히기로 한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사과가 인류의 미친 이야기를 하나씩 소개 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학생은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사과를 이야기 했다. 두 번째 학생은 희랍신화를 많이 읽은 학생의 발표다.  불의 여신 에라스의 황금 사과를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다.

세 번째 학생은 윌리엄텔의 사과를 이야기한다. 아들의 머리위에 사과를 놓고 화살로 맞히는 유명한 이야기다. 

네 번째 학생은 뉴톤의 만유인력이라고 말했다. 이 학생들의 네 가지 이야기는 모두가 너무나 유명한 사과에 관한 사전과 같다.

 

그런데 이야기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학생이 한 가지 더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사과에서 한국의 청송사과를 빼놓고 이야기 하면 서운하다고 했다. 학생의 할아버지가 청송에서 명품사과 농장을 한다고 했다. 학생에게는 청송 사과는 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사과라 자랑 했다. 사과에 『합격』이라는 문구, 『승진』이라는 문구를 넣어서 소비자에게 내놓은 것도 청송의 할아비지 농장이라고 했다. 선생은 학생의 엉뚱한 발표에 당황 하였으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렇게 사과의 이야기는 여운이 길기만 하다.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폴 세잔은 사과를 그려서 유명해 졌다. 그가 그린 사과는 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와 함께 인류 3대 사과 중 하나로 불리기도 한다.

 

피카소와 브라크 같은 입체파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어 ‘근대회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폴 세잔은 사물의 본질적인 구조와 형상에 주목해 자연의 모든 형태를 원기둥과 구, 원뿔로 해석한 독학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그는 모네나 드가와 같은 동시대 예술가들이 파리에서 그림을 그릴 때 엑상프로방스에서 정착 할 것을 결심하면서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정물에만 집중하겠다. 너희들은 파리에서 어떤 자극을 주고받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곳에서 정물에 집중해서 그림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이겠다. 나는 한 알의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 그는 결국 파리를 평정했다. 세잔은 단순 빨간 사과가 아닌, 사과 본연의 모습을 그려 내기위해 선택과 집중, 차별화를 시도 했다. 하나의 사과를 만지고 만져서 짓물러졌다.

 

한국의 김광수 사진작가는 사과를 사진으로 담아내는 작가다. 사과 밭에 사과나무를 골라 주인과 계약을 하고 1년 내내 사과나무의 사과가 익어가는 과정을 사진에 담는다. 사과나무 주변에서 살다시피 했다. 작품은 결국 한 컷에 불과 하다. 대형 작품으로 1년에 한번 코엑스의 화랑제의 전시회에 출품한다. 사과의 작품은 신비롭다.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김광수의 사과나무 작품은 인화지로 표현되기에 버거운 크기다. 사과나무 원형의 크기로 인화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주는 앵글의 빼어난 예술성은 고뇌 속 결과물이다. 프로방스에서 일생을 보낸 폴 세잔과 같은 예술적 마음이다.

 

과일도 유행을 탄다. 사과는 21세기에 들어서며 세계의 과일 판매 시장에서 토마토와 바나나에 밀려 소비의 3위가 되고 있다. 

 

사과의 원래 조상이 살던 곳은 카자흐스탄의 산악 지대에서 자라는 야생 사과나무다.

 

기원전 2천 년 전에 중국에서 접붙이기 기술을 고안한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사과가 나왔다. 한 품종의 나무에서 잘라낸 가지를 다른 품종의 나무줄기에 붙으면 부모의 우수한 형질만 이어받은 사과가 개발 되었다. 이 기술은 그리스와 로마로 나가 세계 속의 사과로 자리를 잡았다. 로마에 가면 한국에서 보기 드문 지우개 모양의 둥글납작한 사과를 만나게 된다. 맛은 청송 사과에 비교는 안 된다. 나름의 달콤함이 매력적이다. 

 

함민복 시인은 “사과의 한 알은 우주다. 사과를 감싸던 눈송이와 소슬바람을 먹는다”고 했다. 사과는 ‘문명화된’의 주인이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했다. 비단길을 따라 유럽에서 세계로 이동했다. 사과는 인류역사를 바꾼 히스토리의 귀족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