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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송환을 앞둔 신인영 비전향 장기수

김락중 | 기사입력 2000/08/04 [09:57]

북한 송환을 앞둔 신인영 비전향 장기수

김락중 | 입력 : 2000/08/04 [09:57]
<편집자 주> 분단시대의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던 비전향 장기수들의 애절한 소망이 평양에서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송환을 희망하는 남쪽의 비전향 장기수들을 전원 북으로 돌려 보내기로 한 것이다. 송환시기는 오는 9월초. 비전향장기수 88명 가운데 현재, 북으로의 송환을 희망한 사람은 모두 59명. 나머지는 남쪽에 남기로 했다.

남북공동선언 합의에 따라 이번에 북으로 송환되시는 비전향 장기수 신인영(72세,수정구 신흥주공아파트)씨를 분당청년회 민족학교에서 만나보았다. 신인영씨는 분당청년회(회장 편재승)가 주최하는 민족학교에서 북으로의 송환을 앞두고 "남녘 청년들에게 보내는 화두"란 제목으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신인영씨와의 인터뷰는 강의이후 질의응답을 통하여 이루어 졌으며, 부족한 내용은 자리를 옮겨 차한잔을 하면서 진행하였다.

먼저 신인영선생님의 약력과 근황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신인영씨는 1929년 전북부안에서 출생하여 전쟁이후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니다가 1967년 통일사업을 위해 남으로 내려와서 다시 북으로 넘어가다 해상에서 보트가 좌초되어 해상에서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32년동안 복역하다가 98년 3월 석방되어 93세의 노모가 계시는 성남시 수정구 신흥주공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가, 현재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 우리탕제원에 동료 비전향장기수분들과 함께 머물고 있다.

특히 남과 북에 모두 혈육을 두고있는 신인영씨는 그 처지가 남다르다.

전라북도 부안 출신인 신인영씨는 남쪽에 93살된 노모와 형제들을 두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후퇴하는 인민군을 따라 북으로 갔던 신씨는 그곳에서 아내와 세명의 자식을 두었다. 다른 북쪽 출신 장기수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67년 남파돼 30년 넘게 헤어져 있던 아내와 자식들을 만나기위해 송환을 신청했다.

그러나 주위사람을 안타깝게 하는 것이 신씨의 건강이다. 32년째 옥에 갇혀있던 지난 98년, 골수암 판정을 받고서야, 풀려 날 수 있었던 신씨... 올해초 병세가 악화되면서 요즘도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종양이 장기와 팔로 전이돼 두달째 방사선치료를 받고 있어 내일도 병원에 가셔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을 만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불원천리 달려오신 그 젊음이 아름답기만 하다.

최근 신인영씨는 30여년 전 헤어졌던 아내와 세남매가 있는 북쪽(평양시 순안)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하지만 그가 북행을 결심하기까지 마음고생도 많았다. 그가 석방될 날만을 기다리며 30여년간 옥바라지를 해온 93살의 노모 고봉희씨 때문이다. 송환을 앞둔 요즘, 그의 남쪽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횟수도 잦아졌다. 함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기 위해서다.

그러나 신씨의 송환이 다가올수록 남쪽 가족들의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30여년을 기다려, 다시 만난 지 겨우 3년째... 또다시 아들을 보내야 하는 노모의 눈물은 그칠 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40년 가까이 남편을 기다려온 며느리와 아버지없이 자란 아들을 생각하면 아들의 앞길을 막을 수도 없는 처지... 다만 살아생전, 북에 있는 며느리와 아들의 피붙이들을 만나 봤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고봉희씨는 한방송사와 인터뷰에서 "한번 보면 내가 소원도 풀고 새끼들도 보고 며느리도 보고 오면 안심하고 사는데, 그쪽에서 형편 되면 또 올지 모르니까 그것도 기다리고. 한번 가게 해줘요"라고 밝혀 주위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러나 현정부는 비전향장기수만 해당된다면서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신인영씨가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무엇인가?

누군가가“당신은 당신의 사상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30-40년 동안 0.75평 안에서 견딜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수 있을까?

우리는 단호하게 그 사상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떠나, 그 양심이 무엇인가를 떠나 이것은 인간승리의 역사이며, 양심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델라의 28년을 어찌 여기에 비길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신인영씨가 가혹한 전향공작에도 불구하고 32년동안 감옥에서 신념을 져버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

감옥 안이 자유이고 감옥 밖이 감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사상의식이라는 게 있지. 그래서 인간은 밥만으로 못사는 거야. 자신의 사상의식을 세우고 자신의 뜻과 의지, 양심의 명령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지. 사람이 이 양심을 잃게 되면 살아있어도 죽은거나 마찬가지이다. 난 감옥 안에 있었기 때문에 살아있었던 거지. 끊임없이 변화하고 개혁하려는 모두가 살아 있는 거야. 그러지 못하면 감옥 밖이 오히려 커다란 감옥이야.

석방되었을 때 청년들에 대한 생각과 느낌은?

처음에 석방되었을 때 젊은 사람들을 보고 놀랬다. 한마디로 세상 말세다라는 느낌이었다. 자본주의의 물질 만능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기주의 ,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는 것이 개탄스럽다.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도덕성 실종도 안타깝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물불을 안가리는 것 같다. 사대적인 모습을 벗어나 민족적인 정서와 전통을 계승발전 시킬 줄 알아야 한다. "전제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라는 말이 있듯이 개인의 탁월함보다는 사회전체의 우등생을 위한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들의 자세에 대해

함께 일하는 주위동료들과의 관계에 있어 의리가 있어야한다. 일중심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일보다는 일상적인 관계가 더 중요하다. 일상적인 관계를 잘 풀어나가면서 일을 해나갈 때 그 만남과 관계는 오래 지속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시간에 대한 소중함과 약속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이는 과거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시간약속이 지켜지지 않음으로 인해 크나큰 후과를 입은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말이다.

여성들에 대한 생각은?

결혼이후에도 여성들이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통하여 사회적 지위를 가져야 한다. 탁아시설등 공교육을 통해 가정으로부터 육아문제등을 해결하고,부엌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남녀평등을 실현할 수 있다. 보통 남성들이 하는 일을 여성들도 할 수 있다. 육체적 조건들과 사회적인 조건들을 보장해주면 된다. 무엇보다도 여성들이 부엌으로부터 해방되고 육아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탁아소, 유치원 시설완비를 갖추어야 한다. 가사노동 해결을 위해 밥공장, 식료 가공품 공장들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요즘 가장 많이 보도되고 있는 송환문제에 대해서 물었다.

"머지않아 송환희망자들은 북으로 가겠지만 우리는 조건이 붙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정부관계자들이 인도주의란 말도 했었다. 인도주의에 무슨 조건이 필요하겠는가! 북남 사이에 정치적 문제가 해결되어서 우리문제도 해결되길 바란다. 고향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사랑이 없이 어떻게 조국애, 동지애가 있을 수 있겠는가. 어찌 그리운 사람이 없겠는가. 보내준다는데 가지 않을 사람은 없다

9월이 되면 북으로 가셔야 하는데 어머님은?

이번 정부의 송환은 비전향 장기수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은 제외가 된다. 이산가족이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여실히 느꼈다. 통일을 지향하겠다고 하는 정부가 새로운 이산가족을 만들어서야 되겠는가.서신왕래, 가족간의 결합문제는 전향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국민들의 여론을 조성하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북의 가족들이 초청장을 발송하고 남한의 가족들이 방북신청을 하는 형식으로 서로 왕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신인영씨는 어머님 얘기를 할 때 일 부 언론이 "남쪽의 어머니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북쪽의 아내와 자식들을 선택하느냐"하는 식의 호기심 부각 보도에 대해 실랄하게 비판을 하였다. 물론 인간적인 고뇌가 없을 순 없지만 이번 송환문제는 개인적인 문제를 떠나서 통일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신인영씨의 생각이다. 이러한 점들이 부각되지 않고 오히려 언론의 상업성에 놀아나는 것 같아 남쪽의 생활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별로 기분이 안좋은 것 같다.

북에 지금 부인과 자제분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사전연락은 하고 있는가?

제3국을 통해서 생존해 있는 가족들이 환영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도의 소식만 들었을 뿐 구체적으로 누구의 가족이 생존해 있고 어떻게 지내는지 아직 연락을 주고 받은 적은 없다.

북으로 송환되시는 분들 이외에 남쪽에 남아 계신 분들도 있는데 이분들과의 갈등은 없나?

인간적으로 약간의 서운함이 있긴 하지만 갈등이 있을 이유가 없다. 감옥에서 한평생을 함께 지내왔는데 북쪽이건 남쪽이건 각 자의 위치에서 통일을 위한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함께 다짐을 하고 있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비전향장기수분을 포함해서 2분의 유해는 어떻게 되는가?

98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금재성씨, 그리고 지난해말 치매에 시달리다 끝내 눈을 감은 최남규씨가 그들이다. 비록 죽었지만 이분들도 비전향 장기수 들이다. 조건이 똑같은데 유명을 달리했을 뿐이지. 그러니까 이번에 갈 때 유골을 가지고 가야된다.

북으로 송환되신 이후에 하고 싶은 일들이나 계획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우리 비전향 장기수들은 감옥에서도 한길을 갔고 앞으로도 한길을 함께 갈 것이다. 일생을 내 안일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좀 어려운 곳에서 어려운 삶을 살다 일생을 그렇게 마칠 생각이다. 특히 통일일꾼으로써 조국의 통일에 이바지 하고 싶다. 앞으로 자주교류가 실현되면 다시 남으로 내려와 통일을 위한 일들을 하고 싶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골수암이라는 지병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긴 시간동안 자신과의 싸움에서 당당하게 이겨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모습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가장 순수하고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지키려고 긴 시간 발버둥 쳐온 친근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신인영 비전향장가수!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분단의 멍에를 짊어지고 젊은 청춘을 모두 감옥에서 날려 보내야만 했던 사람들! 이들의 삶은 북으로 송환된다고 해서 보상받을 성질의 것은 아니다.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 오직 이것만이 이들의 삶에 대한 댓가일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분단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앙금처럼 남아있던 비전향장기수들! 어떤이는 가족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로 설레고, 또 어떤이는 새로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신인영씨의 송환이 또다른 이별의 시작이 아니라 남과 북이 장벽을 걷고 서로 자유롭게 오가는 그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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