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사람에게 사랑하지 말라는 건 죽으란 소리다“라고 C작가는 말한다. 사랑은 생명의 원리다. 사랑은 역사적 지리적 형태의 양상으로 진화되어왔다.
서양의 철학자와 노자를 비롯한 동양의 철학자는 사랑에 대하여 토론 하면서 생을 마쳤다. 문학의 신성(神聖)이라는 톨스토이는 그의 명작 ’부활‘에서 사랑을 말하려 했지만 다 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내가 지독히 사랑하는 두 여자가 있다”고 C작가는 그의 에세이에서 말한다. 문화비평가들은 헵번을 일컬어 거룩한 배우라고 말한다. 그의 웃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스코트(행운을 가져 온다고 믿어 간직하는 물건이나 사람)다. 헵번은 유니세프 자선활동으로 외모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을 보여주어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그는 화가들이 머무는 시선이다. 화가들은 그의 옥색(玉色) 미소를 화폭에 담는 것을 장미처럼 아름다워 했다.
또 한사람은 ‘정갈한’ ‘깨끗한’ 문장의 주인공, 신지식(1930~2020) 소설가다.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하얀 구름조각이 까닭 없이 슬프게 보이는 오후“라는 문장이 생각나는 <하얀 길>의 소설가다. 지금은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절판의 책이다. 그의 문체는 구름을 붙잡는다. 아카시아 향기가 책장 사이사이 묻어난다. 태어나서 처음 읽었던 소설의 내용을 어렴풋이 기억 된다.
신지식 작가를 남자로 알았던 독자가 많다. 작가는 ’빨강머리 앤’의 번역자며 여자라는 것을 알기에는 시간이 지나면서다. 김훈 소설가의 에세이집에도 신지식 작가의 소설을 명징(明澄)하다는 구절이 있다.
소설은 가슴을 앓은 창백한 소녀들이 등장한다. 하얀 레이스 커튼이 연상되는 소설이다.
‘하얀 길’은 1956년에 펴냈다. 60~70년대 베스트셀러였다. ‘하얀 길’이 1위 이청준의 ‘별을 보여 드립니다’가 2위, 최인훈의 ‘광장‘이 3위였던 것을 보아도 신지식의 ’하얀 길’의 인기를 짐작하게 한다.
60년대, 그 시절은 읽을거리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얀 길‘의 책을 만난 것은 표지도 없었다. 제목도 모르고 그냥 읽었던 시절이다.
한없이 순정한 눈물같은 이미지는 감성의 소년소녀들을 사로잡았다. 정확하지 않지만 “진달래 꽃이 피면, 나는 미화의 무덤을 가야 한다.” ‘하얀 길’속의 단편 ‘아카시아‘의 여 주인공의 말이다.
우리들은 소설을 나누어서 읽고 책 속 여주인공의 말과 행동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문장 속의 여학생들은 우리들의 유별(very)한 친구였다. 마치 하얀 칼라의 여학생들이 우리들과 오거리 코롬방 제과점을 드나드는 이상(理想)이 되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친구의 무덤을 다녀오면 창천동 언덕길을 오르는 장면이 있다. 서대문구의 창천동의 실제 거리로 보인다. 신지식 작가는 이화여대를 나왔다. 그리고 이화여고 국어 교사로 재직했다. C작가는 신촌에 있는 산울림 극장의 근처가 소설속의 아카시아 언덕길이 아닐까 몽상(夢想) 해본다.
산울림극장 근처는 낮은 산이었고 아카시아가 많은 언덕으로 짐작한다. 지금의 주변은 아파트가 들어섰다. ‘하얀 길’속의 아카시아와 언덕길은 흔적도 없다.
신지식작가는 열여섯 살 피란 통에 어머니를 잃었다. ‘빨강머리 앤’을 번역한 시절은 6.25로 부모를 잃은 아이, 집 없는 아이, 불행한 학생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작가는 위로 받았던 ‘빨강머리 앤’을 현실이 가난한 아이들에게 힘을 심어주고 싶었다.
지금의 상당수 현역 작가들은 ‘빨강머리 앤’을 읽고 자란 세대들일 것이다. 신지식 작가는 평생 독신이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지병으로 쓰러졌다. 넉 달을 투병하고 2020년3월 12일 영원한 순수의 세계로 떠났다. 작가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꿋꿋한 소녀 ‘앤’을 우리 곁으로 데려와주었다. 열권으로 되어 있는 ‘빨강머리 앤‘의 소설에서 작가는 이렇게 번역을 하며 마무리한다.
“굽은 길의 끝에 좋은 것이 있다” <저작권자 ⓒ 성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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