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겨울 강에는 물새들이 무리를 지어서 물살을 가른다. 차가운 겨울 강, 철새들도 서로의 의견을 나는 것일까. 저들도 이념과 진영논리를 가질까. 세속의 한심한 판단을 물새와 나누려는 전가의 태도가 부끄럽다.
조간에는 “‘이낙연’으로 뭘 바꿀 수 있을까”제목의 칼럼이 눈길을 끈다. 새해 들어 이낙연 대표의 이명박 박근혜 사면은 언론의 활자 포인트를 키웠다. 그는(이낙연) 원래 보수였으며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등이 주도하는 보수 성향 싱크탱크 여시재에 찾아가 “여시재가 대한민국의 의제를 가장 절묘하게 집어내고 해결책도 잘 제시 한다”며 “나도 여시재의 의제와 해법에 늘 관심을 가진다”고 말했다. 이낙연 대표의 정책 지향점은 보수에 가깝다고 평가한 칼럼이다.
이 교수는 이낙연 대표의 기자 시절(동아일보) 기사를 조목조목 나열하며 보수의 흔적을 강조한다. 이낙연 대표가 최근 이명박, 박근혜 씨의 사면에 대한 부정의 의견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게 한다.
오피니언 칼럼은 팩트에 의한 학자의 견해다. 문제를 삼을 만한 논지는 전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진영논리가 칼럼의 곳곳에 채워졌다.
그렇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겨울 강, 철새와 같이 무리를 짓는 인맥이 필요한 사회라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어느 정치 평론가는 박원순 시장이 고인이 되기 전, 대통령 선호도 여론조사 순위에 하위인 것을 분석한 적이 있다.
한국 여론을 이끄는 것은 종편과 유튜브가 한축을 차지한다. 종편의 패널과 유튜브는 박원순 전 시장을 긍정으로 보는 자기편은 없었다. 패널 들은 박원순 시장의 시정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가 지속 되었다.
의외인 것은 박원순 시장이 고인이 되자 유튜브와 진보의 패널들은 일제히 박원순을 두둔하는 일부 축이 생겼다. 더 이상은 박 전시장과의 척을 지를 필요가 없게 되었다. 다만 박원순 시장의 죽음은 진보에 부담이 될 뿐이다.
우리나라 여론은 방송 패널의 의견이 다분히 반영된다. 유튜브와 종편에서는 반복적인 내용과 디테일하게 설명을 해준다. 판단에 유보적인 시민에게는 어느 편인가 여론의 종착을 찾게 한다.
일부 시민은 패널의 의견에 자신도 모르게 동의하는 입장이 된다. 하나의 사례로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경기중 대한민국의 아이 어른 모든 시민들은 축구 해설가였다. 기간 동안 한국의 국민들은 상당한 축구 지식도 쌓았다. 그것은 반복적으로 중계와 해설을 보고 듣는 결과다.
이 대표의 사면거론도 월드컵 당시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휴대폰은 장소 시공을 초월, 방송과 유튜브 시청이 가능하다. 모임에 가면 방금 들은 종편 패널들의 정치지형을 자신의 것으로 표현 한다. 유튜브는 정보형태의 혁명이다. 거기에는 시청률이 높아지면 광고와 연결이 된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유튜브는 엉뚱한 선동과 가짜뉴스까지 만든다. 진영 논리에 빠져들게 한다. 정치적 소신과 자신만의 표정이 없는 시민에게는 올바른 판단이 되지 못한다.
자신만의 성찰이 없는 곳에 선동과 무능한 판단이 파고든다. 이른바 정치공학이 아닌 정치적 원칙의 사회가 필요하다. 잘못된 여론인식은 결국 시민들의 학대받는 정치를 몰고 오게 한다. <저작권자 ⓒ 성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