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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받다 떠난 그대여, 그곳에선 괜찮은가요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1/02/22 [12:33]

고통 받다 떠난 그대여, 그곳에선 괜찮은가요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1/02/22 [12:33]

[최창일 칼럼] 역사에서 부릅뜬 눈으로 무관심을 질타한 그대는 결국 노을 속으로 떠나버렸네. 그대의 작은 노래 소리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그 강을 건넌 그대여 그곳에선 눈부신 아침이길 바래요.

 

5.18의 가두방송 주역인 전옥주 무용수가 지난 16일 향년 72세로 바람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5.18의 새벽,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전옥주 무용수의 패부를 끓는 청음(淸音)을 들었던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이명 앓이를 하리. 그래 이제 그대는 하늘호수에 두꺼운 사리가 되었어.

▲ 영화 화려한 휴가 캡처 화면.  © 자료사진

우리의 독립운동사에는 거룩 된 여자의 몸짓은 지워져 있다. 어쩌면 독립운동에 지워진 여자의 형형한 영혼이 전옥주라는 무용수를 통하여 오롯이 환생 되었는지 모른다.

 

그는 물속에 가라앉고 있는 민주주의를 건져낸 여성이다. 비가오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무등산에서 전옥주 무용수의 음성이 계곡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의 음성 속에는 유관순 언니, 김구 어머니, 윤봉준 열사 어머니의 한 서린 음성들이 합창을 한다. 

 

“여자가 어째서 남자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나?” “세상이란 남녀가 협력을 해야만 성공하는 것이다. 좋은 가정은 부부가 협력해서 만들어 지고, 좋은 나라는 남녀가 협력해야 이루어  지는 것이다.”

 

1919년 항일 투쟁을 지원하던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지도자들을 체포, 심문하던 일제 경찰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1892~1944)의 문답이다.

 

우리의 아픈 역사에는 여자의 의자가 치워졌었다.  여자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하지 못한 것이 슬픈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다만 유관순을 비롯해 영화 <암살>과 TV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의 모델인 된 남자현(1872~1933), 윤희순(1860~1935) 등 수명만 알려졌을 뿐이다. 실제 국가 보훈처 통계를 보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이는 모두 1만5825명, 그 중 여성 독립 운동가는 3%인 472명에 불과하다.(2019년 기준)

 

이것은 가부장 시대 속에서 그들의 활동을 뒷바라지로 여겨 기록 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그들이 흘린 피는 남자의 피와 같이 36.5도가 분명하다. 

▲ 최창일 / 시인     ©성남일보

5.18의 중심부에 섰던 전옥주 무용수의 아픈 상처도 그와 같다. 1949년에 태어난 전옥주 무용수는, 그 날을 맞이하기 전까진 무용을 전공한 평범한 30대 여성이었다.

 

그러다 1980년 5월 19일, 서울에서 광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5.18의 참상을 목격하게 된다. 전옥주 무용수는 계엄군의 무자비함에 5.18가두방송에 자신도 모르게 합류 된다. 이것이 바로 유관순언니를 비롯한 나라를 구한 어머니들의 피가 면면히 합류한 것이다.

 

전옥주 무용수는 항쟁의 소용돌이 속에 팔을 붙이고 가두방송을 하며 헌혈과 항쟁의 동참을 촉구한다. 감히 대치하는 시민과 계엄군 사이에 우뚝 서서 마이크를 쥔 여성, 전옥주 무용수는 당당하기만 했다. 

 

영화‘ 화려한 휴가‘(2007년) 이요원의 실제 모델이다. 영화를 보고 나온 그날의 우리는 눈가를 훔치며 소태의 공기를 마셨다.

 

전옥주 무용수는 계엄군의 최후진압 직전 간첩으로 몰려 가혹한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하다 1981년 사면 조치로 풀려났다. 이 때문에 평생을 고문 후유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5.18 청문회에 증인으로 서고 여성동지회를 조직하는 등 투쟁을 이어왔다. 모진고문은 산부인과 1급 장애판정을 받아 평생 후유증에 시달렸다. 고문당하는 꿈을 꾸다가 침대에서 떨어져 갈비뼈가 부러졌다. 광주시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2남1녀를 입양하여 최선을 다하여 키웠다. 

 

전옥주 무용수의 별세에 그날의 청음을 기억하는  시민들에게는 가슴이 내려앉는다. 인간의 가슴과 주머니에는 잊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음성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전옥주 여사, 아니 역사 속 어머니의 음성을 잊지 말자고 다짐 한다. 5.18이 되면 구 전남도청 광장과 전일빌딩에서 전옥주 무용수의 음성이 들려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 음성은 우리가 영원히 잊지 못할 민주주의 음성으로 명명 하자 다짐한다.

 

오는 봄에는 5.18묘역에서 ‘님의 행진곡’ 보다 전옥주 무용수의 음성을 들어보자. 전옥주 무용수가 떠나는 날, 광주의 날씨는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했다. 서러운 바람이 다 이루지 못한 무용수의 옷깃을 날린다.

우리에게 누가 민주주의 어머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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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로시인 2021/02/22 [18:27] 수정 | 삭제
  • 5.18 광주사태는 참으로 많은 사연이 들어있다 크게 알려지지않은 인터넷에도 이름이 뜨지않는다 이렇게 크나큰 일을 한여인이 마치 숨어있듯이 가볍게 뉴스 한토막으로 지나간것같아 전옥주 무용수 그래서 c시인은 연민을 쏟아 붓듯이 펜을 날린다 어쩌면 전옥주는 처음부터 이렇게 큰일을 하게 되리라고는 본인도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을 광주사태는 일어설 수 밖에 다른 도리를 막아선거다 고문을 당하고 그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어찌견디었을까 아름다운 젊음을 사랑하는 광주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바꾼 것이다 c 시인의 오늘 여성을 향한 위로가 참으로 아름답다 향기가 나는 것 같아 고통 받다 떠난 그대여, 그곳에선 괜찮은가요 참으로 표현이 눈물겹다 어떤때는 남자가 여자보다 더 섬세한 것 같아 칼럼이라기 보다는 아름다운 꽃 전시장에 온 것 처럼 여인 한사람 한사람을 잘차려진 상으로 모시고 수고했다 위로하며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듯이 하늘로간 모든 나라위해 몸바친 여인들이 기뻐하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리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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