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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대‘는 다 어디 갔어요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4/05/20 [07:38]

’가라사대‘는 다 어디 갔어요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4/05/20 [07:38]

[최창일 칼럼] ‘가라사대’는 다 어디 갔어요. 새 번역 성경을 본 손주 샤아의 질문이다. 10여 년 전의 성경에는 ‘말씀하시기를’이라는 표현이 ‘가라사대’로 표기하였다. 말이나 글에도 경향(傾向)의 흐름이 있다. 

 

다시 질문한다. ‘자유시’가 뭐냐 물었다. “자유시는 일정한 형식을 가지지 않고 내재적 운율과 내재적 해조(解調)만을 중시하는 순 서양적 개념에 의한 시의 형식이다.”(서정주 시인)

▲ 황순원 문학관 전경 / 사진 최창일

“자유시는 정형시의 규칙을 벗어남으로써 시 정신을 자유롭게 확장 활용한 것이요, 산문에 시적 운율을 배정함으로써 산문의 고삽성(苦澁性)을 해소한 시이다. 다시 말하면 형식에 있어서 산문적 자유성을 얻고, 내용에서 운문적 율조를 얻어 이 양자를 조화하는 곳에 자유시가 위치하는 것이다.” (조지훈 시인)

 

자유시는 “한여름에 마시는 시원한 밀크티처럼, 독특한 미각을 지닌 시”를 뜻한다.(루펏 한 작가)

 

자유시를 묻는 말에 서정주, 조지훈 시인, 루펏 한 작가 세 사람의 말에는 자유시에 대한 해석은 모두 같다. 다만 시대적인 경향이 다름을 보일 뿐이다. 그러기에 시대별의 말은 누구의 말이 바르다거나 뛰어난 표현의 해석은 하지 않는다.

 

서정주 시인은 1915년에 태어나 세기말인 2000년에 별에 가셨다. 조지훈 시인도 마찬가지다. 서정주 시인보다 5년 뒤 1920년에 태어나 1968년 향년 47세로 별에 가셨다.

 

보았을 때 언어에도 시대적 경향이 뚜렷하다. 그 시대에 어울리는 말이었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가라사대’라는 말이 성경의 곳곳에 사용되었다. 시대별 언어의 변화에 요즘의 성경에는 가라사대라는 말은 없다. 수차례에 번역을 거듭하며 시대에 어울리는 성경의 말씀이 된 것이다.

 

자유시는 19세기 미국의 시인 휘트먼에 의해 처음 쓰였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창조 창간호에 주요한 시인의 ‘불놀이’가 발표되면서부터 자유시로 들어갔다. ( 김희보 시 쓰기 24p)

 

시간이 주는 언어의 변화를 본다는 것은 재미있다. 서정주, 조지훈 시인의 시대별 언어가 있었기에 루펏 한이라는 시인의 신선한 말이 이어졌다. 루펏은 ‘먼 대륙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뛰노는 호랑이와 펄럭이는 깃발을 상상한다. 이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가 되었다.

 

루펏이 생각한 ’자유시는 이처럼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색 땅 위의 서사를 주제로 한다. 어떤 시는 서정적이고 어떤 시는 노랫말이 연상되고 또 어떤 시는 판타지 소설의 일부 같다.’라고 보았다. 

 

앞에서 서정주 시인이 말한 해조(解調)의 뜻은 잘 ’본디 가락을 변주하여 타는 가락’을 뜻한다. 한문을 병행하여 사용하던 1940년대만 하여도 자연스러운 표기였을 것이다. 루펏과 같은 2000년대 신세대의 시인에게 해조와 같은 표기는 낮 설기가 된다. 

 

조지훈 시인 이 사용한 고삽(苦澁)성도 ‘씁쓸하고 떫다’는 뜻이다. 언어라는 것도 한문의 뜻이 벗겨져 나가고 진화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언어도 사라지거나 변화를 보일 때 외로울 것이다. 언어에도 신선도가 있다. 초록의 색도 있다. 어제 모 일간지의 글에는 “어렵다, 는 말은 그래서 멋지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또 다른 말은 “어쩌면, 도전 같은 취미”라는 말을 사용한다. 읽기의 글을 쓰면서 사용하는 자유시 형태다. 그 글이 지니는 뜻을 가능하면 신선하게 말하기를 고민하는 작가의 뜻하는 표기법들일 것이다.

▲ 최창일 시인     ©성남일보

시를 공부하는 동인의 이름을 ’809詩‘가 있다 공부하는 오피스텔의 호수가 809호다. 거기에 시를 붙여 사용한다. 시도반과 공부를 하고 나면 건배사는 ’809시‘하면 ’마셔‘다. 

 

시도반(詩道伴)의 뜻은 불교적인 용어로 도반이 있다. 같이 공부하는 동료를 이르는 말이다. 언어는 멋지게 사용하는 자의 것이다. 서정주 조지훈 시인에게서 루펏 한 작가가 자유시를 표현하는 말에 기뻐할 것이다. 후학의 언어가 빛나고 보석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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