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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사는 시인이다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4/07/01 [07:20]

미모사는 시인이다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4/07/01 [07:20]

▲ 사진 / 픽사베이

[최창일 칼럼] ‘미모사‘는 시인의 꽃이다. 사유(思惟)하는 시인처럼 예민한 잎의 ‘미모사’. 권일송 시인은 ‘미모사’를 들어 식물계의 시인이라 했다. 미모사는 외부의 자극을 받으면 금세 잎을 접고 만다. 

 

“당신의 손을 닮은 폐곡선이 있지 그 손을 자주 닫히게 만드는 또 다른 손들 파르르한 정맥으로 우아하게 만났다 은근하게 헤어지는 손들이 있지 말 없는 힘의 언어와 말하지 않는 언어의 힘”(중략)이라는 심재상 시인의 표현의 ‘미모사’ 시다. 

 

권일송 시인은 미모사와 같은 세상을 꿈꾸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세상을 어긋나고 말귀 못 듣는 세상이라 비판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고 불평등한 사회, 보복하고 싶은 욕망이 난무하는 사회. 분노의 발생 원인과 대상에 따라 분노의 표출은 욕망 추구를 위해 그 가치가 정 반대가 된다. 욕망 추구를 위해 적으로 삼은 상대를 지배나 제거 대상으로 본다면, 업(殗)의 악순환에 갇혀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직설로 표현하면 피로감의 지도자는 병든 사회로 이끌어간다. 이러한 사회는 건강한 시민이나 예술을 쫓는 시인은 살아가기 힘들다. 

 

미모사는 자기를 먼저 낮추는 예민성 식물이다. 미모사와 같이 겸손한 세상이면 좋겠다는 권 시인의 업의 논리가 귀에 크게 들린다. 미모사는 생김새도 신사다. 브라질이 고향이다. 한국으로 이주를 한 시기나 기록은 없다. 다만 한국인의 심성(心誠) 상 미모사를 닮은 것이 선명하다. 한국에서 미모사의 이름은 추사의 호처럼 여러 개다. ‘잠풀’의 이름은 순수한 한글 이름이다. 함수초(含羞草), 신경초, 감응초, 갈호초, 견소초, 파수초라는 일곱 개의 이름을 가졌다.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처럼 여러 개의 이름을 갖지 않았다. 러시아, 아랍, 미국, 스페인, 프랑스에서는 mimosa(미모사)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러준다. 몬테네그로 나라의 국화(國花)다. 식물의 이름을 대하는 것, 하나만 보아도 그 나라의 국민성을 알게 한다. 브라질에서는 흔한 식물이다. 적응력이 강해서 온대에서는 잘 자란다. 브라질에서는 여러해살이풀이지만 추운 계절이 존재하는 한국에서는 한해살이풀로 1년만 살 수 있다. 온실에서 키우면 더 오래 산다. 

 

꽃은 분홍이나 다홍색의 작은 공 모양이다. 꽃집에서 작은 화분으로 파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자극에 단순 학습이 가능하다. 동물에 의한 자극이나 자연에 의한 반복적인 자극은 기억하고 잎을 접지 않는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부를 함수초(含羞草)로 약재로 쓰인다. 장염·위염·신경쇠약으로 인한 불면증과 신경과민으로 인한 안구충혈과 동통에 효과가 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미모사 공주는 아프로디테 여신도 질투할만한 미모를 지니고 있다. 춤, 노래 실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그의 외모와 함께 교만한 공주였다. 어느 날 산책하던 미모사 공주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리라 소리를 들었다. 자신이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음악이 들려왔다. 호기심과 질투에 휩싸인 공주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어간다. 양치기 옷을 입은 소년 한 명과 소녀 아홉 명을 발견하였다. 소년은 눈을 감은 채 시를 읊고 소녀들은 그 주위에 앉아서 시 소리에 맞추어 리라를 타고 있었다. 그 외모는 공주 자신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난생처음 부끄러움을 느낀 미모사 공주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눈을 뜬 소년과 시선이 마주쳤다. 소년의 찬란한 눈을 바라본 공주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다가 한 포기 풀로 변해 버렸다. 소년은 풀로 변한 미모사가 측은해 어루만지려 했다. 소년의 손이 몸에 닿자 미모사는 더욱 부끄러워 몸을 있는 대로 움츠리고 말았다. 소년은 아폴론이었다. 소녀 아홉 명은 무사이(mousai, 문화의 여신) 아홉 여신이었다.

▲ 최창일 시인     ©성남일보

그리스 신화의 미모사는 교훈적이다. 신보다 뛰어났다고 자랑하는 인간들은 처참한 꼴을 당한다. 삶 속에 미모사와 같은 겸손의 세포를 넣는 방법은 없을까. 남의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지도자에 미모사의 겸손을 넣어줄 수는 없을까. 그저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이 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그저 들어주는 사람은 없을까. 

 

그렇다. 아픈 사람에게 가장 잔인한 것으로 판단의 잣대라 생각하는 법치 남용 리더 자에 미모사 한그루를 선물 해주고 싶다.

 

눈을 마주한 채 귀 기울여 들어주고 살며시 죽지를 접는 미모사 같은 지도자는 그 어디에 있는가. 그를 찾고 싶다. 미모사와 같은 겸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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