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참 소중한 것들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4/07/10 [07:37]

참 소중한 것들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4/07/10 [07:37]

▲ 사진 / 픽사베이

[최창일 칼럼] 어머니의 이름은 ‘이납순’ 이시다. 댁호(宅號)의 도천 댁이다. 지금이야 풀 내임을 부르는 시대지만 예전에는 어머니의 고향을 따서 댁호를 불렀다. 신기한 것은 아버지의 댁호도 어머니의 고향을 따서 불러주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도천 양반으로 불렀다. 남존여비 사상이 두터운, 시절에 아버지의 댁호를 어머니의 고향을 붙이는 것은 우리 사회의 균형과 여자에 대한 예의로 보인다. 우리의 공동체 사회는 그만큼 여유와 낭만이 있다는 사례로 보인다.

 

이름이 불리지 않고 댁호의 사회에 사셨던 어머니의 이름을 지금이라도 불러드리고 싶다. 궁리 끝에 시집을 내면 반드시 어머니의 이름을 시의 구절에 넣는다. 가족들은 금방 알지만, 시를 읽는 독자들은 질문을 해오기도 한다. 

 

‘시(詩) 한가운데 숨은 씨앗은/보이지 않는 마음의 정원이다//소월과 동주 그리고/ 백석의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다// 일송 미당 수영 납순은/ 무한대로 피우는 시의 꽃이다.’ <시화무> 전문이다. 권일송, 미당, 김수영 시인 다음에 어머니 이납순 이름을 불러 드렸다.

 

박준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아버지의 이름은 넣지 않았지만, 시인이 아버지의 일상,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대목이 나온다. ‘비 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오늘은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생활과 예보> 전문이다.

 

4행의 짧은 시지만 아버지의 하루가 여과 없이 그려진다. 과묵한 아버지의 모습을 더도 덜도 아닌 여덟 글자(첫 행)로 그렸다. 토지의 20권보다 더 장중하다. 어느 날 시인이 방송에 나오는데 아버지와 같이 출연을 했다. 상상컨대 시인만이 출연교섭을 했을 것이 십중팔구다. 그런데 박준 시인은 아버지를 출연시켜 아버지의 직업을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난지도에 쓰레기를 운반하던 운전기사였다. 아버지의 청소차를 타보기도 했다. 아버지가 근무하는 사무실에도 갔다. 쓰레기 더미에서 나온 장난감을 받아든 날은 즐거운 추억이었다고 회고한다.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어느 날 내 집 앞에 와 계셨다/현관에 들어선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눈물부터 흘렸다/왜 우시냐고 물으니/사십 년 전 종암동 개천가에 홀로 살던/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그런다고 했다/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

 

박준 시인의 <종암동> 전문이다. 시인은 아버지를 제목에 세우지 않고 지명을 내세우는 것도 시를 공부하는 시도반(詩道伴) 이라면 눈여겨 보일 것이다.

 

​시인은 유별하게도 아버지에 대한 시를 쓰고 있다. 시인들이 어머니라는 주제로 시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박준 시인처럼 아버지에 대한 시를 만든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시도 쓰고 가곡 작시 가인, 임승천 선생이 <꽃밭의 아버지>라는 노래를 만들어 사랑을 받기도 한다.

 

시는 그리울 때 쓰고 읽는 것이라 한다. 눈에 차오르고 가슴에 더는 덜어내고 싶은 것이 그리움이다. 사람에게는 흔적을 살피는 유전자가 많은지 모른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수명은 그것으로 끝날지 모른다. 수많은 음악의 공간은 그리움이 팔 할이 넘는다. 존재하는 것들은 자신으로부터의 그리움이 존재한다. 아들을 둔 아버지도 아버지가 그리운 것은 생의 존재를 의미한다. 그리움은 나뭇잎에 적은 글처럼 바람 속을 오가는 것이다. 때로는 주머니에, 서랍에 넣어 두지만, 켜켜이 누워 있다가 달밤이 되면 걸어 나오곤 한다.

▲ 최창일 시인     ©성남일보

물체는 무게가 있다. 그리움의 무게는 가상의 무게지만 가장 무거울 것이다. 그리움의 무게는 사람이 생을 마친 이후에도 남겨진 이들에 의해 영원히 기억되는 법이다. 떠난 이들의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육신과 정신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어느 계곡에 머리를 눕힌다고 생각하면 그 그리움은 배가 된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것이 무엇인가를 묻기도 한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그리움은 고향과 먼저 가신 어머니 아버지를 꼽는 통계를 보게 된다. 고향은 갈 수 없을 때 더 그리운 법이다. 박이도 시인은 고향이 이북이다. 갈 수 없는 고향이 나이 들며 생각이 많다고 한다. 근간에 강의가 들어오면 디아스포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땅을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의 여정은 40년간이었다. 그래도 고향은 가고 싶은 것이다. 상상은 늘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은 그리움이다. 그리운 것들은 참 소중한 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