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말의 풍경에 ’충분한‘ 분노해 보기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4/09/13 [07:53]

말의 풍경에 ’충분한‘ 분노해 보기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4/09/13 [07:53]

▲ 사진 / 픽사베이  © 성남일보

[최창일 칼럼] “올 수능 31%가 ‘n 수생’……. 21년 만에 최다”라는 신문의 제목이다. 의대 증원으로 16만 명이 지원했다는 기사의 제목이다. 학인은 글을 쓰는 전업 작가다. ‘n 수생’이라는 뜻을 알 수 없어 인터넷의 도움을 받는다. ”같은 시험에 여러 번 응시하는 학생”을 일컫는 뜻이라 알려준다. 

 

다시 문화면이다. 광주 비엔날레 30주년 전면 기사다. “과도한 파빌리온 지적도”라는 제목이 나온다. 파빌리온(pavilion)의 뜻은 전시장으로 쓰는 가설 건축물을 뜻한다. 더 풀어서 설명하면 ‘부속 건물’이다. 

 

다시 신문의 기획 면을 펼친다. 한성우(인하대 교수) 국어 학자의 ‘말과 글의 풍경’이라는 논문과 같은 글이다. 

 

”대파 알우? 기계 설계와 제작을 담당하는 현장에서 엉뚱하게도 대파를 아는지 묻는 듯한 말이 들린다. 이들의 표기와 발음대로 하면 ‘데파’와 ‘아루’이다. 오랜 세월 동안 기름밥을 먹어 온 이들끼리는 잘 통하는 말이지만 공학을 전공해 기계와 가공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운 젊은이들도 모른다. 그들은 대학에서 ‘테이퍼(taper)’와 ‘래디우스(radius)’로 배웠으니. ‘데파’는 원통을 예로 들면 한 면에서 다른 면으로 갈수록 원의 지름이 점점 줄어드는 것, 즉 중심선을 기준으로 약간 기울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아루’는 반지름을 뜻하는 ‘radius’의 머리글자 ‘R’을 일본식으로 읽은 것으로 날카로운 모서리를 일정한 반지름값으로 둥글게 가공하는 것을 뜻한다.

 

왜 이런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을까? ‘테이퍼’와 ‘R’이 일본에서는 ‘데파’와 ‘아루’로 발음되고 이것이 그대로 들어온 탓이니 일본어의 엉터리 발음과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이들에게 책임을 돌릴 만하다. 그러나 이는 근대 이후의 외래어를 바라보는 적절한 시각이 아니다. ‘데파’는 ‘빗각’이라 하고, ‘아루’는 ‘둥근 면치기’로 풀어서 설명하면 되지 않는가? 이렇게 하지 않은 것, 혹은 하지 못한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공장뿐만 아니라 ‘노가다판’과 산업 현장에 넘쳐나는 이런 외래어는 ‘일본어의 잔재’라고 치부해 ‘청산’이나 ‘순화’의 대상만으로 보기 이전에 더 중요한 본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라며 용어에 대한 풍경을 품격의 글로 그리고 있다. 

 

다중을 상대하는 신문, 그 안에서 글의 풍경으로 사회가 돌아가는 소식을 전하는 기자의 언어들이 다중이 알기보다는 기자의 언어로만 사용된다.

 

유튜브에서는 말의 풍경이 더 사납다. 나름 가리면서 한다고 하나 ‘노가다판’과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한성우 교수는 기자나 필진이 우리말을 적어야 하는데 한글은 싫고 한문은 어려우니 변형된 엉터리 한문 표기의 엉터리 이두(吏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전문영어를 번역하자니 어렵고 영어로 온전히 문장을 구성할 능력은 없거나 완벽하게 소통하기는 어려워서 그렇다는 것으로 설명한다.

 

병원의 의사 선생이 사용하는 표기는 영어가 태반이다. 검사와 법관이 사용하는 용어는 일본식 한문 용어다. 왜 의사나 법관이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서는 자비로운가에 의문도 든다. 

▲ 최창일 시인     ©성남일보

최근 언어를 연구하는 학자 간에는 수천 개의 언어는 모두 사라져도 한글은 살아남는다는 과학적 근거를 둔다. 학인은 외래어에서 우리말로 바뀌거나 원어 가까운 발음으로 대체되고 있음도 바람직하게 보인다. 이오덕 선생이나 고종석, 배상복 작가와 같은 분이 부단한 노력을 하며 저서를 통하여 일깨우고 있다. 학인은 시를 공부하는 시도반에 한글을 사용하는 것이 시인의 첫 번째 덕목도 강조하곤 한다. 

 

지금부터는 언론이 앞장을 서서 ’n 수생‘이니 하는 말도 돌아보자. ‘데파‘ ’아루‘ 용어가 100년을 넘어가고 있다. 언어는 그 시대의 주인이다. 그 자리를 차지하는 언어가 그 사람이 살아가는 나라의 가치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