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시집 제목을 읽다 보면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너는 시방 위험하다.’(문태준)라는 제목을 보면, 단순한 경고처럼 들리지만 한 편의, 시적 울림이 있다. ‘위험하다’라는 단어가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사랑이나 삶에 대한 간절함으로 읽힌다. 또 ‘슬픔이 나를 깨운다’(도종환)는 슬픔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을 깨우는 힘이 된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담아낸 제목들도 있다. ‘입속의 검은 잎’(기형도)처럼 강렬한 이미지로 독자를 끌어들이는가 하면, ‘가만히 좋아하는’(이병률)처럼 부드럽고 조용한 감성을 담은 제목도 있다. 이처럼 시집 제목은 한 문장 속에서 세계를 보여준다. 시인의 감각과 철학이 압축되어 있고, 그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감정을 읽어낸다.
시집 제목을 읽다 보면 문득 시인의 삶과 시선이 궁금해진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는 제목만으로도, 청춘과 현실에 대한 냉정한 통찰이 느껴진다. 반면 ‘나는 울지 않는다’(이성복)는 어떤 단단한 결심을 담고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시집 제목 하나만으로도 독자는 이미 시의 분위기를 느끼고, 한 편의 시를 상상하게 된다.
‘향기는 피아노를 친다’라는 양애경 시집의 제목은 언어가 향기를 날리고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청각과 미각으로 안내한다.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는 권일송 시인의 제목은 시대의 불화를 알게 한다. 어느 시대나 치사량을 권하지 않는 사회는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불화의 깊이와 무게는 다르다. 권일송 시인이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는 시대상은 군사정권의 시절이다. 거기에 보릿고개와 같은 가난의 질곡까지 겹친다.
시집의 제목은 본문을 요약하기도 하지만 한 시대상을 알리는 서사의 기록이 된다. ‘바람 없이도 흩날리는 꽃잎’의 박강남 시인의 시집은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봄날의 벚꽃이 풍장 되어 휘날리는 연상이 된다. ‘밥 빚과 동행 빚’의 이윤선 시인의 제목은 없는 언어의 배합이다. 시인이란 가장 아름다운 언어를 모으는 천상의 기질도 가졌지만 없는 단어를 만드는 것이 시인이다. ‘시냇물이 졸졸’ 흐른 다와 같은 언어도 시인이 만들었다. 시인이 만든 것은 창작이다. 시인이 아닌 사람이 없는 단어를 만들면 사기꾼이다. (황금찬 시인의 말) ‘시화무‘라는 제목의 최창일 시집은 시의 꽃을 무한대로 피운다는 의미를 담았다.
’시원의 입술’의 제목도 시의 정원에 시가 노래하는 의미를 새롭게 만들었다. 나태주 시인과 같은 무게의 시인은 언어 조합의 명수다. 아주 평범한 언어를 모아도 시가 저만치 걸어가는 느낌을 준다.
시집의 제목을 읽는 일은, 짧은 문장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작은 놀이일지도 모른다. 몇 글자 속에 담긴 은유와 상징, 감정과 생각을 곱씹는 과정은 시를 읽는 즐거움의 시작이 된다.
서점에 들렀을 때, 시집의 제목들을 천천히 읽어보는 즐거움도 크다. 그 짧은 문장 속에서 읽는 이의 시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시집의 제목은 특별하다. 짧고 강렬하면서도 시적 감각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한 줄의 시처럼, 시집의 제목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저작권자 ⓒ 성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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